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길로 가든 미래는 불확실하다.
어제 딸 소식을 올렸습니다. 소식을 기다리는 분들이 있기에 올렸지만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글을 읽다 보면 저 아이는 운도 좋고, 재능도 많고, 정말 복도 많다는 생각이 들기 쉽거든요. 부러움이 들기도 하고요. 하시만 정말 그렇게 좋기만 하였을까요? 인생이 그렇지는 않지요. 저는 요새 아이의 모습을 보며 참 생각이 많답니다.
어제에 여기에 글을 올린 김에 미국 유학 카페에도 딸 소식을 전하러 갔습니다. 저희 딸이 미국 대학을 가기 위해 많은 정보와 도움을 얻은 곳이기에, 저는 아직도 가끔 그곳을 방문하곤 한답니다. 저를 초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이 있더라고요.
그곳에서 애를 쓰는 부모님들을 보면 저의 과거를 돌아보게 됩니다. 또한 제게 당시에 필요했던 정보를 묻는 분이 계시면, 제가 아는 대로 답변을 드리기도 합니다. 먼저 겪은 사람들이 아는 것은 최대한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런 글을 만났습니다. 과연 미국대학에 보내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아이는 미국 대학에 가고 싶어 하고, 부모는 갈등이 오겠지요. 금전적인 걱정, 잘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글을 보니, 제 딸 소식이 아니라, 그 글에 대한 답변을 먼저 올리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제가 바라보는 시각을 적었습니다. 저와 제 딸이 한 경험, 고민, 고난, 기쁨 등을 최대한 편안하게 적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자고 아침에 가보니 밤새 엄청난 덧글이 달렸더라고요. 제 글이 필요하신 분들이 많았다는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안갯속에 있는 기분이 들 때, 그럴 때 누군가 먼저 걸어간 사람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싶으니까요. 그래서, 제 브런치를 찾는 분들께도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서 옮겨와 봅니다.
글의 대상이 특정 카페 멤버라는 점을 생각하고 읽어주세요. 꼭 미국 대학에 가는 문제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서 인생을 대하는 마음과도 통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은 분들 중 몇 분께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랜만에 이곳에 왔습니다.
딸 소식을 전하러 왔는데, 미국 대학 준비를 앞두고, 과연 이게 잘하는 일일까 쓰신 부모님의 글을 만났습니다. 취직을 잘할지, 영주권은 잘 딸지... 많이 걱정이 되시죠?
또한 얼마 전에 한 회원분이 저에게 카페 통해서 개인챗을 주셨더군요. 아이가 합격통지를 받았는데, 그 학교가 어떤지, 날씨가 너무 추운지, 기타 취업과 여러 가지에 대한 걱정을 한 아름 안고 계셨어요.
돌이켜보니 저도 같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10년 전에는 미 대학을 정말 가야 하나, 그러고 나서 합격한 이후에도 이게 맞는 길일까 계속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 물어봐도 답변을 얻을 수는 없었어요.
지나고 나서 보니 그때에 하던 그 고민은 결국 아무리 고민해도 별 결론을 얻을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언제부턴가 깨달은 상태이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고민 많은 부모님들께 드리고 싶은 이 글을 먼저 쓰고자 합니다.
사실 저희 딸도 아직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영주권이 나오지도 않았고, 취직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대학원 졸업반입니다.
세상의 일은 정말 알 수 없습니다. 아이가 잘 적응할 수도 있고, 취직을 잘할 수도 있고, 아니면 꼬이고 꼬여서 고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웃고 있지만, 저희도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선택하든지 간에 안정된 미래는 보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있다고 해서 취직이 보장되지도, 행복한 삶이 보장되지도 않습니다. 물론 적당히 대학 가고 남들 하는 대로 하면 되겠다고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요. 부모의 입장에서도, 내가 먼저 걸었던 길이니 편하게 조언을 해줄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오신 길들을 돌이켜보실 때, 과연 한국에서의 내 인생이 내가 계획한 대로 되었던가요? 대부분은 그렇지 않으실 거예요.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꼬였기도 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행운이 따르기도 했을 거예요.
미국 대학에 가는 아이들의 미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저희 딸의 인생도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처음에 얼리에 넣고, 디퍼 받고 나서야 제가 성적표를 잘못 만들어 넣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엄청 죄책감에 시달렸고요 (저희는 홈스쿨링이라 제가 성적표를 만들어야 했어요) 인생이 끝난 것 같은 처참함을 느꼈다가, 디킨슨에 장학금과 재정보조 잘 받고 들어가서 하늘을 날았다가, 다시 학교가 아이랑 잘 맞지 않아서 또 힘들었습니다.
들어가기 어렵다는 영문과로 가느라 그 고생을 해놓고, 졸업은 미대로 하였습니다. 졸업 후에 가기로 예정된 자리가 있었는데 갑자기 꼬여서 상처받았고요, 막판에 다시금 직장 구하느라 고생 많이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갔던 직장에서는 상사가 가스라이팅 해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그러고 나서 대학원에 합격했는데 코비드로 한 해 늦어져서 결국 졸업 후 두 해를 쉰 셈이 되었지요. 하지만 대학원 가면서부터는 아이도 방향을 잡은 것 같았고, 운도 풀리기 시작하는 듯하였습니다.
저희 딸을 보니, 결국 미국 대학에서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낼까, 어떻게 하면 더 인정을 받을까, 또 자칫 나댄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쩌나, 늘 스스로를 겸손하고 낮추려고 애를 썼었는데, 결국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이 미국이든, 한국이든, 대학원이든 직장이든, 자기가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고, 스스로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일이 잘 풀리면 잘 풀리는 대로, 고생을 하면 하는 대로, 삶 자체에 후회가 없어지더라고요.
그 결정이 옳은 결정이 아니었다 해도, 당시에는 최선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아가다 보니, 불운으로 다가왔던 일이 결국은 행운으로 연결되는 길이 되기도 하였고요...
지금은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있고, 학교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네요. 이제는 더 이상 움츠리거나 뒤로 숨지 않고, 늘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솔선해서 나서서 하다 보니, 그만큼 자기의 진실을 봐주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영주권은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만, 스스로 고민하면서 여러 가지 길을 많이 찾아냈더군요. 그래서 A가 안 되면 B를 하면 되고, 또 B도 안 풀리면 C를 할 수 있고... 이런 식으로 계획을 세우고 준비 중입니다.
영주권이 얼마나 빨리 잘 나오느냐 아니냐는 운도 정말 중요하거든요.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아이들의 앞날은 결국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일이고, 또 본인이 원해서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돈 문제도 진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저희는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조건 돈 많이 주는 곳으로 보냈고, 이혼하면서, 아빠는 대학원 학비지원을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제가 없는 돈 끌어다가 학비만 간신히 일부 대줬는데요, 결국 아이가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더라고요. 렌트비는 학교에서 근로장학생 하면서 충당하고, 외부 알바를 하면서 생활비도 해결하는 바람에 3년짜리 대학원을 큰 어려움 없이 잘 다닐 수 있었습니다.
처음 대학원 간다고 할 때, 어떤 이는, 한국에서 영어 선생만 해도 잘 벌텐데 왜 불확실한 곳에 그 고생을 하러 가느냐고 말하기도 했지만요, 우리의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꿈을 실천하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가장 힘든 아이들은, 부모 의존도가 높은 아이들입니다. 엄마가 학원 짜주고, 스케줄 짜주고, 다음 할 일 짜주는 것에 익숙한 아이들은 정말 고생을 많이 합니다. 정말 아이들이 미국 대학에 가고 싶다고 한다면, 스스로 얼마나 길을 잘 알아서 찾아갈 것인지, 어떤 의지가 있는지 등에 대해서 토론하시면 좋겠습니다. 왜 미국 대학에 가고 싶고, 왜 그곳에 자리 잡고 싶은지 그런 것들도 마찬가지고요... 독립할 수 있다면, 자기 스스로를 믿고,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앞길을 개척해 나갈 힘을 만든다면, 미국에서가 한국보다 꼭 더 어렵고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모두 힘내세요!
1. 부가설명 : 얼리는 미국대학 수시 전형을 말하고요, 디퍼는 합격이 아닌 대기자 명단에 든 것을 말합니다
2. 표지 : 뭔가 찾으려고 rit faculty of art and animation이라고 구글에 검색했더니 아이 학교 미대 소개 페이지 링크와 함께, 딸아이가 만든 애니가 미리 보기 화면에 뜨더라고요. 신기해서 캡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