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서 처음으로 산부인과에 갔다.
며칠 전부터 나의 몸에서 조금 특별한 증상이 나타났다.
- 아래 부분에 뾰루지
- 3일 넘게 부정출혈
- 왼쪽 골반뼈 통증
최근 1년 내에는 평소에 생리주기 규칙적이고 한 번도 부정출혈한 경험 없었어서
너무 걱정이 됐다.
한국에서 살 때 가끔 생리 주기가 두 달, 세 달 동안 안 맞아서 피임약 먹은 적 있고
올해 1월에 한국 가서 검사했을 때는 초음파 했고 갑상선 검사했을 때 문제없었어
건강에 대해서 안심했었는데
요즘 뭔가 몸이 면역이 안 좋은 것 같고 한국에서 건강검진 했을 때 갑상선에 결절 있다고 해서
조금만 어디가 아파도 건강상태에 예민한 상태가 되었다.
지금 한국도 아닌데 무슨 일 있나 싶어서 일단 무서워서 바로 병원 예약해서 산부인과 갔다.
산부인과 예약도 콘서트 티켓팅하듯이 광클해서 누가 진료취소한 자리를 어렵게 얻어냈다.
그래서 바로 다음날 병원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원래 가능한 날짜가 일주일 뒤였었다.
남의사였는데 엄청 친절하고 정말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듯이 진료에 되게 정성스럽게 집중해 줬다.
(당연하겠지만)
화장실에서 부직포로 된 치마 입고 바지와 팬티를 다 벗고 굴욕의자라 불리는 산부인과에 있는
그 의자에 누워서 다리 벌리고 의사가 직접 소중이를 확인했다.
의자에 눕기 전에 의사는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평소에 피임약 먹는 것 있는지
현재 복용 중인 약이 있는지(알레르기약 보여줌)
임신 가능성 있는지
예전에도 출혈이 있던 적이 있는지
언제부터 출혈이 시작됐는지
마지막 생리일이 언제인지 물어봤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성관계 여부 묻는데 여기는 성관계 여부 안 물어보고
바로 질 초음파 하면서 영상 보면서 여기는 문제없다 여기에 이거 보이냐 하며
영상을 같이 보면서 설명해 줘서 되게 꼼꼼하다고 느꼈다.
초음파 기계에 젤 같은 거 발라서 크게 아프지는 않았는데 그 기계 넣고 휘저으면서 영상 보느라
좀 깊숙이 넣을 때는 살짝 따가운 정도의 통증이 있었다. 아무래도 유쾌한 통증은 아니니까.
아무튼 자궁 내막에 작은 근종이 보이고 더 커질 수 있지만 지금은 크기가 작아서 괜찮다고 했다.
생리 주기가 안 맞는 건 내가 원한다면 호르몬 검사를 하고 어떻게 할지 추후에 논의해 보자고 했다.
약 처방 (소염제) 받고 끝이 났다.
그래도 한국보다 진료를 더 꼼꼼하게 봐주는 느낌이었고
영어로 최대한 설명해 주려고 검색하고 그래서 너무 고마웠다. 근데 초음파 보는 곳이 너무 환하고 대놓고 중심이라 살짝 민망했다. 내 기억에 한국에서는 산부인과 두 곳 다 어두컴컴한 곳에 굴욕의자가 있었다.
외국인인 나에게 진단을 내려주는 의사의 참모습을 보면서 이게 진짜 의사 구나 싶었다.
(한국에서는 진료 30초 컷이고 살 빼라 살 빼야 생리주기 돌아온다 이러면서 가스라이팅하는데)
사실 체중감량을 해야 하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지만 한국에서는 다른 질병의 관점이 아니라
체지방 감량하세요를 강요하는 것에 집중하는 분위기라서 불쾌했던 경험이 많았다.
의외로 산부인과 진료는 한국에서보다 훨씬 좋았다.
진료비는 한국 돈으로 9만 원 정도 나왔다.
나는 회사보험 있는데 바로 진료 보고 싶어서 국립병원 말고 그냥 사립 병원 간 거야 그래서 비용 내가 냈다.
병원에서 진료를 보는데 의사가 영어로 자꾸 마이오마가 있다고 해서 저게 도대체 뭘까 내 몸에 뭐가 있는 걸까 했다.
일단 내 몸에 뭐가 있다고 하니 그때부터 갑자기 무서워서 눈물이 눈에 그득하고 더 이상 의사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자기 말이 이해가 되냐며 의학용어를 영어로 말하는데 도저히 귀에 들리지 않아서 (영어 실력이 높지 않아서) 소견서를 써 달라하고 병원에서 나와 구글 번역기를 돌렸다.
번역된 내용에서는 자궁 후벽의 장막하근종, 자궁 내막에 균질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어로도 이게 뭔지 자궁의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모르겠다.
뭐가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그때부터 눈물이 줄줄 흐르고 아직은 크기가 작아서 괜찮다고 했지만 그냥 너무 슬펐다.
그래도 친절하고 진심으로 진료에 집중해 주고 영어로 어떻게든 설명하려고 애쓰는 의사가 너무 고마웠다.
그 뒤로 나도 안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