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찰옥수수 내놔!
작년에 왔던 각설이도 아니고, 우리 마당에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곰이 찾아온다. 가볍게 한 바퀴 돌고 가는 날들이 대부분이지만 제대로 사고를 치기도 한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한 건 했다.
그러나 사고만 친 것은 아니고, 감시 카메라에 흔적을 남겨줬으니, 나는 그걸 냉큼 받아서 얼른 유포를 해야 예의가 아니겠는가!
밴쿠버는 곰 출현이 일상이다.
특히나 지금처럼 연어가 물살을 거슬러 오르고, 쌀쌀한 날씨가 시작되면 곰들은 배를 채우기 바빠진다. 이 지역에 사는 곰들은 딱히 겨울잠을 자는 종류는 아니지만, 그래도 추울 때는 아무래도 활동이 주춤하다. 그래서 진짜 추위 오기 전에 부지런히 먹으러 다닌다.
그 큰 덩치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분명히 많이 먹기는 해야 할 것 같다.
밴쿠버 지역에 사는 곰은 그리즐리 베어는 아니다. 무서운 회색곰이 마당에 온다면 그건 완전히 공포일 것이다. 다행히 이 지역의 곰은 흑곰이다. 사이즈도 그리즐리 베어만큼 크지 않다.
물론, 그래도 곰이니까 힘은 당연히 세다. 연어 먹으러 가는 길에 있다는 한 집은 매년 울타리가 망가진다고 한다. 아무리 단단한 울타리를 세워 놓아도, 밀면 그냥 쓰러져 버린다.
노스 밴쿠버에 있는 그 집은 결국 딱 맞는 방도를 생각해 냈다. 바로 곰 전용 문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울타리를 수선해 놔도, 저기를 꼭 뚫고 지나가는 곰을 위해서 아주 특별한 문을 제작했다고 뉴스들에까지 나왔다. 밀면 들어갈 수 있는 문이지만 아주 무거워서 너구리나 개 같은 작은 동물들은 이용할 수 없다고 하니 주인의 정성이 대단하다.
우리는? 아예 울타리를 없애버렸다. 어차피 울타리는 무용지물이다. 온갖 동물들이 다 타고 넘고 들어오는데, 막는다고 막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우리 집 뒤쪽은 길이 아니어서 그냥 밀어버리기 딱 좋았다. 게다가 산자락이어서 오히려 마당이 넓어진 효과가 생겼다.
그러니까 곰은 늘 자유롭게 들락날락하는데, 문제는 우리의 농작물을 축낸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최근에 털린 것은?
애지중지 키우던 찰옥수수! 지못미!
서양 옥수수는 이미 여러 차례 먹어서 쓸만한 게 남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찰옥수수는 늦게 자라는 바람에 수확을 못하고 있었다. 자라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이 곰이 와서 쑥대밭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옥수수를 꺾어서 신나게 먹는 모습과 더불어, 거대한 궁디까지 감시 카메라에 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가져온 씨앗으로 호호 불며 키우던 조선호박까지 며칠 후에 습격을 했다. 내가 들어 올릴 수 없을 만큼 크게 자란 호박인데, 그걸 끌고 뒷산까지 올라가서 먹었다.
아침에 나가보니 온 천지가 호박부스러기였다. 배추밭도 살포시 밟아 주시고, 다녀가셨다는 응가도 남겨주시고... 볼거리는 완벽하게 제공했지만, 조선호박은 진짜 아깝다.
감시 카메라에 잡힌 곰 모습을 보면 귀에 표를 달고 있는데, 자주 출몰하는 곰들을 그렇게 표시해서 관찰하는 것 같다. 그리고 만일 사람을 해친다면 잡아가서 처리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제발 사람도 안 다치고, 곰도 안 다치길 바라고 있다. 곰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철저히 금지된다. 걸리면 벌금이 아주 세다.
곰이 좋아할 만한 쓰레기통은 반드시 잠가서 곰이 현혹되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매혹적인 음식쓰레기통이 있는데, 곰이 때려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소재로 만들어졌고, 잠금장치도 있어서 열 수 없다.
이번에 왔을 때에도 두드리고 돌려본 모양인데 포기하고 갔다.
아, 내년엔 제발 대책을 세우고 무사히 찰옥수수를 먹고 싶다!
곰이 감시카메라에 잡힌 모습을 생생하게 보고 싶으신 분들은 유튜브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