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입원, 뜻밖의 시선
작년 명절연휴 전, 밤새 속이 뒤집힌 날이 있었다. 감기가 오래 가서 밥은 못 먹어도 처방받은 진통제는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그래서 결국 위가 난리가 났다.
밤새 끙끙 앓다가 겨우 기다려 병원진료 시작에 맞춰 찾아갔더니, 또 열이 오르고 있었다. 감기 정도로 여겼는데, 진단은 뜻밖에도 폐렴. 아이들이 돌아가며 앓던 유행성 폐렴이 내 몸에까지 찾아 들었고, 저질 면역은 항복. 선택지 없이 입원을 해야만 했다.
다인실 병실 한 가운데, 링거줄을 주렁주렁 메단 채 누워 있는 나는 그저 ‘몇 호실 폐렴 입원환자 ○○○’였다. 환자복에, 하얀 침대 위에 놓인 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보통의 환자일 뿐이었다.
머리 감는 일
입원 이틀 째, 간호조무사님이 병실을 돌아다니며 '머리샴푸 서비스'를 안내했다. 일주일에 두 번, 신청을 받아 환자들의 머리를 감겨주는 서비스라고 했다. 미용실도 아니고, 내 머리를 다른 사람이 감겨준다는 게 어색 해 나는 손사래부터 쳤다.
그러고 난 뒤, 내 상황을 둘러보니 하루도 머리를 안 감으면 찝찝함을 못 견디는 내가 링거줄을 단 채 혼자 머리를 감을 엄두가 감히 나지 않았다.
결국! 눈 딱 감고 신청을 했다.
시간이 되니 복도에 어르신들이 수건을 들고 줄을 서셨다. 나도 머쓱한 듯 링거대를 끌고 그 뒤에 섰다.
잠시 뒤, 샴푸 의자에 누워 눈에 수건을 덮자 마음이 놓였다. 봉사자 선생님의 손길이 시원하게 머리를 문질렀다. 머릿 속까지 맑아지는 기분. 이렇게 상쾌한 순간이 병실에도 있구나 싶었다.
우연히 마주한 어르신의 시선
머리를 감고 난 뒤, 상쾌한 기분으로 복도를 산책했다. 이 방, 저 방을 슬쩍 들여다 보는데 어느 한 쪽 침대에 바싹 마른 다리를 드러낸 누워 계신 연로한 어르신이 눈에 들어왔다.
초점 없는 눈이 천장을 향해 박혀 있었다. 그 시선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자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의 화가 하늘을 찌르던 어느 날, 나는 방바닥에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장판 문양과 색깔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그 시간을 버텼다. 장판지에 그어진 선을 따라 손가락으로 그리며 몰입했다. 엄마의 잔소리가 멈출 때 까지, 내가 그 자리를 떠도 될만큼 엄마의 분노가 사그라들 때까지. 반성은 기미는 없이. 그 시간은 너무 길지는 않게 끝이났다.
하지만 내 눈앞의 어르신 시간에는...
그 끝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내가 근무한 노인요양원에서의 시간
요양원에서 근무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활 할 수 없는 어르신들이 24시간 돌봄을 받는 공간. 그 곳에도 하루종일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계시는 와상상태의 분들이 많았다.
밥 때, 목욕, 기저귀 교체, 프로그램 — 어르신들의 모든 하루일정은 시설의 시간표에 따라 흘러갔다.
그 때 나와 시설에서 함께 계셨던 원장님은 남다르셨다. 돌봄서비스를 수행 할 신입직원은 바로 현장에 투입되지 않았다. 며칠 동안 ‘어르신체험(?)교육’을 먼저 받았다. 식사, 배변, 이동의 영역들을 직접 경험 해 보는 교육이었다. (※물론 이 경험은 아주 오래 전, 2010년경 즈음이다)
어르신의 하루를 ‘직접’ 살아본다는 것
첫째, 식사.
요양원 어르신들께는 치아와 섭식 상태에 따라 일반식, 다진 식, 갈은 식이 제공되었다. 갈은 음식은 그냥 식판에 담긴 것만 봐서는 무슨 반찬인지 알 수가 없다. 보통 우리는 눈으로 추측하고 입으로 먹어보며 맛으로 느낀다.
갈아놓은 진득하고 물컹한 것을 삼키는 것은 자신이 싫어하는 반찬을 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잠시 긴장과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이 경험을 한 직원들은 갈은 음식을 드시는 어르신께는 메뉴가 무엇인지 설명을 드리는 것을 빼놓지 않게 된다. 안심하고 드시도록. 좋아하시는 메뉴이면 더욱 잘 삼키시도록.
둘째, 배변.
기저귀를 차고 생활하는 것은 결코 편치 않다. 입소 어르신 대부분의 상태는 기저귀를 착용하신다.
'압박감과 불편함'. 직원들이 기저귀를 착용해 보는 경험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경험이다. 특히 가만히 누워 있거나 바닥에 앉아있을 때 얼마나 베기는 일인지.
그리고 '수치심'. 대소변을 내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손에 맡기는 일이란!
기저귀 교체는 몸 뿐 아니라 기분이나 정서와 너무나 깊게 연결된 일이다. 단순한 신체케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돌보는 일이 직원들이 알아야 함을 깨닫게 된다.
셋째, 이동.
하루종일 가만히 누워서 와상상태 어르신의 입장이 되어보기. 이것이 바로 천장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누군가가 와서 일으켜 주기 전에는 침대에서 이동할 수 없다. 가만히 누워있으면 느껴지는 몸 구석구석의 불편함.
욕창이 생기는 것에 대한 이해를, 그래서 2시간마다 체위를 변경 해 드려야 하는 의미를 체득하게 된다.
천장을 바라보는 시간이 남기는 질문
천장을 바라보는 시간은 단지 ‘움직이지 못하는 시간’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불편함과 답답함, 외로움, 그리고 받아들임이 함께 있다.
사람들은 언젠가 노인이 되고, 몸이 불편 해 져 누군가의 돌봄 속에서 생활해야 하는 때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에 남는 건,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사랑받았는가이다.”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중
미래의 어느 날,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전적인 돌봄을 받아야 하는 시기를 맞이 할 가능성이 크다.
그 때의 나는,
그리고 나를 돌보는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 사람은 내 몸 뿐 아니라,
내 기분과 정서, 마음까지도 살펴 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지금은 내가 요양원에 근무하지는 않지만) 내가 마주했던 어르신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한 돌봄으로 존중받으시기를 바라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 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