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과 연애하지 마세요
종종 인터넷에서 '회피형' 타입의 사람들과 연애를 하는 이들의 고민 글을 읽게 된다. 회피형은 주로 다툼이 벌어졌거나 불편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갈등을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애쓰지 않는다. 자신만의 동굴로 숨어들어 묵묵부답으로 상대방에게 고구마 1000개 먹은 기분을 선사하거나, 영혼 없는 말이나 행동으로 눈 앞에 닥친 상황에서 벗어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회피형도 회피형 나름일 것이고 어쩔 수 없는 성향이나 환경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회피형과의 만남은 추천하지 않는다. 주변에 지켜본 바로는 회피형과 회피형이 연애를 하면 각자 속이 문드러지다 제대로 끝마무리조차 짓지 못했고, 회피형과 비 회피형이 만나면 비 회피형이 악역을 맡아 끝없는 싸움을 걸다 결국 이별을 고했기 때문이다. 아, 비 회피형이 포기하면 만남은 가능하다. 과연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작품 '레베카'는 영국의 소설이다. 1940년 히치콕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고 이후 뮤지컬로 성공했으며, 올해 히치콕의 작품을 리메이크한 영화 레베카가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예전에 뮤지컬 레베카에서 댄버스 부인 역을 맡아 열연한 옥주연 배우의 연기를 영상으로 보고 큰 감동을 받았는데 마침 영화가 개봉해 넷플릭스에서 시청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가장 흥미로웠던 캐릭터는 저택의 집사 '댄버스 부인'이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는 남자 주인공 '맥심 드 윈터'로 바뀌었다. 그리고 내가 영화 레베카에 붙인 부제는 바로 <찌질한 회피형 남자와 두 여자의 이야기>.
훤칠한 키에 백마처럼 멋진 차를 타고 환상적인 미소를 자랑하는 이 남자, '맥심 드 윈터'는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맨덜리라는 곳에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다. 어느 날, 그는 부잣집 사모님의 동행자(=심부름꾼) 신분으로 호텔을 찾은 여인인 '나'를 만난다. 그녀는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지만 맥심 드 윈터는 그녀의 싱그러운 젊음과 해사한 얼굴에서 묻어나는 순수함에 빠져들고, 둘은 결국 결혼식을 올린 후 맥심 드 윈터가 살던 맨덜리의 저택에 입성한다.
부잣집 사모님의 비위를 맞추며 눈치보기에 급급했던 '나'는 이제 대저택의 안주인이 되어 이전보다 훨씬 부유해지고 안락해진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겉보기에만 그럴싸할 뿐 주인공 '나'의 정신은 하루하루 파멸해가고 있다. 그 이유는 맥심 드 윈터의 전부인이자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레베카' 때문.
저택의 집사인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를 숭배하는 인물로서 죽은 레베카가 언제든 돌아오기라도 할 것처럼 그녀의 방을 티끌 한 점 없이 관리하며 보존하고, 레베카와 '나'를 계속해서 비교하며 이 저택의 안주인이 될 자질이 없음을 상기시킨다. 빗, 거울, 냅킨까지 저택의 모든 것에는 레베카를 상징하는 R이 새겨져 있으며 치매에 걸린 맥심 드 윈터의 할머니조차 레베카를 잊지 못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 아니 동물까지 사로잡은 레베카의 혼령이 머무는 저택에서 '나'는 빛을 잃어 간다.
사랑하는 부인이 보이지 않는 존재와 싸우면서 고독히 스러져 가는 동안 남편인 맥심 드 윈터는 무엇을 했을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나'가 동행인 신분으로 호텔에 왔단 이유로 고급 카페에 입장하지 못하자 맥심 드 윈터는 자신의 일행이라며 카페에 들어올 수 있게 도움을 주었고, 그녀의 주문을 받고 황당해하는 웨이터 앞에서 그녀가 민망하지 않게 편 들어준 것도 그였다. 그랬던 맥심 드 윈터가 맨덜리에 입성하는 순간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레베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달라는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고, 말 한마디 없이 출장을 떠나 그녀를 혼자 두게 했으며, 그녀가 아침식사를 하는 짧은 시간도 곁에 머물러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자신이 출장을 간 사이 저택을 찾은 남자와 바람을 피울까 봐 의심하고 레베카의 흔적을 우연히 찾아낸 그녀를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했을 뿐. 댄버스 부인의 계략으로 '나'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무도회에서 레베카와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을 때, 경악하는 사람들 사이로 그녀를 위로하기는커녕 가장 차갑게 돌아선 사람은 바로 맥심 드 윈터였다.
두 사람의 거리가 멀어지던 어느 날, 이미 장례까지 치른 레베카의 진짜 시신이 발견된다. 경찰은 어떻게 된 것인지 수사에 돌입하고 맥심 드 윈터는 혼란스러워하는 '나'에게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바로 본인이 레베카를 죽였노라고. 결혼 후 외도를 일삼던 레베카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며 본인을 죽이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라는 레베카의 말에 그만 방아쇠를 당기고 말았다고.
그 후 맥심 드 윈터는 이렇게 말한다.
"말할 수 없었어. 당신을 잃을까 봐 겁이 났어. 경찰에게 가서 어떻게 된 건지 알려줘.
몰랐던 일이니 당신은 아무 일 없을 거야. 나를 떠난다 해도 이해할게. 당신 뜻대로 해."
세상이 무너질 법한 충격적인 고백을 하고서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나를 떠날지 말지는 당신이 결정을 하라니? 이렇게 극적인 순간에서마저 그는 지극히 수동적이다. 그동안 자신이 했던 일들에 대해서는 당신을 잃을까 봐 그랬던 것이라고 무책임하게 넘겨버리고 이 관계에 대한 결정권 역시 그녀에게 떠넘겨 불편한 감정과 상황의 정면대결을 피하려는 것이다. 정말 사랑했다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잡던가, 아니면 너까지 이런 구렁텅이로 끌어 들일 수 없다며 이별을 고하던가. 상황에 대한 포기만 있을 뿐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다.
레베카는 모두를 사로잡을 만큼 아름답고 매혹적이었지만 실상은 자기 포장에 능하며 지극히 이기적인 인물이었다. 레베카와 맥심 드 윈터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부부인 듯 보였지만 사실 레베카는 여러 남자들과 바람을 피우고, 가문의 명예를 위해 이혼하지 못하는 남편의 무력함을 마음껏 이용했다. 그랬기 때문에 맥심 드 윈터는 레베카와 가장 극단에 선 인물, 순수하기 그지없던 '나'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껍데기뿐인 결혼생활을 하면서 맥심 드 윈터가 느꼈을 무력함과 마음고생까지 그의 입장을 백번이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의 첫 번째 결혼생활이 베드 엔딩이었다면 두 번째는 달랐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처럼 순수한 '나'의 매력에 이끌려 사랑에 빠졌고 그녀를 맨덜리에 데리고 왔다면 적어도 그는 이전과 다르게 행동했어야 했다. 아내에게 레베카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레베카를 사랑해 마지않는 댄버스 부인을 내쫓고, 치명적인 붉은 드레스를 입은 채 집안을 내려다보는 레베카의 초상화와 방까지 모두 없애버려야 했다. 아내가 자신의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길 바라면서 전부인의 흔적이 잔뜩 새겨진 모래성에 그녀를 가둬버리다니, 그의 행동은 모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맥심 드 윈터의 손을 놓지 않는다. 오히려 절대 놓을 수 없다는 듯 그의 손을 꽉 잡고 앞장서 걸어간다. 레베카에 대항해 우리는 이길 것이라며 남편의 용기를 북돋우고, 살인 혐의로 감옥에 가게 된 그를 위해 증거를 찾아 결국 진실을 밝혀내고 만다. 자신의 삶을 180도 달라지게 만든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죽은 레베카 역시 그릇된 방법이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성취했다. 자신의 죽음마저도.
맥심 드 윈터는 누명을 벗고 풀려난다. 다시 맨덜리로 돌아가는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그 여자의 가장 증오스러운 점이 뭔 줄 알아?
당신을 바꿔놨다는 거야.
해맑은 당신, 어리고 서툴던 당신의 표정을 빼앗아 갔어. 그때의 당신이 아니야."
안타까운 표정의 맥심 드 윈터. 그리고 '나'의 대답.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맥심 드 윈터 그리고 레베카에 의해 '나'의 삶과 성격, 태도가 모두 달라졌을지는 몰라도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해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진 남편을, 자신을 배척하는 댄버스 부인을, 모든 일의 장본인인 레베카를 원망하며 포기해버릴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들이 만들어놓은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가 자신이 맞이한 파국을 희극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다.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