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비행동안 함께한 기내 속 사람들
“어떡해”
라면을 먹다가 좌석에 쏟은 승객은 당황한다.
승무원이 달려와서 치우고 그 더러워진 자리는 담요를 깔아서 앉도록 한다. 어쩌다 라면을 쏟았을까? 라면은 쏟아지고 싶지 않았을 테고 쏟은 사람은 쏟기 원하지 않았을 텐데?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꽤 괴로운 어머님들은 화장실 앞에서 서서 수다를 나눈다. 나는 그들이 화장실을 기다리는 대기인원들로 생각했다. 오해였다.
옆자리 사람이 초콜릿을 하나 주면서 드실래요? 했다. 그 초콜릿은 달콤했다. 살짝 녹아서 초코맛 고추장을 먹는 기분이었지만 먹을 것을 나눠먹는 배려는 꽤 기억에 남는다.
내 옆자리 사람은 게임 영상을 계속 본다.
몇 시간 내내 게임 영상을 보는데 무슨 재미가 있을까 게임을 전혀 안 하는 나는 궁금하다.
사람마다 긴 비행을 견디는 방법이 다양한 것이 우리의 사회다. 각자에게 보내야 하는 시간은 똑같은데 시간을 함께하는 방법은 모두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핸드폰 앨범을 정리한다. 이 사진을 보고 저 사진을 보고 추억을 되돌아본다.
누군가의 손에는 책이 들려있다. 어떤 글자를 마음에 담고 눈에 담을까.
이 비행기 속에 앉아 모두는 한국으로 향한다.
각자의 사정으로 어디에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걸까? 나처럼 한국을 잠깐 가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완전히 한국으로 귀국하는 사람도 있겠지?
일을 하는 사람일까 공부를 하는 사람일까 장사를 하는 사람일까 무엇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이 하나의 비행기에 모여서 사회를 만들었는지 흥미롭다.
내 주변의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지나다니면서 서로 대화를 한다. 단체로 이 비행기의 대부분 좌석을 차지한 이 그룹은 어떤 이유로 뭉쳤을까.
누군가 라면을 먹기 시작하니까 냄새가 풍긴다. 갑자기 통로를 지나는 사람들의 손에는 라면이 쥐어져 있다. 남이 먹으니까 나도 먹고 싶어 지는 호기심의 자극이다.
조용한 기내에서 자기들끼리 신나서 내 귀에 또박또박 문장들이 들어올 정도로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이 그렇게 목소리를 크게 낼 정도로 말의 욕구를 자극시켰을까.
아! 슬리퍼를 챙겨 올걸. 비행기에서 끈으로 조여진 운동화를 신고 있는 답답함을 견딜 수가 없는데 다음에는 꼭 슬리퍼를 챙겨야 한다.
12시간 동안 존재했던 이 기내의 사회는 비행기가 한국에 도착하면 사라진다. 각자의 목적지로 흩어지고 나도 나의 길을 찾아간다.
한국이라는 같은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그 속에서도 여러 갈래고 각자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을 스쳐간 이 인연들, 어쩌면 내가 의식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나중에 연이 닿을 수도 있겠지? 그들은 이 사회에서 했던 행동을 기억할까? 가졌던 생각을 회상할까?
이번 비행이 나에게 글을 쓰게 할 정도로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핸드폰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나의 전부라서.
넷플릭스에 저장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이 그리 즐겁지 않다. 에어팟을 끼고 대사를 듣지만 들리지 않아서 아이패드 뚜껑을 덮어버렸다.
기내식을 카트가 다가오면 고개를 빼꼼 들어서 메뉴가 뭔지 본다. 치킨을 선택할지 돼지를 선택할지 꽤 중요한 문제다. 대부분 사람들이 레몬소스가 양념된 튀긴 치킨을 선택하고 나는 고추장 소스가 스며든 돼지를 선택했다. 고기가 퍽퍽하고 제육볶음을 흉내 내고 싶었지만 실패한 요리를 기내식으로 제공하다니 너무하네. 치킨을 먹을 걸 그랬나? 치킨을 먹었으면 돼지를 선택한 것을 후회했을까?
헛구역질이 났다. 빈 속에 아메리카노 때문일까? 비행기를 타기 전에 시간이 남아서 크로와상 샌드위치랑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비행기에서 멀미를 하는지 속이 안 좋고 구역질의 역겨움이 지속적으로 느껴져서 화장실로 도망갔다. 토는 안 했다. 물을 마시니까 진정됐다. 가끔 몸이 카페인을 거부하는 때가 있다.
지난번 비행에서 튀긴 옥수수를 맛있게 먹어서 비행기 뒤편에 스낵코너에 갔는데 옥수수가 없다. 오독오독 씹히는 촉감이 좋고 목구멍이 텁텁해질 때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면 탄산의 시원한 톡톡 쏘는 느낌을 겪지 못해 유감이다. 튀긴 옥수수 없는 이번 비행은 너무 슬프잖아. 어디에서 튀겨지고 있을까. 다음에는 꼭 만나자.
“어떤 음료를 드시겠습니까?”
나는 원래 기내식을 먹으면서 맥주나 와인을 마시고 잠에 드는 편인데 이번에는 새로운 맛을 보고 싶었다.
토마토 주스를 달라고 했다. 내가 생각한 토마토 주스는 상큼하고 침샘이 찌릿한 단맛이 느껴지는 동시에 건강한 맛이었는데 아쉽게도 제공받은 토마토주스는 소금물 같았다. 빨간 소금물 그 자체였다.
토마토의 배신이다. 비행기에서 가장 맛있는 주스가 토마토 주스라고 말한 사람 어디 갔어?
차에 타 봐. ㅇㅁㅇ
비행기의 흔들림이 꽤 자주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토마토 주스가 바닥에 쏟아지지 않으려고 벌컥벌컥 마셨다. 토마토 주스는 그렇게 사라졌다.
기내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듣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저 바라본다. 이게 더 재밌다. 리얼하니까.
모두가 알맞은 곳으로 잘 찾아가면 좋겠다.
셀 수 없이 비행기를 탔고 스쳐간 비행기에서의 인연들이 생각난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해진 기억손의 인물들은 어딘가에서 뚜렷한 존재로 각자의 사회에서 몫을 해내며 살고 있겠지?
지루한 12시간의 비행을 사람들을 관찰한 덕분에 이겨내서 좋다.
마스크를 쓰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답답한 마스크 오랜만에 쓰니 숨이 턱턱 막히네.
나 진짜 한국에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