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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Feb 13. 2024

부대찌개는 꼭 집에서 끓여야 한다

스팸과 치즈와 베이크드빈, 소시지, 떡, 당면... 뭐가 이렇게 많아

우리는 외식을 원래 별로 하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절대 밖에서 사 먹지 않는 메뉴들이 있다. 예를 들면 스파게티라든가, 프라임 립 스테이크라든가 하는 것들은 집에서 하는 게 더 맛있고, 사 먹으면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한식은 특히나 더하다. 캐나다에서 한식을 사 먹으면, 그냥 분식집 수준이어도 몇만 원이 순식간에 훅 날아간다. 거기다가 세금에 팁까지...


한국에 살 때에도 외식을 그리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격대비 푸짐한 음식을 사 먹는 즐거움도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결코 사 먹지 않고 집에서 해 먹기를 고집하는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부대찌개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밖에서 사 먹는 부대찌개에는 햄이 너무 야박하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몇 명이 하나의 부대 전골을 주문하면, 햄을 먹는 게 눈치 보이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애들을 데리고 가면 엄마는 바로 햄 포기 상태가 되고 말이다.


따라서 부대찌개는 마치 한 맺힌 사람처럼, 집에서 재료를 넉넉히 넣어 끓이는 것을 선호한다. (몸에도 좋지 않은 가공육을 그렇게 탐을 내다니!)


캐나다에 와서 재혼한 이후로는 부대찌개라는 것을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딸이 방학 때 와서는 부대찌개를 먹고 싶다고 하면서 우리 집에 이 음식이 다시 등장했다.


캐나다인 남편은, 서구인들이 흔히 그렇듯이, 햄, 아니, 정확히 말해서 스팸은 취급을 안 했다. 아예 못 먹을 음식 정도로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건강식 추구하는 내가 그런 음식을 알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였다. 심지어 아직도 스팸을 파느냐고 묻기까지 하였으니 나와 딸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캐나다 코스트코에 진열된 스팸


마트에 가서 콕 집어서 보여줬을 때 남편의 경악스러웠던 표정을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나온다. 한국에서는 스팸이 여전히 인기 품목이고, 추석 선물세트에 단골로 들어가지 않는가! 물론 이제는 고급 선물세트라고는 할 수 없지만, 여전히 스팸은 많이 비싸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나의 초등시절인  1970년대 초반에는 스팸 같은 것은 언감생심 없었고, 밀가루가 잔뜩 들어간 소시지가 있었다. 부잣집 아이들만 도시락 반찬으로 소시지를 가져왔다. 달걀을 입혀 구운 소시지는 보기에도 예쁘고 탐스러웠다. 길에서 팔던 핫도그는 새끼손톱만 한 소시지가 안에 들어 있고, 그 위로 두세 겹의 밀가루 반죽이 씌워진 채 튀겨진 기이한 음식이었다. 그 소시지를 얼마나 야금야금 아껴 먹었던지!


스팸은 그보다 한참 지난, 내가 다 큰 이후에 등장한 재료였고, 남동생은 스팸 하나만 있으면 밥 한 공기가 꿀떡이었다. 그러니까 별것도 아닌 가공육은 어렸을 때부터 애증의 아이템이었다. 즉, 부대찌개에 들어있는 스팸은 멀리하기엔 너무 아련한 그대란 말인 거다.


그렇게 해서 우리 집에 스팸이 들어왔다.


남편은 스팸을 넣어서 국을 끓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상상이 안 가는 모양이었을 것이다. 멀쩡한 고기를 두고 스팸을 넣어서 국을 끓인다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부대찌개의 유래에 대해서 남편에게 설명했다. 한국 전쟁 이후, 미군 부대에서 나온 부대고기와 깡통햄, 콩조림, 치즈 등이 시장으로 스며들어왔고, 그 느끼함을 견디지 못한 한국인들이 거기에 김치를 넣어서 매운 찌개를 끓이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자 남편은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들었다.


그러고 나서 끓인 부대찌개는 대성공이었다! 솔직히 참 맛있는 음식이지 않은가! 들어간 것도 많으니 국물도 진하고, 느끼함에 매콤함이 더해지니 정말 화끈한 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남편도 어느새 부대찌개 안의 스팸을 탐하기 시작했다.


각종 재료를 둥그렇게 담고 육수를 얹는다. 옆에는 치즈와 미나리를 준비해 둔다


손님이 올 때에도  등장할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시누님이 오셨던 여름철에, 한국의 음식들을 소개하면서 이 부대찌개도 등장했다. 정통 한국 음식은 아니지만, 전쟁의 역사를 통해 만들어진 이야기는 시누이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막판의 치즈와 미나리를 넣은 부대찌개


가장 최근에 끓인 부대찌개는 겨울방학으로 딸 와있을 때였다. 딸 친구까지 와서 함께 먹였다. 역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맛있게 얌냠 잘 먹더라.


사실 맛있을 수밖에 없는 음식이다. 각종 맛있는 것들을 다 넣지 않는가! 스팸과 소시지, 고기, 두부 치즈 등 단백질이 듬뿍 들어가고, 야채도 김치와 배추, 당근, 양파, 파 등등 또 넉넉히 넣는다. 거기에 깻잎과 미나리를 얹어서 느끼함을 싹 잡아주니 더욱 훌륭하다. 


집에서 미나리를 키우지 않던 때에는, 구하지 못하면 워터크레스를 사서 넣기도 했는데, 맛이 아주 비슷하면서도 더 연해서, 대용품으로 좋았던 기억이 있다.


허전할까 봐 여기에 면사리와 떡사리까지 들어가면 사실 굳이 밥이 필요가 없다. 색이 빨갛지만, 의외로 그리 맵지도 않아서 아이들도 먹는다. 아마 단백질이 높아서 그런 같다. 


거기에 추가해서, 우리 집의 부대찌개가 더 맛있는 이유는, 집에서 만든 맛있는 콩조림을 넣기 때문이다. 물론 날티나는 캔 콩조림을 넣어야 진짜 부대에서 나온 음식이 되겠지만, 우리 집에서는 이 콩조림을 직접 만들기 때문에 매번 만들 때 일부를 소포장해서 얼려둔다. 이걸 넣으면 아주 제맛이다!


다음날 딸과 친구 아이가 놀러 나간다며, 나가기 전에 든든히 먹겠다고, 둘이서 남은 부대찌개에 밥 넣고, 깻잎 썰어 넣고, 참기름 둘러서 볶아 먹었다. 


겨울철 실내에서 자라고 있는 깻잎


참고로 깻잎은, 지금 겨울이지만, 실내용 그로우 라이트 밑에서 작게 키우고 있는데, 아쉬운 대로 딱 필요한 만큼은 공급이 된다. 지난 주말엔 설날이라고 깻잎 소고기 전 부치는 데에도 아주 유용했다!


먹고사는 일이 때론 귀찮고 고되다 싶을 수도 있지만,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하면 참 재미있고 감사하다.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하는 마음은 사실 인간의 가장 필요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일이니 말이다.





부대찌개

4인분


재료: 

스팸 1캔

핫도그 소시지 5개

얇게 썰은 소고기 한 줌

부대고기 한 줌

콩조림  1/2 캔

당면 한 줌 (한 시간 정도 불려둔다)

김치 한 줌 (대충 짜서 준비)

배춧잎 2 장, 숭덩숭덩 썰어서

대파 1대, 썰어서

양파 1/2개

두부 1/2 모

가래떡 한 줌

라면 1개 (우리는 밀가루를 못 먹어서 생략)

 또는 쌀뜨물 취향껏

고춧가루 1큰술

고추장 1큰술

간장 1큰술 (간 보고 필요하면)

소금 적당히 (간 보고 필요하면)

식초 1 큰술

슬라이스 치즈 2장

미나리 한 움큼


만들기 :

1. 맨 끝의 식초, 치즈, 미나리만 빼고,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다 넣고 찬물부터 끓인다.

2. 재료에 정답은 없다. 취향껏 가감한다

3. 다 익어서 불 끄기 직전에 나머지 세 가지를 넣어서 한 번만 더 끓인다.

4. 면이 붇지 않게 먼저 건져 먹고, 나머지도 먹는다.

5. 다 먹고 국물이 조금만 남았다면, 구운 김과 달걀, 참기름, 깨, 깻잎 넣고 밥 볶아 먹는다.


* 부대찌개에는 정답이 없다. 정량도 없다. 취향껏 재료를 가감해서 만드시길 추천한다.


* 홈메이드 콩조림 레시피가 궁금하다면 :

https://brunch.co.kr/@lachouette/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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