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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다 Jan 19. 2023

퇴사를 한다고 했더니 52살 부장은 울었다.

중소기업 퇴사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눈을 뽑아버리고 손가락을 분질러 버린다며 직장에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직장 상사들의 악덕스러운 권력 남용이 넘쳤다. 직장 내에서 폭언과 폭력이 만연했지만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 없었다. 견디고 버틴 이유가 하나 있었다.


지방에서 일자리 찾기는 정말 힘들었고 어렵게 얻은 취업 기회를 꽉 쥐고 있기는 정신적으로 간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2년 동안 중소기업에 제조업 남초직장에서 재직하면 1,6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획기적인 정책 하나로 나는 노예계약을 했다. 사실 정규직으로 입사했지만 2년을 만근 해서 통장에서 1,600만 원이 들어오는 순간 퇴사를 하기로 혼자 정했다.


이제야 나의 퇴사 선언 썰을 푸는 이유는 드디어 내가 전 직장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그동안 갓 헤어진 전 남자 친구의 소셜 미디어를 확인하는 것처럼 수도 없이 내가 없는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새로 온 사람은 들어왔는지 나 없이도 잘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런 미련한 짓을 이제 그만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이 글을 올리면서 전 직장을 퇴사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싶었다.





2020년 9월에 근무를 시작했고 2022년 10월에 청년내일채움공제는 만기 된다. 회사를 다니면서 돈을 모아도 쉽게 모아지지 않았고 월세를 내고 생활비를 쓰면 적금을 넣을 수 있는 여윳돈은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다. 퇴근하고 하루 동안 기분이 별로였으면 치킨도 배달시켜 먹고 주말에 쇼핑몰을 돌아다니면서 기분전환하려면 귀걸이라도 하나 살 돈이 있어야 했다.


하루종일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니까 병원에 가서 허리 도수치료를 받으려면 돈이 필요하고 친구들을 만나서 학착시절의 추억을 되돌아보며 회사 사람들이 아닌 사람을 만나면서 인류애를 충전하려 해도 돈이 필요했다. 주말만을 바라보며 사는 주말바라기가 되었고 끝없이 회사 다니느라 고생하는 나를 위해 충분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보상을 해주려고 노력했다.


마침 이직도 성공했고 이제 퇴사를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내일채움공제도 만기가 10월이라서 퇴사하기 딱 좋은 시기다. 그동안 수 없이 상상했다.

퇴사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나만 퇴사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와 같은 시기에 입사를 했던 동기 2명도 퇴사를 희망했다. 우리 3명은 모두 같은 때에 청년 내일 채움 공제가 만기 되면 퇴사하는 목표 하나만 보고 그 어떤 뭐 같은 상황들도 다 견뎌냈다.



2022년 10월 16일, 역사적인 날이다.  드디어 2년 동안 가스라이팅 당하던 중소기업을 퇴사한다고 선언했다.


퇴사를 하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고 어떤 말을 하면서 퇴사 의사를 밝힐지 매일 자세하게 꿈꿔왔다.

몇 시에 말할까, 어디에서 말할까, 누구한테 먼저 말할까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나의 상사는 낙하산 부장 딱 한 명이었고 문제는 퇴사 의사를 밝히는 시간을 정하는 것이었다.


오전에는 출근하자마자 말하자니 눈치 보이고 점심 먹기 전에 말하자니 점심 먹는데 신경 쓰일 것 같고

점심 먹고 오후 업무 보다가 퇴근하기 전에 말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시간대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점심 먹고

나는 퇴사한다는 이야기를 할 타이밍과 부장의 기분을 살펴보느라 바빴다.



이미 나의 퇴사 의사를 밝히기 전에 입사 동기 두 명이 연달아 퇴사 소식을 전했기 때문에 아마 나의 퇴사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지 않았을까?


오후 2시 40분, 사무실에 부장이랑 나 그리고 다른 직원 몇 명만 남아있었고


이때 말하면 가장 잘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가득 차 올랐을 때,


나는 말했다.



"부장님, 시간 괜찮으시면 회의실에서 봬요."





나의 퇴사를 예상했을까? 단 한 번도 내가 회의실로 부장을 불러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니까 아마 처음으로 면담을 요청했기에 내가 퇴사 의사를 밝히려나 생각하며 회의실로 들어왔을 것이다.




회의실에 부장님이 들어오자마자 나는 말했다.




"다른 일은 아니고 이번 달까지 근무할 수 있습니다."


너무 속이 시원하고 이제 정말 이 회사와 악연은 끝이겠구나 기분이 오묘했다. 이미 생각을 끝냈고 수만 번의 생각의 결론으로 나온 답은 퇴사였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회의실에서 나는 이직을 하게 되었음을 밝혔다. 어디로 이직을 하는지 끈질기게 물어봐서 해외로 이직을 하게 돼서 한국을 떠나게 돼서 더 이상 직장 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장의 눈망울은 촉촉하게 눈물로 젖었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내가 살다 살다 도대체  정말 50살 넘는 아저씨가 우는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 보는 것 처음인데 당황스러웠다.


이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부당한 일도 많았고 미안한 일도 많았다면서 잘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난 그런 소리를 듣고 싶어서 퇴사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데?

면담 내내 왜 한국을 떠나는 힘든 일을 선택하는 것이냐. 나이도 있는데 해외로 나가면 점점 결혼하기 더 힘들어진다. 한국 떠나면 안 좋은 점이 더 많다.

친구들과도 멀어지고 한국에서의 커리어도 끊기게 된다. 왜 편한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냐.

꼭 그 회사를 가야 되는 것이냐. 내가 아는 사람도 그 나라에 있는데 엄청 심심해한다. 시간이 점점 지나면 나이만 먹고 결혼과도 점점 멀어지는데 언제 결혼하려고 하냐 지금 하던 일을 계속하지 왜 직무를 바꾸냐

내년에 연봉 협상 하게 되는데 좀 기다려라 회사가 많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려고 노력 중이다. 다시 생각해 봐라.


떠난다고 하니 이제야 내 편이 되려 한다.

나에게 잔소리를 하면서 퇴사를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하는 것 같은 답답한 대화가 지속되었다.


정말 끝까지 가스라이팅 하는구나?


나는 굳건하게 한국을 떠날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고 출국 예정일 보다 일주일 빠른 날짜로 한국을 떠난다고 말했다. 따라서 근무도 10월 말까지 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부장은 이 회사를 다닌 시간이 헛된 시간이 아니었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인수인계도 잘할 것이고 업무 분배도 하고 갈 후임들이 있으니 퇴사하면서 담당했던 업무 마무리는 깔끔하게 하고 가겠다며 퇴사 면담을 끝냈다.


그렇게 나는 첫 직장에서 첫 퇴사를 하게 된다.

50명 중에서 6명이 여자직원이었던 탈제조했습니다.

군대 같고 보수적이고 욕설과 폭언이 난무하는데 그 아무도 문제 삶지 않고 방관하는 곳에서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회사 때문에 출근길에 차에 치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고 낙하산 부장의 뒤처리를 하느라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이 세상의 모든 부담을 벗어던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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