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lom

by Yoon

새벽 3시 반에 잠이 깨서 또렷이 맑아진 정신과 이완된 몸의 불균형으로 아침 6시 반까지 뒤척이다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남편의 잠을 깨울까 봐 어두운 안방 침대에서 조용히 생각에 생각을 쌓아가며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2~3주 전부터 한밤 중 잠이 깨어 이렇게 얕은 수면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는데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위층에서 층간소음으로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난 이후로 계속된 불면증.


하얗게 쌓여 앉은 흰 눈의 순수함보다 도로 위에 검게 녹아내리는 구정물 때문에 짜증 섞인 한마디를 내뱉는 게 더 자연스러운 지 오래된 나.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매서운 바람과 추위 탓에 며칠 째 집안에서 한없이 게으름을 부리고 있던 내가 유일하게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고 몇 권의 책을 읽으며 생각을 쌓고, 다독이고 있는 요 며칠이다.

결혼 이후 꾀 오랜 시간 내 안에 가득했던 부정적인 생각과 기운들이 만들어 낸 가시를 스스로 느끼며 내 얼굴 속에 보이는 예민함을 앞으로는 조금씩 덜어내며 사는 건 어떨까 하고 자기 주문을 걸어본다.



어느 순간 거울 속에 비친 내가 낯설기 시작했다. 노화라는 거스를 수 없는 손님을 받아들이지 못한 건 아니다. 눈가의 주름살이 많아지고, 입가의 팔자주름이 짙어졌다는 것도, 눈밑의 처짐이 심해지고 피부의 탄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도 매일매일 내 얼굴을 보며 정량적으로 냉정하게 평가하고 노력하려고 하고 있으니.

거울 속에 비친 낯선 이는 불혹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 정도면 그 사람의 얼굴에서 보이는 그 사람의 인생스토리나 삶의 태도 같은 것들이 알게 모르게 기록된 내 자아이기도 하다.


이 낯선 나의 자아가 문득 내게도 찾아왔다. 지난해 시험관 시술을 여러 번 실패하고 심적으로 많이 지친 나에게 의사 선생님께서 한동안 내 얼굴을 유심히 보시더니 이렇게 물으셨다.

'많이 예민하시죠? 그럴 거 같네요.'

내 반응을 기대하지 않는 의사 선생님의 자조 섞인 질문과 대답이 계속된 '실패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그 질문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가깝지 않은 사람들조차 '예민함'(때로는 신경질적인, 또는 섬세함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온 그 무언가의 단어들)을 알아차릴 만큼 내 신체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게 조금 아찔하기도 했다. 나의 성격과 성향상 가까운 가족들에게조차 내 감정의 골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내 모습을 그대로 들켜버린 것 같아서. 결국 남들이 다 알고 있는 나의 예민함을 모를 거라 착각했다는 게 창피하기도 했다.

이십 대 이후로 앞만 보고 달려오고 뛰어오느라 항상 '빨리!'를 외치고, 남들이 이뤄놓은 것들의 평균이라도 따라잡기 위해 안달하며 지나온 시간 속에 불안감이 깊숙이 파고 들어왔다는 걸.


처음엔 목표 달성을 위한 강력한 부스터가 됐지만 때로는 그런 예민함으로 인해 사람에 대한 호불호도 강해져

상대에게 너그럽거나 보듬어주지 못하고 벽을 쌓고 경계하는 것에 더 익숙하기고 하고, 불필요하게 내 감정을 소비하여 스스로를 굉장히 피곤하게 만들기도 했다. 꾀 오랜 시간을 그렇게 불안과 초조에 의지해 버텨온 삶의 방식이 과연 앞으로도 나에게 득이 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평안을 물어보는 인사, "샬롬"
내가 감히 누군가의 평안과 안식, 그 자체가 될 순 없더라도
쑥스럽게 손 내밀며 당신의 평안을 물어줄 수 있는 그 누군가는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내 평안을 먼저 기도한다.

마음속에 들끓고 있는 부정의 기운을 가라앉히고

생각보다 넓고 깊은 내 우주에 유독 아프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곳이 있다면 얼마든지 지나쳐 가도 된다고. 그렇게 가볍게 넘겼으면.


내 주변도 함께 편안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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