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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밀한 나혜씨 Dec 01. 2024

100세의 삶을 살 각오

초고령노인의 독거살이

내 몸을 찾아오는 불청객     


40대 중반, 몸의 지축이 무너진 것처럼 통증이 온 몸을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한 번은 비행기를 탔을 때 처럼 귀가 먹먹해 지면서 머리가 띵한 증상이 왔다. 병원에서 전정신경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약을 먹었지만 증상은 계속되었다. 


귀 안이 먹먹했다. 바깥 세상의 소리들이 내 안에 들어오려면 비집고 통과해야하는 막이 하나 생긴 것 같았다. 외부소리들은 어둔한 덩어리로 나를 둘러쌌다. 집중해서 잘 들어야만 내용이 들렸다.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나는 내 안에 갇힌 느낌이었다. 그 때 나는 ‘아! 귀를 먹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구나’ 맛보기 체험을 했다.


늘 독거어르신 댁을 방문하면 혼자 계시는 방 안에는 텔레비전의 소리가 쩌렁쩌렁 했다. 어떨때는 대문을 두드리는 우리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당장 리모컨을 찾아들고 볼륨을 낮추고 싶은 소음인데도 그 속에 있는 어르신의 표정은 편안했다. 텔레비전을 끄고도 안부 한 마디를 건네려면 평소 목소리를 몇 단계나 업을 해야만 가능한 소통이었다. 그렇게 고립되어가고 있는 어르신의 삶이 보였다.       


젊은 사회복지실습생들이 기관으로 찾아와 실습을 할 때면, 빼놓지 않는 실습교육이 있다. 귀마개를 꽂고(난청체험), 고글을 쓰고(시각질환 체험), 손목과 발목에는 모래주머니같은 무게를 장착하고(근감소 체험), 팔꿈치와 무릎에는 구속등을 착용(관절굴곡 제한)을 ‘해 보는 체험’이었다. 노인의 불편한 신체를 알 일이 없는 세대들에게 직접적인 도구의 도움을 받아 경험해 보게 하는 ‘노인체험도구’교육 이었다. 


어벤저스급의 장치를 온 몸에 부착하고 난 뒤 걸어보거나 계단을 오르내려 보라고 한다. 신체의 불편함인데 다들 심리적인 불편함을 따라 느낀다. 이러한 경험은 노인의 신체가 주는 불편함을 느끼는 직접체험이다. 한편으로는 아직 내 삶이 아닌, 도구를 벗으면 끝이 날 수 있는 간접체험이기도 하다. 그러나 곧 우리는 머지 않은 시기에 내 몸과 마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오는 불청객들을 맞이하게 시기가 될 것이다.         





  

90대 초고령노인들을 위한 특별외식     


한 번은 정기후원자님의 따뜻한 후원금 30만원을 받으면서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 해 보면 좋을까 궁리를 했다.      


우리가 지원하는 독거노인분들의 나이대는 65세부터 90대까지 거의 30년정도로 스펙트럼이 넓었다. 단적인 예로 90대 어르신의 자녀분이라며 70이 다 된 노인이 나타나신 경우가 더러있었다. 부모도 자녀도 모두 노인인 세대가 늘고 있는 때다.


우리는 수백명의 어르신 중 90세 이상 초고령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외식을 지원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상식으로 90대 노인은 혼자 집에서 생활하기 힘든 시기다. 그 나이대의 노인분들은 대부분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치료나 전적인 돌봄을 받으며 생활하시기는 경우가 많다. 평소 프로그램에 모시고 싶어도 신체적 제약과 거동의 불편함으로 잘 나오시지 못하는 분들. 이 기회에 따로 모셔서 평소 해 보지 못한 외식을 지원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에 우리는 초점을 맞추고 준비를 했다.


일일이 전화를 드리고 여쭈어 열분 남짓의 어르신들을 모시기로 했다. 

메뉴는 뭐가 좋을까? 틀니를 착용하시고 소화기능도 떨어지시니 드시기에 연하고 편한 것으로 고민했다. 유명 식당가의 만두전골로 소문난 맛집을 골랐다. 미리 식당을 방문하여 아늑한 독립공간을 확인하고, 앉았다가 일어나는 좌식이 아닌, 의자가 있는 입식(의자)자리를 확인하고, 분주한 점심시간과 겹치지는 않는 11시로 예약을 했다


그렇게 간만의 특별한 외식날이 되었다. 연로하시니 직원들이 앞앞이 집으로 모시러 가도록 동선을 짰다. 어르신들은 주름진 얼굴 위에 이쁘게 화장도 하셨다. 아껴둔 옷을 곱게 차려 입고 나오셨다. 지팡이나 보행기의 도움을 받으셨지만 모두 본인 두 다리로 걸어 나오신 어르신들. 느리지만 즐거운 걸음이셨다. 특별할 게 별로 없던 무료하던 일상에 조금은 더 반짝거리는 날쯤 되어보였다.


식당에 도착해서 테이블마다 한 명씩은 보조인력들이 앉아, 수저를 놓고 전골을 떠 드리고, 반찬을 권하기도 하며 혼자가 아닌 간만의 함께하는 식사를 도왔다.      

그런데 기대보다 어르신들은 잘 드시지 못하셨다. 고슬밥부터가 난관이었다. 어르신들은 아무래도 목넘김이 쉽지 않으니 촉촉하게 진득한 진밥이어야 했다. 연한 만두전골은 곧잘 드셨지만 엄두를 내지 못할 반찬들이 많았다. 신선한 샐러드보다 폭 삶은 나물이어야 했다. 심심하기보다 간도 짭조름 해야했다. 쥐포채 무침이나 콩자반의 밑반찬은 여물어서 아예 손 댈 수 없는 밑반찬이었다.  두부나 계란찜이 있기도 했지만, 젓가락이 한 번도 닿지 않은 반찬을 보며 씁쓸했다.


초고령의 독거어르신 대상 특별외식지원 

우리 고운 어르신들이 하나같이 “맛있었다”, “같이 먹으니 입맛도 더 좋다” 너스레를 떠셨지만, 진짜 속내는 수십첩의 진수성찬보다 치아나 소화상황에 맞게 ‘늘 먹던 것을 먹는 것이 가장 편한 식사’임을 우리는 그 날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초고령어르신들께는 함께하는 식사자리보다, 집으로 개인이 좋아하시는 맞춤 음식을 가져다 드리는 배려를 하게 되었다.           






100세노인의 최적 독거 생활


EBS 다큐프라임 ‘100세 쇼크’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시골에 사시는 100세 남자어르신이 나오셨는데 무려! 자그마치! 100세인데도, 눈이 침침하고 잘 보이지 않으시다면서도  자전거까지 곧잘 타고 다니셨다.  50년을 살아온 익숙한 동네 길이라 가능하신 일이었다. 그래서 노인들에게는 살아오던 익숙한 집과 동네가 중요한 이유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어르신이 거주하시는 방안의 모습이었다. 옆집 아주머니가 와서 어수선한 어르신의 방이 지저분하다고 치워드려야겠다고 했지만, 어르신은 손사래를 치며 본인이 생활하시기에 가장 편한 구조로 ‘최적화’ 되어있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남들이 보기엔 너저분하게 널부러진 방안이지만, 약봉지, 물, 반찬, 음식을 해 먹는 조리용 버너까지 방안의 앉은 자리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방안의 배치였다. 



늘 우리는 독거 어르신댁을 방문하면 쌓아놓고 버리지 않는 집착의 모습으로만 오해를 했다. 그리고 정리정돈도 잘 하지 않는 무기력함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 다큐를 보는 순간 초고령노인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나름의 질서를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면 가 닿을 100세 삶을 살 각오 


내년이면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을 한다. 

또한 75세이상의 후기고령인구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 100세를 넘은 노인인구도 작년을 기준으로 7천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통계를 좀더 이어 이야기 하면, 평균기대수명이 84.3세(여성 87.1세, 남성 81.4세, KOSIS 국가통계포털)다. 말그대로 평균이 84세다. 평균보다 적은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도 있다. 내가 그 많은 사람에 속할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아득 해 보이기만 하는 100세의 삶이지만 확실한 것은 모두가 공평하게 매일 한 걸음씩 내딛는다는 점이다.      


일본의 시바타도요 할머니는 혼자만의 삶을 살며 초고령시기에 들어서 92세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98세에 낸 인생 첫 시집 <약해지지마>로 70만부의 베스트셀러작가가 되었다. 

어떤 나이든 무엇을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는 초고령노인. 한 세기를 걸친 백년이라는 무게의 초고령시기를 살게 될 삶과 자세를 떠올려 본다.  


준비나 계획대로 살아지는 인생도 아니지만, 어쩌면 가서 닿을 수 있는 100세의 삶에 대해 자신만의 각오 하나쯤은 다지기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약해지지 마>   / 시바타 도요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나> / 시바타 도요

침대 머리맡에 항상 놓아두는 것

작은 라디오, 약봉지,
시를 쓰기 위한 노트와 연필,

벽에는 달력 날짜 아래 
찾아와주는 도우미의 이름과 시간,     
빨간 동그라미는 아들내외가 오는 날입니다.

혼자 산지 열 여덟해 
나는 잘 살고 있습니다...!



*대문사진 출처 : 언스플래시 danie-franco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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