옥수수 또띠아보다 낭창낭창, 식어도 맛있다
시작은 슈퍼볼이었다. 티브이도 안 보는 나는, 남편이 슈퍼볼 날짜라는 말만 하면 그 핑계 먹거리를 생각하곤 하는데, 집에 있는 것이라고는 살사 소스 만들어 놓은 것 밖에 없었다.
닭날개나 나쵸를 먹어줘야 하지만, 재료가 없으니 어쩔까나 하다가, 토르티아 칩 만드는 법을 검색하였다. 결국 칩을 만들 토르티아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명백했기에 나는 다시 토르티아 만들기를 고민했다. 사실 예전에 한번 시도했지만 결과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아서 그 이후로 다시 만들지 않았는데, 최근에 새로운 레시피를 봤던 게 생각났다.
이 레시피는 우연히 페이스북 릴스에서 발견한 것이었는데, 정말 설명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아주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안 해볼 이유가 없지. 끄적끄적 받아 적어 뒀던 종이를 찾아 작업에 착수했다.
칩은 물 건너갔고, 토르티아 만들어서 타코나 먹자는 결론이었다. 필요한 것은 단 두 가지. 렌틸콩(lentil)과 퀴노아(quinoa)였다. 둘 다 우리 집에 있는 재료였다.
렌틸콩은 슈퍼푸드로 들어가는 콩인데, 껍질을 제거하고 알맹이를 반을 갈라 판매한다. 녹색이나 검정도 있지만, 우리 레시피에서는 붉은색 렌틸콩을 사용한다. 단백질이 높아서 채식주의자들에게 인기 있는 식재료이다. 퀴노아 역시 슈퍼푸드로 들어가서, 두 가지 모두, 한국에서는 밥 할 때 함께 넣어서 밥을 지어먹는 추세이다.
나는 콩을 딱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옥수수로 만든 토르티아보다는 이게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을 해보았다.
렌틸콩만으로도 만들 수 있지만, 퀴노아를 넣어야만 낭창낭창한 토르티아를 만들 수 있다길래, 두 가지를 모두 씻어서 불리기 시작했다. 최소한 4시간을 불리라고 했기에, 나는 그냥 저녁때 물에 담가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잤다.
다음날 오전에는 바빴고, 점심때 먹자니 시간이 빠듯했기에 일단 재료를 씻어서 체에 밭쳐두었다. 여러 번 깨끗이 잘 씻고, 물을 잘 빼둬야 나중에 계량할 때 착오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야 토르티아를 만들기 시작했다. 믹서기에 넣고 분량대로 물을 넣고 소금까지 넣고 갈았는데, 결과물이 생각보다 너무 묽었다. 거의 맹물 같은 느낌이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 원래 나는 물을 살짝 적게 넣고 반죽을 봐 가면서 넣는 성격인데 이렇게 다 부어버렸으니 낭패였다.
된 반죽을 묽게 할 수는 있어도, 묽은 반죽을 되게 할 방법은 없었다. 이제부터 렌틸콩과 퀴노아를 새로 불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아니면 타피오카 가루나 쌀가루를 넣어야 할까?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일단 한 장 부쳐보고 결정을 하기로 했다.
깔끔하게 부치려면 상태가 좋은 코팅팬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 집에는 딱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나는 주로 스탠팬을 이용하지만 여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코팅팬이라면, 한국에서 가져온 달걀말이 팬이 있었다. 모양이 꼭 동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 팬을 이용하기로 했다.
팬을 중불로 달구고 기름을 발라준 후 싹 닦아낸다. 방울방울 맺히면 별로일 것 같았다.
그리고 반죽을 붓는 순간, 아, 이 반죽이 전혀 질지 않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딱 맞는 반죽이었다. 순식간에 팬에 밀착되면서 퍼지다가 멈추는데, 이거다 싶었다.
처음에 두장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불이 너무 낮으면 익히는 데에 오래 걸려서 오히려 고루 익지 않는다. 더구나 팬에서 떼어내기도 힘들다.
불이 너무 세면 반죽에서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고 구멍이 송송 뚫린다. 그렇게 반복하면서 적당한 온도를 찾았다. 중불보다 약간 세게 튼 정도가 맞았다. 불을 조금씩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맞는 온도를 찾아갔다.
반죽을 두른 후에 재빠르게 팬들 들고 움직여서 최대한 얇게 반죽을 고루 팬에 붙여야 한다. 그다음에는 인내심 있게 기다린다. 불이 적당하면 대략 2분 정도에 가장자리가 살짝 들뜨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살금살금 반죽을 떼어내어 휙 뒤집어 준다.
이게 만일 달걀지단이라면, 뒤집다가 구겨지면 망하는 것이다. 접힌 부분이 달라붙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 반죽은 착하게도 그런 슬픔을 안겨주지 않았다. 구겨져 붙은 부분도 손으로 떼면 쉽게 떨어지니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각팬 안에 반죽을 두르다 보니 예쁘고 동그란 모양을 내기는 쉽지 않았지만, 나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한 번만 뒤집으면 되는 게 아니라, 서너 번 뒤집어 가면서 딱 토르티아 같은 색이 나올 때까지 익혀줘야 한다. 하다 보니 솔직히 진력이 났다. 고루 색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시간이 제법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나중에 꾀를 내어 팬을 하나 더 꺼냈다. 처음에 반죽을 둘러줄 때에는 잘 붙지 않는 좋은 팬을 사용했고, 뒤집고 난 이후에는 다른 팬에 옮겨주었다. 그리고 예쁜 팬에는 새로 반죽을 둘러주었다.
남편은 그동안 닭고기를 조리했다.
닭가슴살을 채 썰듯 길쭉하게 썰고, 마늘과 양파를 다져서 넣었다. 그리고 양념으로는 칠리 파우더를 사용했는데, 한국에서는 고춧가루를 좀 쓰면 될 것 같다. 그리고 큐민(cumin) 가루도 좀 넣었고, 올리브 오일과 소금, 후추를 넣어서 섞었다.
거기서 끝내자니 뭔가 서운한 듯하여, 남편은 머리를 굴리다가 냉장고에 있던 플레인 요거트를 한 숟가락 넣어서 팬에 구웠다. 그랬더니 아주 부드러운 치킨이 나왔다.
그리고 그동안 나는 총 10장의 토르티아를 부쳤다.
함께 먹을 야채는 그냥 집에 있는 것들을 준비했다. 사실 이것도 남편이 했다. 양파는 얇게 썰어서 소금 간을 했고, 색을 돋우기 위해서 파를 썰어서 얹었다.
양배추 역시 소금, 후추, 올리브오일을 곁들여서 놓았다. 살사는 여름에 만들어 저장해 둔 것이 있었고, 구아카몰리는 아보카도로 내가 간단히 만들었다. 사워크림도 집에 있어서 사용했다. 칩은 저녁 준비하면서 조금씩 먹다가 뒤에 놓았다.
이렇게 해서 간단한 한 상이 차려졌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이 토르티아는 굉장히 탄력 있고 낭창낭창했다. 게다가 일반 토르티아보다 얇아서 먹는데 부담이 없었다. 나는 원래 옥수수나 밀가루 토르티아가 약간 부담스러웠다. 뭔가 반죽이 지배하는 느낌이랄까, 안에 채워 넣는 재료보다 겉껍질이 더 배를 채우는 느낌이 싫었는데, 이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꺾여도 부러지지 않았고, 식어도 딱딱하지 않았다. 부들부들하여 식감이 좋았고, 구겨 잡아도 얌전히 접혔다.
우리 집 토르티아로 당첨이다. 앞으로 종종 해먹을 듯하다. 다만, 손님이 온다면 시간에 촉박하게 하기보다는 미리 만들어놨다가 살짝 데워서 내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불 앞에서 직접 굽고 뒤집고 해야 하니 어렵지는 않았어도 은근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맛있었으니까 다음번에 또 하기로!
8장 분량, 북미식 계량컵 사용(1컵=240ml)
재료:
레드 렌틸 1/2컵
퀴노아 1/2컵
물 1½ 컵
소금 1/2 작은술
만들기:
1. 렌틸콩과 퀴노아를 물로 여러 번 씻어준 후에, 물을 넉넉히 붓고 불린다.
2. 최소 4시간, 또는 하룻밤을 불리는데, 날이 따뜻하면 냉장고에 넣어둔다
3. 꺼내어 여러 번 깨끗하게 씻어 준후, 체에 밭쳐 물기를 완전히 빼준다
4. 믹서기에 불린 재료를 넣고, 물과 소금을 넣어준 후 완전히 갈아준다.
5. 코팅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닦아낸 후, 중불로 달군다.
6. 반죽을 국자로 퍼서 얹고, 달걀지단 부치듯이 재빠르게 팬을 들어 고루 묻게 둘러준다.
7. 바닥면이 다 익으면 가장자리가 살짝 들뜨는데, 그때 뒤집어서 반대편도 구워준다.
8. 서너 번 뒤집으면서, 원하는 색이 나도록 굽는다.
9. 완성 후, 바로 먹거나, 냉장고에 보관하고 일주일 내에 먹는다. 아니면 냉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