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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긋 Feb 21. 2023

절친이별사 - 그 처음은 동네친구


나의 절친은 끊어질 절 뜻 그대로 끊어지는 친구인가 보다.


내 나이 40대 중반이 더 가까운 초반.

길지도 짧지도 않게 살아왔는데 남들 다 있어 보이는 절친이 나는 없다.


물론 과거의 어느 때에는 있었지만.

없어졌다.


한 번도 아니고 반복적으로 없어지는 그녀들.  그리고 이젠 안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한 백 년쯤 더 살아갈 테지만 절친 없이 사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겠지. 

그래 다들 외롭게 산다잖아. 애써 근자감으로 무장해본다.


절친이 없어지게 된 이야기를 글로 써서 남기려고 하니까 더 오래된 기억 속의 일들까지 떠오른다.

거참 신기하네. 애 낳으면서 뇌도 낳는다던데 애 둘을 낳았어도 기억나는 걸 보면 다행히 옛 기억은 뇌에 없었나 보다. (그럼 어디에? 아마 장 속에 남아서 묵어가고 있었겠지)


잊은 게 아니라 부러 기억하지 않았을 뿐인 사건들.



 

 저 멀리 어린 기억 속 첫 번째 절친은 옆집 살던 류경이다. 류경이는 서로의 옆집 그야말로 벽이 붙어있는 옆집에 살다 보니 매일 만나서 놀았던 친구. 몸이 좀 약해서 나보다 아픈 날이 며칠 더 있었고 나한테 착하게 대해주고 약간은 동생 느낌의 친구. 동네에 다른 아이들도 많았지만 류경이가 제일 착하고 집도 정말 딱 붙어있으니까 주로 둘이서 놀았다. 그러다가 내가 학교를 먼저 입학하게 되었다. 나는 2월생이고 친구는 4월생. 내가 학교를 먼저 가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조금 멀어다. 얼마 후에는 류경이네 집이 살던 집을 팔고 멀리 이사를 갔다.


매일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친구였건만 어느 하루 사건으로  우리 사이가 무 자르듯 댕강 끊어져버렸다. 그때까지의 인생 대부분 기억에 같이 있는 친구가 갑자기 소멸하다니.


그 사건은 우리가 다시 만나서 제물포 앞 역으로 학원을 다니던 때에 벌어졌다.


사건이 벌어진 그때 그 마트. 지금도 남아있다.


인천 제물포역은 매우 오래된 국철 1호선 전철역인데 내가 어릴 때는 앞 역 뒷 역 이렇게 나누어 불렀다. 6학년이 되니까 엄마가 나를 이 앞 역에 있는 영어와 수학 학원에 등록시켰다. 나는 4층까지 오르락내리락하느라 무다리가 되어갔는데도 이 학원이 괜찮아 보였는지 류경이도 학원에 같이 다니겠다고 등록을 했다. 둘이 학원에서 만나 각자 수업 듣고 끝나면 조잘대며 그 옆쪽에 있는 커다란 마트로 들어간다. 마트니까 군것질할 것이라든가 학용품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바로 그 재미나던 마트가 내 첫 번째 절친을 빼앗아갈 줄 미처 몰랐던 것이다.


그날도 그냥 그런 평범한 날이었다. 좀 더운 여름이었구나. 더운 날이라서 조금 더 잽싸게 마트 건물로 쏙 들어갔다. 대신 마트 안에서 구경하는 시간이 평소보다 좀 길어졌다. 나는 엽서와 편지지를 사모으던 때라 한 장에 백 원 하는 엽서를 고르느라 시간을 더 썼고 류경이는 뭘 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시원한 마트 안의 공기가 좋아서 다른 날보다 좀 더 오래 구경하긴 했지만. 우리가 계산대에서 차례로 계산을 하고 마트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그때 들리는 어떤 아저씨의 말소리.

"저 잠깐만 이리로 와볼래요."

"네? 저희요?"

난 또 순진하게 무슨 일이시지? 하며 류경이랑 아저씨를 따라서 마트 저 안쪽 깊숙한 곳 직원들이 다니는 문으로 따라 들어갔다.

문을 통과하는 순간 훅 더워지며 공기가 다르다. 이거 조짐이 안 좋은데. 점점 불안해지고 안 그래도 땀이 많은 내 손은 더더욱 축축해졌다.

아저씨는 그 더운 공간에 우리 둘을 세워두고 "뭐 잘못한 거 없어요?" 묻는다.

이때부터는 당황해서 내 시야가 좁아져버렸다. 통칭 우리가 앞이 깜깜해진다고 하는 딱 그 상황. 분위기는 기억나는데 장소의 형태 같은 건 흐릿한 흑백사진 같다.

나는 잘못한 게 없어서 없다고 했는데 류경이가 말이 없다.

"둘이 같이 손들고 서있어요."

"네? 왜요?"

"저기서 물건 훔쳤잖아요."

"네? 아닌데요?" 류경이를 쳐다봤는데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이상하다. 류경이가 왜 이러지. 순간 빠르게 와닿는 긍정의 느낌.

착하고 어리숙한 줄로만 알았던 류경이가? 나는 원펀치 투 펀치 연타에 연타로 충격을 받아서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리니까 순진하긴 순진해서 하라는 대로 두 손을 들고 벌서기 시작했고 아저씨는 자리를 비웠다. 자리를 비켰으면 팔 내려도 되는 건데 그냥 들고 있는 순진한 두 여학생.

팔을 든 채로 "류경아, 너 아는 거 있어?" 여전히 대답이 없다.

뭐지 뭐지 뭐지 내 머릿속은 하얘지고 덥고 답답하고 억울하고.

그런데 손은 계속 들고 있었다. 손을 든 채로 또 물어본다.

"류경아, 너 왜 그랬어?"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아마 이 질문은 하지 말았어야 하나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충격과 더위와 체력 소진으로 어지러워지려고 할 무렵. 아저씨가 돌아와서는 이제부터 그러지 말라며 손 내리고 집에 가도 좋다고 한다.

서로 할 말이 없어서 아픈 팔을 주무르며 어색하게 잘 가라고 인사했다. 그래도 끝까지 버스 정류장에서 류경이가 버스 타고 가는 건 보았다. 이때의 잘 가라는 인사가 마지막이 되리라고는 모른 채.


다음부터 류경이를 볼 수 없었다. 나 역시 엄마한테 류경이가 왜 학원에 안 오는지 묻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대로 바쁘셔서 나에게 학원은 어떤지 류경이는 잘 다니는지 묻지 않았다. 나는 내 친구가 도둑질을 했다는 충격에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한 그대로 조용하고 우울한 여름날을 보내야 했다. 학원 수업이 끝나도 마트에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그 계절 내 머릿속엔 온통 류경이가 왜 그랬을까. 소심한 친구인데 어떻게 물건을 훔치지? 이 질문이 가득했던 것 같다.



써보고 나니까 역시 내가 류경이에게 그때 그 질문을 잘못했구나 싶다. 왜냐고 이유를 왜 물어봤담. 그리고 그 이유가 뭐 중요하다고.


절친이별사라고 시작했는데 결국 자기반성이 된다.

이다음 절친이별사의 주인공은 나한테 내 입이 문제였다고 했다. 그 아이가 적어준 쪽지의 글귀는 선명하게 기억난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 거야."




@unsplash



묵혀뒀던 작가의 서랍에서 하나 꺼내봤습니다.


이어서 글을 쭉쭉 써나가야할텐데 속에 있는 상처를 꺼내어 곱씹어 매만져야하다보니 잘 안됩니다 ㅠ



블로그에서는 더 다양한 글을 시도하고 있어요. 놀러오세요.

https://m.blog.naver.com/ladyg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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