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와있고, 집에 아무도 없어도 괜찮았다. 택배를 보관할 곳이라는 빈 칸에 ‘무인택배함’이라고 적어 놓으면, 택배기사님이 나의 물건을 고이 모셔두고 4자리 비밀번호를 문자로 보내왔다. 집에 들어갈 때 나는 무인택배함에 들러 택배기사님이 문자로 준 비밀번호를 유유히 맞추고 달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고 오기만 하면 됐다. 신축 오피스텔에 살 때 무엇보다 내가 딱 좋아했던 무인택배함이었다.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오고 난 뒤에는 상황이 달랐다. ‘대문 옆 오른쪽 담벼락 뒤로 택배물을 넣어주세요’라고 지정문장을 적어 두었지만, 물건에 따라 담벼락 뒤로 넘길 수 없는 물건들은 대문 앞에 턱 하니 놓인 사진이 찍혀 알림이 왔다.
어쩌나.. 저렇게 뻔히 보이는 곳에 두면 손이 탈 것 같은데, 집에 들어갈 때 까지 물건이 그대로 있을까 염려가 되었다.
외국 사람들이 신기해 하는 것이 택배가 집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어도, 도로변 가판대에 물건이 가지런히 진열이 되어있어도 우리나라는 누구하나 훔쳐가지 않는 것이 정말 신기한 일이라고 하던 것을 본 적이 있다. 문을 꼭꼭 잠구어 놓은 호텔 문도 따고 들어와 관광객의 짐을 뒤져 물건을 훔쳐가는 유럽 나라들에 비하면 치안은 참 안전한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빨리 챙겨두어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불안했다. 꼭 챙겨야 하는 물건같은 마음이 들때는 어쩔수 없이 가까이 사시는 시어머님께 전화를 드린다.
“어머님, 지금 택배가 하나 왔는데, 대문앞에 있어서요. 집 안에 좀 넣어주시겠어요?”
“그래? 그런데 나 지금 공원에 운동 나와 있는데.. 그럼 집에 갔다오지 뭐..”
우리 어머님 성격에 분명 자신의 모든 일을 다 포기하고 택배를 구하러 가실 분인 것을 알기 때문에, 멀리 나가계시는 상황이 편치는 않다.
그러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한다. 우리집 대문 앞에도 무인택배함 하나 달아야 하나.
택배 인 줄 정말 모르고
혼자 사시는 권OO어르신. 늘 주변을 돌아다니며 폐지를 주우시는 분이다. 리어카를 끌고 이 골목길, 저 골목길 다니시는 것이 하루의 일과다. 우리가 김장김치나, 명절 선물 지원품 등 무엇인가를 전달하러 가기 전에 전화를 드리면, 그 시간만큼은 집으로 돌아와 여측없이 기다리시는 분이시다.
그 어르신을 뵈러 갔다 온 사회복지사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어르신이 걱정과 근심이 깊어 요즘 밥도 잘 못 드시고 잠도 잘 못 주무셔서 부쩍 수척해 지셨더라는 것이다.
폐지를 주우시는 어르신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박스더미가 쌓인 곳에서 주워 온 종이박스가 어느 젊은남성의 택배 박스였다는 것이다. 집에 와서 무심히 열었는데 옷이 몇 벌 들어 있어서 헌 옷을 버리는가 보다 하셨다는 거다.
그런데 새 택배박스를 잃어버린 젊은 남성은 화가 나서 파출소에 신고를 하고 주변 CCTV를 돌려 범인을 색출했고, 결과 권OO 어르신이 가지고 가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권OO 어르신은 파출소에 불려 가셔서
“택배인 줄 몰랐지요.
박스가 쌓였길래 가져갔고,
집에 가서 열어보니
헌 옷이 든거 라고 생각하고
집에 그냥 뒀어요.
바로 갖다 주께요”라고 말씀 하시고는
박스와 옷을 그대로 다시 들고 와 파출소에 건넸지만 그 주인 남성은 화가 풀리지 않아 고소를 한다고 하고, 정신적 피해의 합의금까지 요구하는 상황까지 몰고간 상태라고 했다.
정말 어르신이 택배인 줄 몰랐을까?
박스가 잘 밀봉이 되어있고, 새 옷에는 텍도 붙여져 있었을 텐데 '조금만 이상하다고 생각하시지', '먼저 가져다 놓으시기만 해도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뭔가를 훔칠만한 인품의 분이 아니신 것을 잘 아는 우리는 어르신이 진짜 아무생각없이, 아무것도 모르고 하신 일이라고 믿어졌다.
그렇지만 요즘은 무지도 죄가 되는 세상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몹시 불쾌해 하고, 어르신을 도둑으로 몰고 있으며, 고소에 합의금까지 요구하는 극한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사가 어르신을 모시고 파출소에 동행을 했다. 파출소에 가서 그 택배주인과의 만남을 시도 해 보고, 화난 마음을 잘 누그러뜨리시도록 어르신도, 우리 사회복지사도 함께 면담을 시도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훔치려는 마음은 없었지만, 그래도 택배를 모르고라도 들고 간 점, 개봉을 해서 물건이 들어있는 것을 빨리 돌려줄 생각을 못한 점에 대해 사과를 하다보면 화가 좀 풀리지 않을까 하는 순수한 우리의 의도이자 마음이었다.
사회복지사가 실의에 빠진 어르신을 모시고 파출소를 같이 찾아가서 그 분에게 전화를 드렸지만 그 택배주인은 오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로 화가 풀리지 않아 여전히 정신적 피해보상을 운운하며 어르신의 어려운 사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합의금 100만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어르신이라는 단서를 건네고 이렇게 사정을 하는데도 귓등으로도 안듣고 자신의 입장만 고집했다. 얼굴도 보지 못한 그 분이 이제는 이해가 좀 되지 않고 야속했다. 어르신의 깊어가는 시름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어르신을 다시 만났다. 그런데 전과는 좀 달리 밝아 보이셨다. 그 사이 소식을 여쭈었다. 어르신이 며칠을 끙끙 대시다가 통장 안에 든 전재산 50만원을 찾아 봉투에 넣어 파출소에 가져다 드리며 택배 주인에게 전달해 달라하며 선처를 부탁하셨단다. 파출소에서 마침 전화가 와서 택배주인이 현금을 받아갔고 합의가 되었다고.
결국 돈으로 어찌 해결은 되었다. 택배를 잃어버린 마음이야 편하지 않았겠지만 전해듣는 우리로서는 기가 찼다. 한 번도 어르신과 만나지도 않고, 파출소를 통해 전화로만 자신의 입장만 이야기 하던 그 택배 주인이라는 분. 쓰레기 줍듯 모르고 주워 온 택배실수로 톡톡히 비싼 값을 치른 치르신 어르신을 보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르신은 100만원이 아니라 50만원에 해결된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 하셨다.
혼자사는 삶을 단단히 잘 지키려면
세상은 토끼처럼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혼자 사는 어르신들은 달팽이의 속도로 살아가신다. 어르신들의 어리숙함을 이용하려고 작정하고 달려드는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한 어르신은 보이스피싱으로 자신이 평생 애지중지 모은 전 재산 2천만원을 순식간에 날리셨다. 몸져 누운 어르신의 안타까운 사례를 상세히 전해 들으며 정말 나도 속병이 날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우리 기관에서 진행한 보이스피싱 교육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후의 일이었다는 것이다. 속수무책으로 당하셨다.
또 다른 어르신은 동네에 매일 어르신들을 모아놓고 휴지며 식용유 등의 경품을 주는 행사를 하는 곳에 가시다가 나중에 100만원이 넘는 약을 무엇에 홀린 듯 계약을 하고 오셨다. 얼마 뒤 집에 배달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정체불명의 고액 약박스가 있는 것을 가족들이 뒤늦게 알고 어르신을 몰아붙이며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도 보았다.
취약한 독거어르신의외로움을 겨냥하여 다정한 모습을 하고 다가오는 것들.
따뜻하기도 고맙기도 한 것들이 결국 전부를 단박에 삼켜버리는 것을 보며 나이든 삶을 살아가는 자립적 삶에 소중한 것들을 지킬 줄 아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게된다.
나이가 들수록 신뢰롭고 순도있는 다정한 사람들을 옆에 둘 일이다 싶다.
나의 일상을 함께 나누고, 함께 상의하면서, 의지할수 있는 이들의 말을 귀 담아 듣기도 해야겠다.
나를 구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삶을 구해 주기도 하는 서로에게 '찐 이웃'이 되는다정한 연대를 잘 만들어 두는 일이 결국 혼자의 단단한 삶도 잘 지켜줄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