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퍼서 팥빙수를 만들다!
캐나다는 원래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비씨주가 있는 서부 쪽은 사실 원래 그리 춥지 않다. 이번 겨울은 특히 유난히 따뜻했고 영하로 확 떨어지는 날씨가 없었다. 그리고 눈도 없었다.
그러다가 오늘 새벽부터 갑자기 폭설이 내려서, 아침에 밖을 내다보니 데크에 30cm는 족히 쌓여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머리에 딱 떠오른 생각은!
아! 팥 삶아야겠다!
이곳의 눈은 얼마나 깨끗한지, 밖에서 실컷 뒹굴고 놀아도 옷이나 손이 까매지지 않는다. 처음 이곳 눈을 접했을 때에는 깜짝 놀랐지만, 이제는 눈이 하얀 게 하나도 신기하지 않다.
나는 오전 근무가 끝나자마자 부지런히 팥을 꺼내서 씻었다. 그리고 뚜껑 열어 애벌 삶기를 먼저 했다. 뭔가 독성이 있다고 했던가, 아니면 아린 맛을 빼낸다고 했던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팥은 늘 이렇게 한번 우르르 삶아서 그 물을 따라 버린 후 다시 삶는 것이 정석이다.
물을 따라 버린 후, 한번 빠르게 헹궈주고 다시 물을 잡아 끓였다. 팥 두 컵에 물은 세 컵 정도 했고, 소금은 반 작은 술 넣었다. 설탕은 일단 생략하고 그대로 삶았다. 압력솥의 추가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불을 중 약불로 내리고 20분간 삶아준 후 불을 끄면 되니 팥 삶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추가 내려가면 다 익은 것이다. 처음에 뚜껑을 열면 상당히 수분기가 많은 것 같지만, 식으면서 줄어들기 때문에 괜찮다. 팥빙수 용으로 사용하려면 아무래도 단맛이 필요하니 이때 설탕이나 기타 감미료를 넣어주면 좋다.
나는 단팥으로 쓰기에는 살짝 많아 보이기에 알이 성성하게 살아있는 위주로 좀 퍼냈다. 냉동했다가 다음 달에 있을 대보름 오곡밥 할 때 던져 넣을 심산이었다.
남은 팥에 자일리톨 가루를 넣고 저어줬다. 만일 여전히 너무 묽거나 팥이 성하다면 그 상태로 잠깐 불을 켜고 졸여줘도 좋다.
팥이 좀 식었다 싶어서 나가서 눈을 퍼왔다. 사진을 찍을 생각을 했으면 좀 이쁜 그릇에 퍼올 일이지 이런 플라스틱 통이라니! 하하!
팥빙수를 만들 재료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하지만 메인 재료인 팥과 얼음이 있으니 뭘 더 바라겠는가! 연유대신 생크림을 준비했고, 가을에 만든 크랜베리 꿀절임과 견과를 챙겼다.
솔직히 인절미는 좀 아쉬웠지만, 냉동실에 보관해 둔 게 다 떨어지고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만든 선식가루라도 좀 뿌려줬다. 엉터리 팥빙수 탄생!
팥빙수가 처음이 아닌 남편은 이제 눈이 오면 으레 이걸 먹으려니 한다. 팥을 주식이 아닌 간식이나 디저트로 먹는다는 것이 서양식 개념에서는 참으로 생소하지만, 이런 게 또 먹는 재미 아니겠는가!
맛은 어떨까 궁금하다면?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답해주고 싶다. 입자가 고아서 진짜 사르르 녹는 맛이다
자연이 좋은 캐나다, 그래서 공기도 좋은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아주 큰 혜택이다 싶다. 저녁때 전화 온 지인의 딸아이는 눈에서 초콜릿 맛이 난다고 했다. 또 다른 지인은 눈이 찰떡같다고도 했다. 캐나다 눈은 다들 맛있나 보다!
맛있게 빙수 해 먹고 남은 팥으로 내일은 오븐 풀빵을 만들어야겠다!
재료:
팥 2컵
끓이는 물 3 컵
소금 1/2 작은술
자일리톨 또는 설탕 1/4컵 ~ 1/2컵 (취향껏)
만들기:
1. 팥을 깨끗이 씻는다.
2. 팥이 잠길 정도로 물을 받아, 압력솥뚜껑을 열고 빠르게 끓인다. (5분 정도면 완료)
3. 물을 따라내고 빠르게 한 번 헹궈준다.
4. 팥을 다시 압력솥에 넣고 물 세 컵을 붓는다.
5. 뚜껑을 닫고 중강불로 끓인다.
6. 추가 돌기 시작하면 중약불로 줄이고 다시 20분간 더 끓인다.
7. 불을 끄고 추가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8. 뚜껑을 열고 맛을 본 후, 원하는 양의 감미료를 넣어준다.
9. 저어 주면서 한번 더 끓여서 감미료를 녹여준다. 팥을 적당히 으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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