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러 가는 딸
지난 연말쯤 딸아이에게서 소식이 왔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개최되는 영화제에 가게 되었다고 말이다. 나 같은 문외한은 잘 모르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행사인 이 SXSW는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South by South West)의 약자로, 1987년 처음 시작해서 매년 봄에 열리는 큰 문화행사라고 한다.
아카데미상만큼 일반 대중에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영화나 음악, 콘퍼런스 및 각종 미디어와 교육에 관련된 행사를 총괄하는 아주 큰 축제라고 한다. 딸은 영화 쪽, 그중에서도 XR Experience Spotlight 부문에 선정이 되었다. 올해에는 3월 8일~3월 16일까지 진행된다고 했다.
딸이 받은 소식은 "SXSW에서 당신의 작품을 세계 최초로 공개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라는 이메일이었는데, 여기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이 영화제에 선정될 것을 미리 예견하지 못했던 딸은 이미 이 전에 다른 영화제에 선정되었고, 영국에서 상영도 마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딸은 행사 측에 바로 이실직고를 했다.
세계 최초는 아니고, 북미 최초는 될 수 있는데, 그렇게도 가능한가요?
그러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답변이 왔다. 안타깝게도 다른 곳에서 상영되었던 작품은 수상작 후보는 될 수 없지만,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딸의 작품 상영을 희망한다는 내용이었고, 그때까지 다른 곳에서 상영을 하지 않는 조건이 얹어졌다. 또한 다른 작품들이 선정되어 공식 발표될 때까지 함구하라는 요청도 함께 왔다.
기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소식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지난번 영국 영화제는 거절을 했어야 하는 것이었는데, 세상 일이라는 것이 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찌 이런 것을 계획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의 결론은, 안타깝지만, 이미 영국에서도 좋은 경험을 하고 왔기에 경쟁부문에 못 들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선정의 기쁨만 누리기에도 이미 너무 바쁘기 때문이었다.
할 일이 많았다. 주최 측에서 이것저것 요청을 해왔는데, 알고 봤더니 이 영화제에 초청받는 이들은 우리 딸처럼 개인이 출품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알아서 홍보하고, 부스도 스스로 준비를 한다는 것이었다. 졸업작품전으로 바쁜 와중에 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딸이 출품한 애니메이션은 VR 애니메이션으로, 극장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특수 안경을 쓰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입체적으로 보는 타입이다. 즉, 영상을 360도로 제작해서 관객이 마치 영상 속에 앉아있는 방식으로 관람하게 된다. 이전에는 주로 게임에 사용되었는데, 이제 일반 영상에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는 추세이다.
즉, 딸이 가지 않으면 이 영상은 상영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직접 장비를 들고 가서 부스에 설치를 해야 하고, 관객이 관람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단다. 회사 차원이라면 직원들이 나눠 맡아해야 할 일이지만, 학생의 작품이니 혼자 모든 것을 맡아야 했다. 혼자 가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이런 종류의 영화제는 처음이었기에 딸아이도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일단 모든 자금이 자기 주머니에서 나와야 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영화제 기간의 숙박만 해도 가격이 천정부지였다. 행사의 규모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에어비앤비 같은 곳도 전혀 저렴하지 않았다. 물론 오스틴 외곽으로 나간다면 가격을 좀 아낄 수 있겠지만, 차도 없이 그렇게 행사를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겨울 방학에 집에 온 딸과 함께 고민을 했는데, 원래 돈이라는 것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니 그냥 주최 측에서 추천하는 가까운 곳에서 묵도록 하는 게 좋겠다는 살 떨리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가장 큰 비용이 드는 숙박 이외에도, 비행기표와 식대 및, 부스를 꾸미는 포스터, 의자, 장식품 등 모든 것들을 혼자 주관하는 상황이었다.
결국은 고민을 하다가 학교에 도움을 요청했다. 학교에 있을 때 작업한 작품이고, 학교에서 지원금을 받는다면 학교 로고를 필름 끝에 넣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두 주일 여를 기다린 끝에 드디어 비용의 일부를 대주겠다는 대답을 받았다.
삶은 늘 아슬아슬하다. 지금 딸이 하고 있는 일들이 너무 많으니, 수많은 것들을 손에 들고 저글링 하는 기분이리라. 그래서 이러다가 뭔가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닌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 이 일들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혼란이 오기도 하지만, 이런 순간에, 그래도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의 결실이 하나씩 차근차근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에는 너무 바쁜 와중에 홍보물을 하나 만들어서 인스타 릴스에 올렸다. 여기에 티저를 퍼와서 소개를 하고 싶은데 직접 퍼오는 방법은 모르겠고... 그래서 보니까 큐알코드를 만들 수 있다고 해서 가져왔다. 잘 되려나?
이제 일정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기 전까지 졸업작품도 어느 정도 진도를 뽑아 놓아야 하고, 아르바이트로 하고 있는 일도 해야 하고, 학교 조교 일이나 그 밖의 다양한 일들을 다 해야 해서 머리가 빙빙 돈다고 하는데, 나는 그저 고맙고 또 고맙다.
이만큼 하려면 엄마가 쫓아다니며 뒷바라지해 주고 그래야 할 것 같은데, 난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고 딸이 다 알아서 한다는 게 새삼 놀랍다. 딸이 독립적인 어른으로 자라주기를 바라왔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구나. 부모는 그저 뒤에서 응원할 뿐이다.
1. 텍사스에 계시는 분들이나, 다른 일로 이 행사에 가시는 분들 계시면 관람을 추천드립니다. 텍사스 오스틴 페어몬트(Fairmont) 호텔 Congressional Ballroomd에서 보실 수 있고요, 관람권은 아래에 소개되는 웹사이트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2. 딸의 SXSW 상영일정 소개 및 관련 안내 :
https://schedule.sxsw.com/2024/films/2196860
3. 유튜브 티저 링크를 추가합니다 (인스타가 없어서 보기 불편하신 분을 위해서 올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