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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여 Apr 26. 2022

식탁은 거실에 둘게요

결혼을 하면서 이 집을 구했으니 어느덧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오래된 아파트라 세련과는 거리가 멀지만 까진 마루 바닥과 빛바랜 나무 몰딩에서 세월이 주는 편안함이 느껴진다. 높이는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8층. 해가 적당히 들고,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돌고래 소리도 적당히 들린다. 거슬리지 않게 활기찰 정도로. 


집에 들어서면 양 옆에 옷방과 화장실이 있다. 한두 발자국 더 걸으면 왼쪽에는 거실이, 오른쪽에는 부엌과 베란다가 나온다. 평범한 풍경이지만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거실에 식탁이 있고, 부엌에 피아노가 있다는 것. 


신혼살림을 장만하면서 나는 가구를, 남편은 가전을 담당했는데 딱 하나, 테이블에 대해서 남편이 품은 로망이 있다고 했다. 스타벅스 매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길고 큰 테이블을 갖고 싶었다는 거다. 아파트에 스타벅스 테이블이라니 가당치도 않지만 최대한 남편의 뜻을 받아들여 당시 유행하던 원형 테이블이나, 확장형 테이블은 후보에 두지 않기로 했다. 여기에 우드 소재를 좋아하는 내 취향을 반영해 최종적으로 4인용 나무 식탁을 사기로 했다. 가깝게는 홍대부터 멀게는 판교까지, 주말마다 가구를 보러 다녔는데 우연히 티비장을 사러 간 가구점에서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발견했다.


4인용 식탁이지만 간격을 좁혀 앉으면 여섯 명도 앉을 법한 크기다. 평소에는 둘이서 넉넉하게 쓰고 가끔씩 친구들이나 가족들을 초대해도 좋을 정도. 디자인은 심플하고 컬러는 버터처럼 적당히 노란빛이 돈다. 색이 진하면 그만큼 무게감도 커져서 부담스러웠을 텐데, 마루 바닥과 비슷한 색이라 자연스럽게 집과 어우러져 마음에 들었다.


결혼식 한 달 전, 가구와 가전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거실에는 TV를 두고 맞은편에는 여느 집처럼 소파를 놓았다. 이제 반질반질한 나무 식탁을 둘 차례. 이사를 도와주러 온 엄마는 당연스레 '식탁은 부엌에 둘 거지?'라고 했지만 나는 거실 창가에 놓겠다고 했다. 원래 베란다가 있던 자리 말이다. 


식탁을 부엌에 놓기 싫은 이유는 첫째, 부엌이 좁기 때문이다. 우리 집 부엌은 일자형이고 맞은편 벽과의 거리가 멀지 않다. 식탁을 둘 수야 있지만 어딘가 끼여서 밥을 먹어야 하는 느낌이랄까. 둘째는 식탁에 앉았을 때 싱크대가 보이는 게 싫다. 열심히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고 싶은데, 자꾸만 엉망이 된 싱크대가 눈에 들어온다면 비위도 상하고 얼른 먹고 치워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들 것 같다. 그래서 식탁은 부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뒀다. 엄마도, 집 구경온 시어머니도 식탁이 너무 멀다고 하셨지만 '저는 지금이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아무리 봐도 그 자리가 딱인걸.


식탁에 앉으면 건너편 아파트가 보인다. 자리를 살짝 옮기면 하늘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창 아침 6시쯤 일어나 리추얼을 하던 새벽에는 밤의 여운이 남긴 푸른빛과 아침 햇살이 뒤섞여 오묘한 하늘을 감상할 수 있었다. 고요한 아침, 식탁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글을 쓰는 시간은 그날 하루를 잘 살아갈 힘을 주었다. 


몇 달 전에 식탁을 소파 자리로 옮겼다. 손님맞이할 일이 많이 생겨서다. 처음에는 생경했지만 밥을 먹으면서 TV 보기가 더 편하고, 햇볕을 등지고 앉는 소파 자리는 더 아늑하게 느껴진다. 이 위치를 유지할지, 예전으로 돌아갈지는 아직 미지수.


원래 식탁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작년에 산 전자피아노가 있다. 집에 피아노를 둘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선택지가 없기도 했지만 식탁을 놓기엔 좁고, 비어 두자니 허전했던 공간이 채워졌다. 밖에서 돌아왔을 때 하얀 피아노가 보이는 것 자체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물론 부엌에 있다는 숙명 때문에 피아노 의자 위에는 종종 요리에 쓰다만 파프리카나 냄비가 올라가기도 한다.






빌리브 매거진에서 건축 칼럼니스트 배윤영 씨가 쓴 책 <침대는 거실에 둘게요>에 대한 아티클을 읽었다. 책 제목이 우리 집 얘기 같아서 끌렸는데, 글쓴이는 대부분의 집이 아직까지도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설계되는 현실에서 1~2인 가구를 위한 새로운 주거 패러다임을 고민하고 실질적인 팁을 나눈다.


집은 고유의 공간이다. 남들과 상관없이 내게 가장 편안한 방식과 구조를 찾는 것.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빌리브는 신세계의 라이프스타일 주거 브랜드다. 나는 2019년부터 이메일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있는데 매주 '공간'에 대해 펼쳐놓는 이야깃거리가 신선하고 다채롭다. 공간에 대한 영감이 필요하다면 구독해보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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