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Aug 06. 2024

나는 하루 종일 무엇을 하는가

심심해 볼 새가 없는 이유가 궁금하다

지난봄이었나, 언젠가 덧글이 하나 달렸다. 뭘 하느라 맨날 그렇게 몸 상할 만큼 바쁘냐는 질문이었다. 그냥 가정주부이고, 재택근무 좀 하면서 밥 해 먹고 마당 좀 관리하는데 그게 그렇게 무리가 될 만큼 바쁜지 정말 궁금하다는 덧글이었다.


그 글을 읽고 나니 나도 정말 궁금해졌다. 나는 맨날 바빠서 종종거리는데, 남들은 바쁘지 않나? 하긴 심심하다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는 정말 평생 심심해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그럼 나는 왜 바쁘지?


뭐 일단, 나는 몸이 좀 굼뜨긴 하다. 그렇게 빨리빨리 움직이지 못한다. 말은 속사포처럼 빠른데 몸은 빠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하면 뭐든 좀 오래 걸린다. 꼼지락거린다고나 할까? 꼼꼼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항상 좀 생각이 많고 느리게 움직이는 편이다.


그래도 그렇지 좀 느리게 움직인다고 해서 뭘 그렇게 맨날 시간이 모자랄까?


그러다가 유튜브 시작한 김에 하루 일과를 찍어보기로 했다. 궁금하다는 사람들도 있고 하니 나름 재미있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유튜브를 찍으니 정말 극강의 꿈뜸이 발생했다. 무엇을 하든 카메라 세팅을 해야 하는 일은 세상 번거로운 일이었다. 마당에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일일이 카메라를 들이대겠느냐는 말이다. 누군가가 나를 쫓아다니면서 찍어주면 몰라도 말이다.


남편더러 찍어 달라고? 남편은 노나? 남편도 나름 바쁘다. 아무튼 그래서 되는대로 좀만 찍었다. 근데 그걸 편집하는 데에도 시간이 엄청 걸렸다. 누가 정말 나의 하루를 다 보겠느냔 말이다. 줄이고 줄여야 하는데, 아무튼 만들고 나서 목차를 쓰고 보니, 엄청 빼먹었는데도 목차가 제법 길었다.


하루의 일과를 보자면 사실 아침에 마당에 물 주는 시간만 해도, 두 시간이 걸린다. 내가 영상에서 한 시간 넘게 걸린다고 녹음했더니 남편이 바로 걸고 들어오더라. 무슨 한 시간이냐고. 물을 줄 때는 그냥 스치고 지나가면 안 되고 충분히 적셔야 하니 앞 뒤 옆 마당과 뒷산 기슭까지 다 주고 나면, 둘이 작업해도 두 시간 걸린다. 매일 주려고 하지만 못 주는 날들도 있다. 일부분만 주기도 한다.


마당에서는 매일 사건이 일어난다. 식물들은 꾸준히 자라고, 그러면서 쓰러지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계속 손을 대 달라고 한다. 꽃이 지면 따줘야 하고, 뿌리가 드러나면 덮어줘야 하고, 병에 걸리면 치료도 해줘야 하고, 오이를 따면 잎도 잘라줘야 하고, 쑥쑥 자라니 지지대를 만들었어도 계속 유지하게 해줘야 하고, 토마토 심은 것은 넘쳐나는 곁순도 따줘야 하고, 때로는 양분도 줘야 하고, 죽은 식물은 파내고 또 새로운 것 심어줘야 하고, 너무 크면 파내서 뿌리 나눔 해야 하고...



계절에 따라서 계속 씨앗도 심어서 모종도 새로 만들어야 하고, 영상에 담은 것처럼 때 되면 이것저것 수확도 해야 한다. 이렇게 줄줄이 늘어놓으면 대단한 농사를 짓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모두 한주먹씩 가능한 한 골고루 농사를 짓는다.


작은 농사도 이렇게 손이 가는데, 큰 농부들은 얼마나 일이 많을까? 만들어먹어 보면 안다, 사 먹는 채소들이 얼마나 싼지. 화원에서 파는 모종도 결코 비싸다 느껴지지 않는다. 작은 씨앗에서 모종이 되기까지 얼마나 정성이 필요한지 아니까.


영상에는 마당에 관한 것들만 모아놨지 집안에서의 다른 일들은 거의 없다. 가정집 살림살이가 다 비슷하듯 집안이 돌아가려면 또 곳곳이 손이 간다. 두 부부가 살기에는 이층 집이 크다 싶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라면 자질구레한 것들이 또 다 필요하기 마련이니 이고 지고 살게 된다.


매일 하는 일도 있고, 이틀에 한번씩 하는 일도 있고,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일도 있다. 이벤트 성으로 하는 일도 있고, 장보기 같이 밖으로 나가는 일들은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하긴 여름에는 장보러는 자주 안 간다. 고기는 냉동실에 쟁여있고, 채소는 마당에 있기 때문에 그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달걀이나 우유 정도만 사면 된다.



하지만 살림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람 구실도 해야 한다. 한국의 엄마랑 전화 통화도 늘 30분 이상 씩 하고, 미국에 혼자 있는 딸의 수다도 또 한참 들어줘야 하고, 그리고 당연히 남편이랑도 놀아야 한다. 이런 부분들은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이니까 생략하거나 포기할 수 없다.


지금은 여름방학이지만, 별거 아닌 재택근무도 은근 손이 간다. 아침과 밤에 영상 수업도 매일 하고, 온라인 북클럽 수업도 매일 하는데, 새로운 책 할 때마다 설명 교재랑 단어장 만들고, 매달 새로 인원도 모집하고 그런 것들도 또 별도의 시간을 추가한다


정말이지 남편이 살림을 잘하지 않았다면 나는 훨씬 더 많은 것들을 포기했을 것이다. 요새는 바느질도 거의 하지 않고 다른 취미생활도 다 접었지만, 유튜브를 시작했으니 거기다 하나를 더 얹은 것이다. 흠! 아무래도 내 눈을 내가 찌른 느낌이다. 일단 시작을 했으니 계속하고 있기는 한데, 이게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저녁의 정원은 또 다른 운치가 있다


남들은 어쩌고 사나 싶기도 하다. 심심하다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살림을 반짝반짝 잘하는 사람들도 신기하고, 계속 모임에 나가고 친구들 만나러 다니는 사람들도 신기하고, 자주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도 신기하다. 아마 그들은 내가 하고 있는 다른 부분들을 포기했기에 그런 것들이 다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다들 각자 자기에게 맞는 일들을 선택하고 사는 것이니까 말이다. 


결론은, 적어놓고 보니 내 눈에는 여전히 일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불만은 없다. 아니, 나는 이러고 사는 게 좋다. 뭔가 끊임없이 하고, 생산하고, 교감하면서 삶이 꽉 차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일들을 하면서 때로는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처럼 지쳐 나가떨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매일 즐겁고 감사하다. 


남편이 늘 하는 말처럼!

"Another tough day in paradise."



일상을 담은 영상은 여기 있습니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