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접시 파티에도 가져가고, 소시지도 넣어서 먹고~
얼마 전 막내아들 생일 파티에서 베이크드 빈(baked beans)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이 콩조림 캔을 샀던 경우는, 부대찌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할 때 이외에는 없었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서양인들에게는 겨울이면 생각나는 메뉴라는 것이다. 식구들이 서로 맞장구치면서 이 음식을 언급하는데, 둘째 며느리가 비엔나소시지와 콩(wieners and beans)이라고 말했더니 남편이 정색을 하면서 정정했다. 콩과 비엔나소시지(beans and wieners)라고 말이다. 그리고 다 같이 웃었다.
단지 두 단어의 순서만 다를 뿐인데, 반대로 말하는 것은 상상해 본 적이 없다며 다들 이 단어를 입안에서 반복해서 굴려보는 것이 아닌가? 마치, 장화 홍련전을 홍련 장화전이라고 하는 것 같이 어색해하면서 말이다.
한국에서는 이 음식은 그냥 캔에 들은 서양 콩 통조림에 불과하다. 어떻게 먹는지도 잘 모른다. 그저 부대찌개에 넣는 통조림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리고 이걸 집에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더욱 생각지도 못했다. 다만 마트에서 이걸 고를 때, 뭔가 다양한 맛으로 분류가 되어있어서 좀 당황했던 기억은 있다.
그런데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고 보니, 이 사람은 이걸 집에서 만든다는 것이다. 그에겐 나름 추억이 있는 음식이었다. 겨울철에 따뜻하게 먹는 정겨운 음식이다. 심지어 이 음식을 만드는 전용 항아리도 있다.
집에 원래 있던 항아리가 있는데, 그게 너무 커서, 만들고 나면 맨날 남는다는 것이 흠이라고 남편은 종종 투덜댔다. 그럴 때면 나는 "남으면 그냥 얼렸다가 부대찌개 해 먹자"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남편은 어쩐지 성에 안 차는지 보다 작은 사이즈의 항아리를 갖고 싶어 했다.
그러다가 지난봄, 온라인 중고 마켓에서 작은 항아리를 발견했다. 그 항아리를 파는 여인은 남편을 붙들고 한참 수다를 떨었다. 자기 남편이 동부 사람인데, 이 콩조림을 즐겨 만들었다는 둥, 끊임없는 이야기가 쏟아졌다.
그리고 다시 지난여름, 동부에 사는 시누이가, 어머님의 꼬마 항아리를 들고 왔다. 어딘가 보관하고 있던 것을 발견했다고 동생에 주려고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 집에는 이 항아리가 셋이다. 나란히 놓고 보면 얼마나 귀여운지!
그 생일 저녁 식사 이후에 남편은 베이크드 빈을 급 먹고 싶어 졌다. 날씨가 추운 겨울에 딱 맞는 음식이니 더욱 생각이 날만한 시즌이었다. 하지만 연말이고 할 일이 많다 보니 마음같이 금방 만들게 되지는 않았고, 계속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 집에서 수강생 모임을 하게 되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수강생들과 함께 번개 모임을 갖기로 한 것이다. 다들 음식을 한 가지씩 챙겨서 모이게 되었는데, 집주인이 아무것도 안 하기는 좀 그렇다 싶었다. 하지만 나는 오전 내내 수업이 있어서, 모두들 도착하는 시간이 내 오전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었다. 따로 아침에 음식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뭔가 디저트를 미리 만들어둬도 되겠지만, 사람들이 가져온다는 목록을 보니 주식보다는 후식이 많은 분위기였다. 마음 같아서는 뜨끈한 어묵국물이라든가 아니면 떡볶이 같은 매콤한 것을 준비하고 싶은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했다. 지난봄 모임 때에는 남편이 칠리를 만들었는데, 이번에 또 그거를 할까 하다가 갑자기 베이크드 빈이 생각났다. 어차피 만들고 싶었으니까 넉넉하게 만들어서 나눠 먹으면 좋겠다 싶었다.
남편은 한 접시 파티에 콩조림을 준비한다는 내 아이디어에 껄껄 웃으며 황당해했지만, 한국인으로서는 한 번도 못 먹어본 가정식 콩조림이라면, 어디서 체험을 해보겠는가 말이다. 재미나고 좋은 기회일 것 같았다.
문제는 이 콩을 8시간 동안 오븐에서 저온으로 익혀야 하는데, 그러자니 점심시간에 맞추자면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하기는 좀 무리스러우니 그냥 하루 전날 만들어 놓고, 당일에 데워서 내자고 일단 합의를 했다.
그렇게 해서 재료를 사 오고,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남편은 아무리 생각해도, 미리 해놨다가 데워주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오븐에 넣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은, 밤에 재료를 다 준비해서 오븐에 넣어두고, 예약을 걸고 자기로 하니 마음이 놓였다!
남편의 베이크드 빈 레시피는 친구 부인에게서 왔다. 제리와 폴라 커플은 남편의 옛 친구들이고, 어려운 시기에 남편을 많이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면 남편은 늘 눈시울을 적신다. 폴라에게 받은 레시피를 아직도 들고 있는 남편. 여전히 그녀의 레시피로 이 콩조림을 만든다.
재료는 단순한 편이다.
주인공은 역시 콩이다.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콩은 핀토콩(pinto bean)이다. 다른 종류의 콩을 사용해도 되지만, 그렇게 되면 조리 시간이 바뀔 수 있다. 물론 풍미도 달라진다.
핀토콩은 충분히 불려야 한다. 보통 6~8시간 정도 불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중간중간 물을 갈아줘도 좋다. 밤새 불리고 아침에 끓여주면 좋다.
그다음에 생소한 재료는 소금돼지고기(Cured Salt Pork)다. 이름 그대로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인데, 기름진 삼겹살 부위와 비슷하다. 냉장고가 없던 옛날, 돼지고기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서, 소금과 설탕을 듬뿍 얹어서 큐어링 했고, 오랫동안 보관하며 먹었다.
요즘은 집에서 큐어링 하지는 않고, 마트에 가면 이렇게 작은 단위로 만들어서 판매한다. 아주 짜기 때문에 이대로 먹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음식 할 때 사용하면 좋다. 만일 이것을 구하지 못한다면, 한국에서는 그냥 삼겹살을 이용하고, 대신 소금을 좀 더 사용하면 될 것이다.
밤새 불린 콩을 여러 번 헹궈준 후, 다시 물을 적당히 부어서 삶아준다. 이때, 불을 세게 하면 절대 안 된다. 뭉근히 끓여서 적당히 느슨해질 만큼만 끓이면 된다.
그리고 그동안 다른 재료들을 준비한다. 내가 수업하느라 바빴더니 남편이 나를 위해서 과정샷을 찍어놨다. 돼지고기와 마늘, 양파, 소금, 설탕, 당밀을 미리 섞어주면 재료 준비는 간단하게 끝난다
이제 콩이 어떻게 끓고 있는지 보자. 약한 불로 뭉근하게 끓이기 때문에 5컵의 콩을 삶는다면 한 시간이 살짝 넘어 걸린다. 무작정 시간을 맞춰서 끓이는 것은 아니고, 콩이 통통하게 부풀어서 곧 껍질이 까질 것 같은 분위기가 될 때까지 끓이는 것이 포인트이다.
남편이 테스트하는 방법은, 한 숟가락의 콩을 떠서 후 불어 보는 것이다. 그러면 부푼 콩껍질이 들뜨는 듯 보이는데 그때가 준비 완료 상태라고 한다.
준비가 다 되었다면, 콩을 한 켜 퍼담고, 양념을 다시 한 켜 퍼담고, 번갈아 고루 섞이게 항아리에 담아준다.
물기를 완전히 뺄 필요 없으며, 오히려 콩 밑으로 물기가 좀 있는 것이 더 좋다. 그렇다고 콩이 잘박하게 잠길 정도는 아니고, 콩 밑으로 잠겨있어서 오래 오븐에 있어도 타지 않고 촉촉함을 유지할 정도만 있으면 된다.
잘 섞어줬으면 이제 오븐으로 들어간다. 콩 삶은 물은 남겨뒀다가 혹시 너무 마르거든 조금씩 보충해 줘도 좋다. 105도의 저온으로 6시간~8시간 익힌다.
다 되었는지는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먹어보고 질감이 적당하면 된다고 했다. 설컹거리며 씹히는 느낌이 없이 부드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뭉개지지는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맞춘다니, 내가 글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듯싶다. 하지만, 베이크드 빈 콩조림 캔을 사서 먹어본 적이 있다면 대략 그 느낌으로 되었을 때 오븐에서 꺼내면 될 것이다.
딱 이 정도의 느낌이 나면 제대로 만들어진 거라 볼 수 있다.
손님들은 11시가 좀 넘어서 도착하기 시작했고, 남편이 밤에 애를 써준 덕에, 이 음식은 한 접시 파티에 딱 맞게 완성이 되어 나왔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모두들 캔이 아닌 베이크드 빈에 대해서 신기하게 생각했다. 성공이다.
물론 양을 워낙 넉넉하게 했기 때문에 베이크드빈은 넉넉한 양이 남았다. 한 끼 식사로 먹고도 남을 양이었다. 그러자 나는 또 다른 한 접시 파티가 생각났다. 바느질 친구들의 모임이 이틀 후로 잡혀있었던 것이다. 내가 준비해 가려했던 음식은 집에서 훈제한 연어였다. 과자와 크림치즈를 곁들여가면 딱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요즘 캐나다인들도 이 콩조림을 집에서 직접 해 먹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그곳에 가져가면 다들 추억의 음식이라고 좋아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가장 작은 항아리에 한 접시 파티용 콩을 담았다. 4명이 모이는 것이니 이 정도면 맛을 보기에 충분하리라 싶었다.
사실 이 날도 나는 수업 끝나자마자 눈썹이 휘날리게 달려가야 할 상황이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따로 준비하기 어려웠고, 남편이 연어도 썰고, 과자도 예쁘게 담아서 준비해 줘서 가능했다. 콩도 미리 따끈하게 데워서 담아주었다.
네 명의 여자들이 모여서 수다를 펼친 이날,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들에 우정을 담아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남편이 원하던 콩과 비엔나소시지(beans and wieners)를 드디어 먹을 수 있었다. 뭔가 거창한 요리는 절대 아니다. 그냥 소시지와 콩을 함께 끓인 것일 뿐. 그렇지만, 추운 겨울날에 따끈하게 영양보충하기 좋은 음식이다.
사실 원래는 소시지랑 먹는 게 아닌데,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어떤 음식에 소시지나 햄을 곁들이면 애들이 좋아하는 약간 불량하고 맛있는 음식 말이다. 이것도 딱 그런 것이었다. 그런 추억의 음식.
그것만 먹기는 서운하니, 남편은 꼭 콘밀 브레드를 만든다. 이름은 빵이지만, 일반 발효빵처럼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라서 이런 상황에서 급히 만들기 딱 좋다. 더구나 남편은 밀가루를 먹지 못하니 옥수수로 만든 이 빵이 더욱 만만하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목표로 했던 콩과 소시지 식사를 즐겁게 이룰 수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콩은, 작은 지퍼백 2개에 나눠 들어갔다. 냉동실에 보관되었다가 부대찌개 끓일 때 다시 등장할 것이다.
북미식 계량(1컵=240ml)
재료:
핀토콩 5 컵
소금에 절인 삼겹살 1/2파운드가량 (245 g), 삼겹살로 대체 가능
소금 2 작은술 (삼겹살 사용 시 소금을 2배로 사용한다)
흑설탕 2큰술
당밀 1/2컵
양파(중) 1개, 잘게 썰어서 준비
다진 마늘 3쪽 분량
물
만들기 :
1. 만들기 전날 밤 콩을 잘 씻어, 큰 냄비에 담아 밤새 불린다.
2. 물을 따라내고, 콩을 여러 번 헹궈준다.
3. 이제 콩이 제대로 덮일 만큼 새로 물을 부어준 후, 중약불로 뭉근히 익힌다. 팔팔 끓이면 안 된다. 콩의 껍질이 살짝 부풀만큼만 익혀야 한다. 수저로 콩을 몇 개 들어서 입으로 후 불어보고 껍질이 들뜨는지 수시로 체크한다. 과하게 익히지 말 것! 대략 1시간 정도 걸린다.
4. 콩이 준비되는 동안 나머지 재료들을 섞어서 준비해 둔다.
5. 전용 항아리에 콩과 양념재료를 번갈아 넣어서 서로 섞이게 해 준다.
6. 뚜껑을 덮어서 105°C(225°F)로 예열된 오븐에 넣는다.
7. 오븐에서 6~8시간 정도 푹 익힌다. 중간중간 체크하고, 물이 부족하면 콩 삶은 물을 다시 추가해 준다.
8. 콩이 부드러워지면 완성. 따끈할 때, 소시지나 빵을 곁들여서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