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사회생활 그렇게 하면 안돼!"
초딩의 사회생활론
방학 중의 방학
여름방학! 아이들에게 한정 없이 널부러질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방과후 수업, 태권도 특강과 정규수업, 수학학원, 자율학습으로 매일의 시간표를 작성해서 겨우 메워 두었다.
하지만 7월 말~8월 초, 극성수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방과후도, 태권도도, 수학도 모두 ‘방학’을 하는 기간. 고작 사흘이지만 이 때는 방학전체를 담당하는 친할머니가 온전히 두 녀석의 시간을 고스란히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에 두 손을 드신다. 보통은 이 시기를 맞추어 연가를 달아내는데, 이번엔 직장의 업무로 인해 그럴수가 없었다.
결국 일일담당제를 하기로 했다.
첫째 날은 할머니, 둘째 날은 나(엄마), 셋째 날은 주말남편(아빠).
내 차례가 된 둘째 날, 모처럼 낸 연가를 아이들과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빼곡히 대여섯 개 일정을 세우고, 기대에 부풀어 하는 아이들과 차례차례 과업을 수행했다. 그 중에서도 사전 예약해야만 입장 할 수 있는 디지털 아트존은 특별히 기대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너 사회생활을 그렇게 하면 안 돼”
드디어 입장. 8분짜리 디지털 영상의 상영.
문제는, 이미 전국의 내 놓으라 하는 미디어아트 전시를 경험 해 본 우리 집 아이들에겐 새로울 게 없었다는 것.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시시한 건 못 참아'하는 태도로 초1인 둘째가 큰 소리로 말을 뱉아냈다.
“뭐야? 이거! 재미없어!”
그 순간, 옆에 있던 초4 아들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너, 사회생활 그렇게 하면 안 돼.”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사회생활이라니? 초딩이 사회생활은 무슨!"
그러고는 다시 물었다.
“사회생활이 뭐냐?”
아들의 대답은 의외였다.
“남들 앞에서 속마음을
다 드러내면 안 되는 거.
사회생활은 눈치가 좀 있어야 해”
초딩4학년의 사회생활에 대한 정의!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열한살짜리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니!
아들이 그렇게 말한 상황이 이해가 되는 얼마 전에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들은 4학년 들어 새롭게 시작하게 된 '팀 프로젝트 활동'을 힘들어했다. 평소 우리 아들의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나서서 이야기 하기 좋아하는 성향대로라면 충분히 좋아할 상황일 텐데 의외다 싶었다.
같은 조 친구들이 협조가 안 되어 과업 수행이 어려웠고, 아들은 고학년으로 진입되어 맞이한 선생님의 엄격한 태도에 많이 위축됐었다. 팀별 과제를 마치지 못하면 수업이 끝나고도 남아서 마무리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친구들에게 물으셨다고 한다.
“팀으로 할래, 개별로 할래?”
아무도 대답이 없는 그 고요 속에서, 아들은 눈치없이 솔직하게 “개별로요!” 하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그 순간
“그럼 너만 개별로 해!”
아들이 느낀 선생님의 반응은 냉정한 모습이었다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시간에 아들은 내게와서 상황을 말하며, 속상했던지 눈물을 글썽였다.
아들은 팀작업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혼자만 개별로 하는 상황을 원한 건 분명 아니였다.
“네가 팀작업이 어려워서 그랬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려!
다른애들 처럼 너도
팀으로 작업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다음날 아침 등교길 차 안에서 한 번 더 선생님 앞에가 말 할 내용을 상기시켜 보냈다. 그 날 아들은 어렵게 용기를 내어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다시 팀원으로 합류는 했지만, 냉랭한 선생님의 태도에 아들의 그 경험은 생채기로 남았던 모양이었다.
그 일을 겪으면서 확실히 아들은 학교생활(사회생활) 중에 절대 속마음을 다 드러내지는 않을거라고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사회생활은 고작 학교와 학원이 전부지만, 그 속에서 이미 눈치있게 행동하는 것에 대해 익히게 되고, 자기 표현을 조절하고, 생존 방식을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의 직장+사회생활
사실 나의 직장에서의 사회생활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동료가 아무리 친해도 가족만큼 편할 수는 없고, 속마음을 다 말할 수는 없다.
윗분들과 일 할 때는 눈치를 보며 말을 골랐다. 지금의 사회생활에는 나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직원들의 개별 상황을 살피며 나의 말을 다듬는다.
27년간의 사회생활을 통해 무수한 인간관계 속에서 깎이고 다져왔다. 물론 오랜 시간을 했다고 모든 생활과 관계가 쉬운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어려운 부분도 많다.
아들의 불쑥 튀어나온 '사회생활'이라는 단어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너무 일찍 사회생활을 알아버린 것 같아 안쓰럽기도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하나씩 배우며 자라겠지 하는 수 밖에.
오늘의 깨달음
'사회생활은
속마음을 감추는 게 아니라,
마음을 꺼낼 타이밍을 배우는 일이다'
“엄마도 직장에서 하고 싶은 말은 다 못 해.
어려운 사람도 있고, 편한 사람도 있어.
그래도 가끔은 상대에게
내 솔직한 속마음도 잘 알아들을수 있도록
잘 표현하기 위해 진심을 다해”
아이가 못 알아들을지라도 독백처럼 읊조려본다.
나도, 아이도 각자의 자리에서 무수한 관계맺음에서 노력하는 중이니까.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껍질을 깨고 드러내는 시간들과 마주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무한한 응원을 보내본다.
[ 대문사진 출처 : 픽사베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