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돌봄매뉴얼, 엄마는 총괄매니저!

- 쉰 살 늦깎이 직장인 엄마의 여름방학 생존기

by Lahye


엄마의 방학 시간표


“팀장님, 출장 안 가시면 좋겠어요.

출장 다녀오실 때까지 해 놓으라는 숙제같은 일이 너무 많아요…”

아득히 오래 전, 직장의 팀장시절에 후임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가 떠오른 건, 최근 여름방학을 기다리던 첫째 아이의 말 때문이다.


“엄마, 방학 시간표 또 짤 거지?

그냥 학교 다니는 게 낫겠다… 헤헤.”


마치 방학 때 자유로운 아이를 옭아매는 ‘극성 엄마’로 보일 수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단지 출장 가기 전, 후임에게 업무를 정리하듯, 학교라는 일상의 틀이 사라진 아이들 방학의 널부러진 시간에 최소한의 계획이라는 안전망을 그려두는 것이 내 역할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방학 돌봄의 콜라보, 총괄 매니저와 실무자


올해 쉰살, 직장 경력 27년차이지만, 초등생 4년차 양육러이기도 한 나에게 초4 초1 두 아이의 여름방학 돌봄은 여전히 버거운 일이다.


여기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협력자는 바로 올해 76세이신 시어머님. 그런데 어째 좀 역할은 부당하다 싶을 정도로 기울어져 있다. 나는 스케줄을 관리하는 매니저, 어머님은 현장을 책임지는 실무 담당자.


태권도 차량 탑승부터 방과후, 수학학원까지 아이별로 요일마다 달라지는 촘촘한 일정은 복잡하다. 시간 맞추는 것은 기본이고, 어머님은 아이들에게는 안전하지 않은 도보이동 경로까지 함께 배웅과 마중을 걸어서 챙기신다.

땡볕 폭염 속, 여름낮 배웅과 마중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고로움이다. 애들이 수업을 받는 시간이 왔다갔다 하기 애매하신 어머님은 학원 밑 지하상가에서 산책을 핑계삼은 대기와 배회로 시간을 보내시는 것이다.


할머니의 손맛과 돌봄의 품안에 기대어 그렇게 방학은 간다


이번 주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되는 첫 날, 나는 새벽부터 출발하여 타지 출장을 가서 어느 행사장 강당의 앞 줄에 앉아 있었다.


오전 11시23분. 태권도 관장님의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문자를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OO이(둘째)가 아직 안 나왔어요.”


방과후 수업 마치는 시간과 태권도 송영차량 시간에 차이가 있어서, 방과후 선생님께 수업이 마치더라도 아이를 좀더 데리고 있다가 차량 시간에 맞춰 내 보내달라고 따로 부타드렸었다. 바로 뒷시간 수업이 있어 정신이 없으셨는지 지켜지지 못했던 모양이다.

급히 강당 밖으로 뛰쳐나가 방과후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야 했다. 딱 전화를 걸려던 찰나, 다시 문자가 온다.

“방금 나왔네요”

그 한 줄의 문자에 안도의 숨을 쉬며 다시 행사장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방학의 하루 스케줄은 ‘빈틈 없는 연결’ 위에 겨우 서 있다. 그 틈을 누구보다 조용히, 단단하게 어머님이 감당하고 메워 주신다.

그래서 출력하여 붙여둔 방학 스케줄표는 아이들이 쉬지 않고 무엇인가를 하라는 ‘ To do list’가 아니다. 내가 돌보지 못하는 시간 속에 함께 있어 주시는 어머님이 수월한 이해를 돕기위한 안내문이다.


어머님이 신경써야 할 것 방학 중 과업은 스케줄을 잘 맞추는 일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 끼의 밥. 돌아서면 다시 돌아오는 밥 시간도 큰 과업이다. 그 손맛과 돌봄의 품 안에서, 쉰 살 나의 여름방학 양육 또한 기대어 흘러가고 있다.




고맙고 짭조름한 여름수당에 마음을 담아


유난히 더운 여름방학. 아이들의 시간을 고스란히 품에 안고 계신 어머님께 직장인 며느리가 드릴 수 있는 감사는 무엇일까?

애살맞은 말 한마디도 좋지만, 돈버는 핑계로 나간 며느리로서 드릴 수 있는 ‘짭조름한 방학돌봄 여름수당’을 깜짝 챙겨드릴까 싶기도 하다.

치열한 손주돌봄의 현장에서 고단함과 뿌듯함의 줄타기를 반복하시는 어머님께 에어컨처럼 시원한 바람 한 조각이 불어들어가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p.s 딱 한달 정도여서 다행이다 싶은 여름방학. 두 달도 더 되는 길고긴 겨울방학은 어쩌나. 그래도 그 때면 아이들은 또 지금보다 더 커서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을 것이니!





* <대문 사진 출처> By 언스플래시 loes-kli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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