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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an 06. 2022

세헤라자데의 멜로디

스토리의 힘(우리는 이야기를 왜 만드는 걸까? )

한 번쯤은 태평양 한가운데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흰고래 수염을 보러 꼭 한번 크루즈 여행을 떠나고 싶은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가진 적이 있었다.  예전 친구들과 함께 갔던 보라카이의 일몰시간 배 위에서 바라본 에메랄드 빛 바다에 매료되었고, 가끔 대왕 물고기의 모습을 한 내가 바닷속을 자유로이 헤엄치는 그 꿈속에서 느꼈던 기분 좋은 상상을 떠올리며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227일간 바다를 표류했던 파이의 이야기는 한 인간이 생존을 위해 자기보다 포악하고 잔인한 벵갈호랑이와의 사투를 벌이는 공포스러웠던 "실화"가 아니라 별빛 아래 거대한 흰고래 수염과 조우하고 환상적인 에메랄드 바다 빛깔과 어우러진 무인도의 산호섬에서 나 혼자 캠핑을 즐길 수 있는 스펙터클한 "모험의 이야기"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비록 표류했던 구명보트 안에서 벌어진 인간의 끔찍한 살육현장이 진실가까운 사실이라고 해도 내 머릿속의 파이 이야기는 보다 낭만적이고, 희망적인 인간의 생존 스토리였으면 하는 나의 바람 때문이다. 파이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했던 대사가 떠오른다.

 

"신을 믿는가? 그렇다면 나를 통해서 믿고 싶은 것을 믿으세요."

 

우리가 바라보는 똑같은 그림에서도 우리는 수십 개, 수만 개의 다른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수십 개의 파편 같은 조각들을 이어 붙인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다양한 생각의 실타래를 끄집어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신이 유일하게 인간에게만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재능을 선물해주셨다는 것을 잊고 있는 듯싶다.  혹여 당신에게는 이야기가 유희를 위한 수단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때로는 눈에 보이는 금은보화처럼 남들에게서 빼앗고 싶은 탐나는 재물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의 막강한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매일을 비슷한 패턴으로 일상의 지루함을 견디고 있는 당신에게, 특히 요즘같이 코로나로 인해 산과 들로 나가 마음껏 신나게 뛰어놀 수 없는 그대들에게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인가? 틈틈이 모바일로 즐겨보는 웹툰과 드라마, 신나는 블럭버스터가 아니겠는가? 한여름밤 등골이 오싹하도록 만드는 공포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러의 이야기도 우리의 일상에 색다른 마력이 아니겠는가? 단순하게 "재미있다"로 결론 내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시작은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심지어 그 옛날...TV, 핸드폰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골의 어두컴컴한 달빛 아래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옥수수를 먹으며 듣는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게 있었을까? 글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공부를 못하는 사람에게도 너그럽게 자신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존재이다. 


특히나 요즘은 다양한 소재를 이용하여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상상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 있는 작가들도 많다. 우주에 살고 있는 외계인과 친구가 되는 이야기, 시간을 거슬러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타임슬립의 이야기도 자주 등장한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직접 경험해보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 대리만족을 하기도 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궤도를 추측하기도 한다. 한 편의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 자료를 조사하고, 공부하고, 연구해야 하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작가들은 그만큼 많은 돈을 벌고 성공하며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명성을 쌓아 유명한 셀러브리티가 되는 행운도 얻게 된다. 소설가 외에도 방송작가,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 뮤지컬 배우, 가수 등 특별한 "이야기"와 관련된 직종에서 역량을 발휘하는 다양한 셀럽들이 요즘 청소년들에게도 워너비의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중에서 요즘 특히 눈길이 가는 사람이 있다. TV에서 종종 역사 강의를 하며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더니 관련 책도 출판하였고, 역사를 좋아하는 초등학생들에게도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설민석이다.  왜 그의 강의가 그렇게 인기가 많은 걸까 생각해보면 여기에도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수십, 수백 년 전에 있었던 사실에 가까운 내용들을 단순히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온 인물들의 감정과 그들 사이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극적 연출을 통해 역사의 간극을 이야기로 쉽게 메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 암기로 생각했던 내용을 감동이 있는 이야기로 이해시켜주는 것이다. "스토리텔러"라는 말이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무미', ' 무취'인 사건들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마땅한 이유의 향기를 입혀주는 것,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스토리텔러의 자질이 아닐까? 

영화 '택시 운전사'를 보며 1980년 5월의 잔인했던 광주 한복판의 울부짖음을 이해할 수 있고,  영화 '1987'에서 인물들 사이의 갈등과 투쟁의 과정을 보며 지금의 민주주의가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다. 


                                     

결혼 첫날부터 매일 밤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신의 목숨을 살린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헤라자데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뛰어난 이야기꾼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관찰하는 일, 학교에서 공부하는 주제들에 대해, 내가 읽는 책 속의 인물들의 행동에 대해 "왜"라는 물음표를 새겨보는 일은 내 머릿속에 잠들어 있는 거대한 스토리텔러로서의 잠재력을 일깨우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야기는 냉소적이고 무기력한 우리의 삶과 생활에 다양한 감정을 입혀주고, 보다 적극적이고 용기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멘토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좋은 스승으로서 친근한 이야기의 힘을 믿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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