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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긋 Dec 28. 2022

어느 추운 날의 배숙

[어쩌다 엄마의 간단레시피] 배숙 - 배하고 대추로 기침퇴출

나 혼자였다면 절대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을 겨울날이다. 첫째를 학교로 내보내며 확인한 바깥은 눈이 제법 쌓여있다. 기온은 영상과 영하를 오가는 날이라 많이 춥지는 않은 날이다. 다만 내리는 눈이 녹는 게 반 쌓이는 게 반인 것 같아 길이 미끄러울게 분명하다. 그러니 나 혼자였다면 절대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심지어 급하게 끼워 신은 신발까지 선택 실수여서 미끄럽다. 아 이런 흉한 걸음걸이라니. 조심조심 엉거주춤 어기적어기적이다.


아파트 1층에서 거리로 나오니까 하얀 눈으로 덮여 밝아진 세상이 예쁘긴 하다. 그 예쁜 주변을 찬찬히 미소 지으며 셀카라도 남기면 좋으련만 셀카 아닌 애기 유아차 사진이나 찍는 엄마. 눈으로 하얘진 주변을 감상한다기보단 눈 배경의 애기가 더 이쁘고 좋은 고슴도치 엄마이다.  

마침 그전날 선물 받은 모자까지 어찌나 귀여운지 찍으면서 혼자 신났다. 


애기가 이쁘고 귀여운 것과 별개로 세상 다른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걱정되기도 한다.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횡단보도를 건너며 저 양쪽 도로 위 차에 들어앉은 운전자들의 생각을 머리에 떠올려본다.  춥고 미끄러운 날 유아차 끌고 나온 나를 보며 혀를 차며 한소리씩 하겠지? 이런 날임에도 불구하고 나올 수밖에 없는 건 애기 병원 데려가는 것 때문인데. 하고 묻지도 않은 해명까지 하며 내재적 대화 완료.




어제만 해도 아기는 콧물만 살짝 나는 정도였는데 지난밤사이에 기침소리가 제법 커지고 콧물 양이 세 배는 늘어났다. 자면서 젖 빠는 애기의 숨소리는 코가 콧물로 가득 차서 그르렁 대는 소리였다. 이러다가 숨이 막히는 건 아니겠지 걱정될 정도로 그르렁대는데 자는 아기한테 코뻥 - 콧구멍에 빨대를 넣고 엄마가 입으로 빨아들여서 콧물을 빼는 도구 - 을 하진 못하고 같이 비몽사몽. 걱정은 머리가 하지만 몸은 못 움직이는 수면상태.

어쩌다 엄마가 되어서 매분 매초가 선택의 연속이다.

콧물이 많으니까 코뻥을 좀 해줄까?

추운데 집에 있는 약만 먹일까? 병원에 데려갈까?

소아과를 데려갈까? 동네한의원을 데려갈까?

택시를 부를까? 걸어갈까?

소아과는 유아차로 한참 더 걸어가야 하고 동네 소아과에서 열 조금 나는 아기에서 무려 다섯 가지의 약을 처방하는 걸 보고 약간 심리적 거리감이 생겼다. 게다가 택시를 불러서 가기엔 애매한 거리인데다가 눈이 와서 미끄러운 날 자동차를 움직이는 건 위험하니까 뚜벅이가 편하다.

결국 이날은 아침부터 가까운 동네한의원에 들러서 삼소음을 처방받았다.




삼소음은  바이러스 배출에 좋은 한방 감기처방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동네 원장님께서는 한방감기약 중에서 제일 순해서 12개월 미만 아기에게 써도 되는 약이라고 설명을 덧붙여주셨다.


배는 기침에 좋으니까 감기약하고 먹여도 잘 맞을 듯하다.

나도 어릴 때 기침으로 많이 고생했었는데 배 달여먹고 좋아졌었다. 둘째 애기도 몇 주 전 처음 기침할 때 배즙 주었더니 잘 마시고 기침도 금방 좋아졌었는데 배즙은 떨어진 상태. 배 깎아서 갈아줘야지 생각하다가 한의원 나서기 직전에 확인받는다. 

“원장님, 배 갈아서 약 타먹여도 돼요?"

“네~ 그러셔요. 대신 배도라지즙은 조심하셔요. 도라지가 염증을 더 빨리 키우기도 해요."

집에 배도라지즙이 없는 게 다행이구나. 있다고 막 먹였다가 합병증 생겼으면 어쩔 뻔했나.

다시 또 뒤뚱뒤뚱 엉거주춤 유아차를 밀며 미끄러지지 않도록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기침은 우리 모두 해봐서 알지만 체력소모가 큰 신체반응이다. 그래서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배를 강판에 갈아서 삼소음 4분의 1 봉지를 타주니 8개월 아기가 잘 받아먹는다. 신기하게도 요렇게 먹이고 나면 기침은 참 금방 잦아든다. 


식물에서 만들어내는 재료의 한약도 좋은 선택이지만 기침에 좋은 배숙을 또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용 배숙은 배와 대추로만 만든다.  12개월 미만의 아기에게는 알레르기 위험 때문에 꿀을 안 쓴다. 대추 없으면 배와 유기농 설탕 조합도 괜찮다. 백설탕이면 배숙 맛도 좀 없어지고 미네랄이 없어서 배의 영양분을 빼앗는 결과가 되니까 되도록이면 백설탕은 피하자. 


배 반 개, 말린 대추 한 큰 술

이때 배의 씨 부분과 대추 씨앗은 빼놓는다.
말린 대추가 배의 수분을 많이 흡수하니까 물을 50ml 넣어준다.
흑설탕을 쓸 때는 물을 따로 넣지 않아도 된다. 

싱긋 - 기침 뚝 간편 배숙

불조절 시간조절 쉬운 인덕션에 7중 통스테인리스 프라이팬 작은 것을 놓고 분량의 재료를 넣은 후 약불로 30분 설정.


성인 여성 주먹 두 개짜리 크기의 배 반 개를 8조각 내었다.

먹일 때마다 저 배 조각 하나씩 꺼내어 으깨어서 약을 섞어준다. 


오늘의 배숙이 어찌 완성될지 모르겠지만

엄마의 마음이 들어간 배숙을 먹고 애기 감기가 빨리 사그라들길 바란다.



첫째는 어쩌다 생긴 아이였는데 2014년에 낳았고

둘째는 열심히 얻은 아이였는데 2022년에 낳았다.

어쩌다 이렇게 나이 터울 지는 형제의 엄마가 되어 두 아이 키우며 해먹이며 드는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맴돌다가 휘발되지 않기를 바라며 브런치 연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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