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느끼고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의미 없다
요새 계속 너무 바빠서 일기도 밀리고, 여행기는 손도 못 대고, 요리도 못 올리고 그러고 있어서 속상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영어 공부해야 하는 후배더러 그렇게 열심히 얘기했는데도, 또 하루에 30 단어씩 쓰면서 외우고 있다고...! 오우! 노우!
시간이 나면 영어공부 어떻게 해야 하나에 관한 글들도 좀 정리해서 올리면 좋겠지만, 일단 급한 대로 이것 먼저 써보려고 한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기도 하다.
언젠가 교육에 대한 영화 한 장면을 유튜브에서 만났는데, 거기서 외치는 말이 이거였다. 백 년 전 전화기와 지금의 전화기는 정말 비슷도 안 하고, 마차는 자동차가 되었고, 모든 것들이 다 그렇게 변화했는데, 우리의 교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너무 충격적이지 않은가?
우리 영어교육도 그렇다. 아니 더 퇴보한 느낌이다. 이제는 유치원생들도 모여서 영어단어를 외우고, 글로벌 시대답게 중국어까지 유치원에서 커버를 한다. 한참 호기심 많고 즐거워야 할 나이에 단어를 외우며 지쳐간다고 생각해보자. 일 년을 영어유치원을 보내 놨더니 드디어 아이가 이얼싼쓰~를 한다며 좋아하던 한 엄마가 기억난다! 아이가 그 중국어 숫자를 외우기 위해 잃어버린 시간들을 생각한다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우리도 중학교 때 맨날 단어 외우고, 문법 규칙 외우고, 그리고 얻은 것은... "영어는 정말 지겹다." 이 생각뿐.
사과는 apple, 소년은 boy, 사람을 만나면 How are you? Fine, thank you, and you? 만 남았는데, 지금 내가 오십을 훌쩍 넘은 상황에서도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해야 할 것만 늘어났다.
그래도 어린애들은 그렇게 눌러대면 좀 외워지는데, 우리 성인들은 어떤가?
안 외워진다, 돌아서면, 바로 앞에서 본 사람 얼굴도 기억이 안 나는데 무슨 수로 단어를 외우겠는가? 하지만 나이는 거저먹는 게 아니다. 우리는 세월을 거쳐 깎여오면서 이해력이 좋아졌다.
단어를 암기하지 말고,
이해하고, 느끼고, 배우면, 정말 쉽게 그 단어와 친해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영어 북클럽 진행하면서 절대로 단어를 외우라고 하지 않는다. 그거 붙들고 있다가는, 일단 재미가 없어서 원서를 끝까지 끝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그 단어가 머리에 남지도 않기 때문이다.
대신, 원래 알고 있는 뜻과 다르게 쓰였다든지, 아니면 생소한 느낌의 단어를 질문한다면, 그 단어가 갖는 느낌을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한 번은 Sarah, Plain and Tall이라는 책의 북클럽 단어 중에서 shuffle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북클럽 출석 글 남길 때, 기억하고픈 단어를 3개 쓰는 조항이 있는데, 많은 분들이 이 단어를 선택했다. 생전 처음 보는 단어라고 생각한 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나도 처음에 그랬으니까.
나는 이 shuffle이라는 단어를 보면 짧은 순간에 수많은 이미지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사실 이 단어는 내가 40대 초반, 원서 읽기를 하기 전에는 모르는 단어였고, 그래서 처음 만났을 때에는 나름 어려운 단어라고 분류해놓았었다. 그런데, 당시에 읽던 책마다 이 단어가 거의 매번 나오는 것이었다! 평생 모르고 살았던 단어인데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집의 오디오 기기를 봤더니, 거기에 shuffle이라는 버튼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구식 기계는 구입한 지 거의 20년이나 된 것이었는데, 음악 CD 50개를 넣어두고, 셔플 버튼을 누르면, 시디 기계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그러다가 한 곡을 골라서 틀어주고, 계속 그렇게 반복을 한다.
그래서 이 단어를 가지고 사전을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1. [자동사][V + adv. / prep.] 발을 (질질) 끌며 걷다
He shuffled across the room to the window.
그는 발을 끌며 방을 가로질러 창가로 갔다.
The line shuffled forward a little.
그 줄은 느릿느릿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2. (어색하거나 당황해서 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Jenny shuffled her feet and blushed with shame.
제니는 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창피해서 얼굴을 붉혔다.
3. (게임을 하기 위해 카드를) 섞다
Shuffle the cards and deal out seven to each player.
카드를 섞어서 각 참가자에게 7장씩을 나눠 주어라.
4. [타동사][VN] (종이? 물건의 위치? 순서를) 이리저리 바꾸다, 정리하다
I shuffled the documents on my desk.
나는 책상 위의 서류를 정리했다.
내가 옛날에 찾았던 사전에서는 "발을 지척지척 끌며 걷다"라고 나와있었는데, 그 지척지척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특이하게 느껴지면서 인상이 깊었었다. 그런데 나중에 몰라서 그 단어를 또 찾고, 또 같은 "지척지척"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아유~~ 또 잊어버렸네!" 그랬었는데, 오디오 기기에서 shuffle을 보는 순간, 그 이후로는 다시는 안 까먹었다.
그 버튼은 내가 늘 즐겨 쓰던 버튼이었고, 시디를 고르기 위해서 기계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한 친구에게 그 단어를 말했더니, 그는 카드를 섞는다는 의미로 알고 있었다. 결국 같은 단어가 다 다른 의미로 쓰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 움직임 자체의 느낌이 바로 shuffle스러운 느낌임을 몸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북클럽에서는 나의 이런 설명을 들은 한 회원이, '발을 질질 끌며 추는 춤'을 셔플댄스라고 한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유튜브 동영상을 또 찾아보았다. 그중 짧은 것으로 하나 구경하자면...
이렇게 shuffle 이라는 단어를 다 이해하고 나면, 어디서 이 단어가 나와도 이제는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사전에서, 1번 뜻이 뭐고, 2번 뜻이 뭐고... 뭐 이렇게 생소한 뜻이 다 하나로 들어있어서 나를 힘들게 해!?!!! 그런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다. 모두 연관되면서 하나의 단어가 주는 여러 가지의 느낌이 굳이 무슨 뜻인지 한글로 표현할 필요 없이 내재되는 것, 그것이 단어를 이해하는 방법이다.
지금은 shuffle이라는 단어 하나만 간단히 예를 들었지만, 독서와 북클럽을 통해서 현실에서 영어를 배우면 단어의 이런 실용적인 사용을 만날 수 있고, 이해를 못하면 북클럽 내에서 물어보고 의견을 나누며 배워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면 책을 즐겁게 읽으면서 이런 느낌과 친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어떤 것은 정말 한 번에 뇌리에 박히듯 다가오지만, 어떤 것들은 여러 번 만날 때마다 "바보! 바보!"하며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일단 머리에 들어간 단어는 파묻혀버리지 않고, 여러분의 단어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단어 달달 외우면서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즐겁게 책 읽고, 즐겁게 단어와 친해지시길...
* 글의 표지에 사용된 사진 속 우리 집 사전 용도는? 키 작은 나의 발받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