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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여 Dec 11. 2020

눈뜨면 명상을 합니다

한 달간의 명상 도전기

AM 6:30

알람이 울린다

일어날까 말까, 오늘은 하지 말까?

자다 깬 뇌를 굴리다 결국 몸을 일으킨다.

카톡방에 인증해야 하니까.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지난 9월에 시작한 '아침 글쓰기 리추얼'이 끝났다. 매일 일정한 행위를 반복하면서 하루를 의미 있게 시작하고 또 삶에 활력을 얻기 위한 '리추얼'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면서 시작한 첫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나는 것에 대한 뿌듯함과 글을 쓴다는 재미에 의욕이 불타 올랐지만 그것도 잠시- 점점 해가 짧아지며 춥고 컴컴한 새벽에 홀로 글을 쓰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감성 감성 하던 글도 푸념 섞인 넋두리가 되어가고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는 리추얼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프로그램은 명상 & 차 마시기 리추얼. 명상은커녕 기도도 잘 집중하지 못하고 믹스커피 애호가인 내가 차를 즐길 리 만무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궁금한 걸 물어볼 사람도 있고, 어려움을 나눌 동료도 생겼으니까.


6시 30분, 알람이 울린다. 거실로 나가서 오늘은 어떤 명상을 할지 고민한다. 리추얼 메이커가 알려준 명상은 춤 / 14 스텝 / 걷기 명상, 총 세 가지인데 모두 눈을 뜨고 몸을 움직이는 명상이다. 리추얼을 시작하기 전만 해도 명상은 무조건 양반다리를 한 채 조용히 눈을 감아야 하는 줄 알았는데 움직임 명상이라니! 집중력이 짧고 얕은 현대인들에게 최적의 방법인 듯하다.


춤 명상은 다음 동작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는 것이다. 춤을 추며 자유로움을 느낀다는 분도 있었는데 나는 무슨 현대무용이라도 하는냥 몸을 너무 격정적으로 움직이는지 5분만 해도 진이 빠진다. 그래서 주로 걷기와 14 스텝을 세트로 각 10분씩 명상을 한다. 걷기 명상은 일정 거리를 걸으면서 땅에 닿는 발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거실에서 부엌까지 뒷짐을 지고 걸으면 밤새 잔뜩 굳어 있던 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오른쪽 발목에서 삐걱, 왼쪽 무릎에서 삐그덕. 그렇게 걷다 보면 몸이 풀리며 몽롱하던 정신이 깨어난다. 14 스텝은 양 손과 팔을 움직이며 정해진 동작을 반복해서 수행하는 것인데 친구들에게 줌으로 동작을 보여줬더니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진지했는데? 흠.


(좌) 5일 연속 명상에 성공한 기록


20분의 명상 시간이 끝나면 타이머 앱의 화면을 캡처하고 물을 끓인다. 티백을 내리는 동안 컵 사진도 찰칵, 인증샷을 찍어 카톡방에 그날의 감상과 함께 올린다. 피곤하고 집중을 못해서 별 시리 할 말이 없는 날도 있고, 평소와는 다른 느낌에 신나서 글을 쓸 때도 있다. 게시물을 올리면 리추얼 메이커가 간단한 피드백을 남겨주는데 이 댓글과 매일 리추얼 동기들이 올리는 글을 읽는 것도 빠질 수 없는 재미 중 하나. 각자 쳐한 환경도 생각도 다르지만 매일 아침 똑같은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을 나누는 행위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명상을 하다 보면 끊임없이 생각이 올라온다. 배고프다, 졸리다는 기본이고 몇 년 전에 본 영화의 한 장면이 갑작스레 떠오르기도 한다. 리추얼 메이커는 이런 현상은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라며, 우리의 목표는 머릿속을 비워서 완전한 無의 상태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비 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바라보고' '놓아버리는 것'이라 했다.


실제로 명상을 할 때 잠시라도 집중력을 잃으면 딴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어쩌면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 감정, 내 생각, 나라는 존재와 이를 둘러싼 것을 의식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의미 없이 흘러간다. 지금 내 머릿속에 스쳐간 생각, 마음에 스며든 감정을 바라보고 = 인지하고, 영양가 없는 것이라면 과감히 놓아버리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어느샌가부터 껍데기는 분명 나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속에는 내가 없는 것 같은 공허함을 느껴졌다.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등 예전에는 눈 앞에 펼쳐지듯 선명했던 것들이 이제는 안개 속인 듯 희미했다. 그래서 리추얼을 하면서 내 안의 나를 제대로 바라보고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에 잠식되지 않는 힘을 얻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명상 중에 특히 분노나 미움, 후회 등의 감정을 들면 쉽사리 떨쳐내질 못했다. 나를 흔들었던 말이, 되돌아 가고 싶은 상황이 떠올라 금세 발의 감각이나 동작을 잊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리추얼을 시작하면서 달라진 점은 적어도 명상을 하는 동안만이라도 여기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면 가슴이 갑갑해지며 몸이 굳는다. 그럴 때 나는 명상 동작을 잠시 멈춘 채 숨을 크게 들이쉬고 천천히 뱉는다. 이건 필라테스를 하며 배운 호흡법인데 숨을 들이쉴 때 배가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옆구리가 늘어나도록 쉬고, 숨을 뱉을 때는 뱃속에 공기가 하나도 남지 않을 만큼 배를 납작하게 만든다. 그렇게 몇 번 숨을 쉬고 뱉으면 굳어있던 몸이 풀어지기 시작한다. (꾸준히 하면 배도 납작해진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자, 나에게 집중하자고 되새기며 다시금 명상에 집중한다. 힘든 과정이지만 계속하다 보면 일렁이던 마음이 차분해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새벽에 깼다가 잠 못 드는 밤에도 명상을 한다. 예전에는 눈이 시린 걸 참아가며 다시 잠들 때까지 스마트폰을 봤다면 이제는 거실로 나가 20분 동안 명상을 한다. 피곤하고 졸린 와중에 명상을 하려고 몸을 움직이고 애를 쓰면 나를 괴롭히던 잡생각은 줄어들고 몸은 적당히 노곤해져 곧바로 꿈나라로 떠날 수 있는 최상의 상태가 된다.


지난 주말, 약 한 달간의 명상 & 차 마시기 리추얼이 끝났다. 다시 신청할까 고민했지만 겨울잠을 자며 휴식을 취하는 동물처럼 나도 겨울에는 쉬어가기로 했다. 햇살 한 점 없는 겨울의 아침이 우울하기도 하고. 다만 거리두기가 상향되며 다니던 헬스장이 문을 닫았으니 이제 잠들기 전 30분을 이용해 홈트 리추얼을 시작해볼까 한다. 끈기가 없어 작심삼일도 못하던 나였는데 이런 결심을 하는 걸 보니 60일 넘게 반복하며 어느새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나 보다. 혼자 하는 거라 꾸준히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첫 리추얼을 시작할 때 다짐했듯 나는 재미를 위해 하는 거니까!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이번 리추얼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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