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30분에 칼퇴, 근데 퇴사할까봐요.

무역사무원의 업무 루틴

by 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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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 이어서 다시 나의 업무 루틴을 적어 본다.




작업일이 되면 컨테이너를 싣고 화물차가 공장으로 도착한다. 전표를 챙겨서 화물차 운전기사님의 차량번호, 연락처, 성함을 받는다.

컨테이너가 들어오면 제일 먼저 확인할 것은 씰 넘버와 컨테이너 번호가 운송사에서 받은 정보랑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다음 위험물 검사원님에게 화물차가 먼저 도착했는데 위험물 제품의 등급을 말씀드리고 먼저 물건을 실어도 되는지 양해를 구한다.

생산팀의 지게차 담당자에게 물건을 컨테이너 안으로 적입 해달라고 말씀드린다.




컨테이너에 물건이 다 실어지고 위험물 검사가 완료되면 현장에서 하는 일은 모두 끝난다.




위험물 검사증이 수령되면 포워더에게 선적 서류를 보내드린다.




최종적으로 선적서류는 PL, 위험물 검사증, 수출신고필증, 컨테이너 정보가 필요하다.

CIF 조건 같은 경우는 보험 가입을 위해서 CI도 보내드린다.




다음으로는 선적서류를 수입자에게 보내줘야 한다. 우리 회사는 FEDEX와 DHL 두 가지 방법으로 선적서류를 수입자에게 보내는데

수입자가 원하는 운송사로 보내주면 된다.




수입자에게 CI, PL, 원산지 증명서 원본, SUR B/L을 원본 서류로 보내주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다 끝냈다.

그리고 모든 서류를 파일철에 보관하고, 포워더에게 인보이스를 요청하고 입금하면 하나의 수출 업무은 끝난다.




지금까지 나의 업무를 살펴보면 아이디어 회를 해서 어떤 제안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프로그램을 쓰면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영업을 하면서 제품의 판매율을 높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면서 우리 회사 제품을 구매해달라고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된다.


솔직히 업무를 하면서도 크게 영어를 쓰면서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내 영어 실력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 수준의 영어를 쓴다.


누군가는 편한 일 하면서 월급 받는데 배부른 소리 한다고 나를 비난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직업의 수명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불안하다. 정말 키보드로 내용만 입력해서 서류를 만들고 전화나 이메일로 배를 부킹 해달라 하고

화물차를 예약해 달라하면 돼서 정말 간단하다.

이 모든 업무를 하면서 소요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10분이면 끝나는 일들이다.

여러 수출 건이 겹치게 된다 해도 무리 없이 할 수 있다. 주문을 받고 작업일 그리고 출항일까지 시간적 여유를 고려해서 일정을 잡기 때문에

야근을 해서 마감 기한을 맞추는 일도 없다.




내가 퇴사를 하고 싶은 이유는 업무가 너무 간단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한 수출과 다른 수출의 업무 공백기가 길어서

정말 일주일 내내 회사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노는 시간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야근을 해서 일이 너무 많아서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바쁘다고 퇴사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나는 반대로 일이 너무 없어서 퇴사를 하고 싶다.


칼퇴를 한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지만, 칼퇴를 한다는 뜻은 그만큼 업무의 강도가 높지 않고 월급도 적다는 뜻이다.


그 뜻은 연봉 상승률도 없다고 보면 된다.

이직을 하려면 경력과 나의 가치를 높여야 하는데

여러모로 노답이다.


뭐든 적당한 것이 좋다. 적당한 양의 일을 하고 적당한 양의 월급을 받고 싶다.

물 경력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대체적으로 문과 직무는 사무직이고 특별한 기술이나 전문지식이 필요하지 않아서 대부분 물 경력으로 간주되는 것 같다.


아무 일도 안 하고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면서 봤던 이메일을 또 보고 진행했던 서류들을 보고 또 봐도 시간이 안 간다.

누군가는 그런 시간을 즐겨라, 월급 받으면서 편하게 일하는 게 좋은 거다. 이렇게 말을 하겠지만,

일 없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이렇게 고역스러운지는 경험해 본 사람은 이 고통스러움을 알 것이다.


하루 이틀 몇 시간 정도야 여유를 즐기며 한가한 시간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 시간들이 지속된다면 나의 커리어도 무너져내려간다.

이 회사에서 나의 존재는 무엇인지 왜 이 회사를 다니는지 이유가 없다는 자괴감이 들기 시작하고 퇴사에 대한 고민이 갈수록 커진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커리어에 대한 자기 성장,

직무 변경으로 고민을 하겠다.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 중에 한 단계를 거치는 것이라 생각하고 좀 더 뚜렷한 목표를 가지면서 이직을 준비해야겠다.



어쩌다가 이런 회사를 들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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