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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밀한 나혜씨 Nov 17. 2024

쓰레기로 고립의 담을 쌓는 노인들

쓰레기집 치우기 프로젝트

엄마의 냉장고


“엄마, 이렇게 더운 날은 음식을 냉장고에 넣었어야지. 맛이 갈려고 하잖아”

“얼마 안됐어. 아까우니 먹어야지”

“제발 좀!”     


친정집에 들른 날. 불쑥 치솟는 스파이크의 화를 억제 못하기 일쑤다. 엄마 마음대로의 자유가 철저히 보장된 엄마집이라지만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에 노출된 노인의 상황을 마냥 두고 볼 수는 없다.      


보통 더위도 아닌데, 먹고 남은 잔반을 덩그라니 싱크대 위에 올려놓으면 금새 맛이 가는 걸 저리 무심히 두나 싶다. 냉장고를 열어보면 넣어놓고 있는 지 조차 모르는 음식이 태반이다. 어떤 것은 냉장고 안에서 이미 곰팡이 꽃이 하얗게 피었다. 냉동실은 또 어떤가. 아무리 냉동이라지만 유통기한이 아무 의미없다. 세월이 몇 겁을 지나고 있다. 어찌 내가 화를 내지 않고 이 상황을 정리할 수 있겠는가.     


위선종 수술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배가 아프다고 엄마의 호출이 온 적이 있었다. 좀처럼 아파도 끙끙 참았다가 동네 병원에서 진료를 보던 양반인데, 아프다고 호출을 줄 정도면 큰 일이다 싶어 혼비백산이 되어 응급실에 데리고 갔다. 뒹굴만큼 아팠던 복통의 원인은 ‘아까워서 먹은 상한 음식 때문’ 이라던 그 날 이후 나는 더 모질고 거친 딸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냉장고 문을 열어 제치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쫘악 훑어가며 모조리 버려버리겠다는 기세. 엄마는 차마 나를 막을 수는 없지만 옆에 서서 아쉬운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엄마에게는 딱 한 번 먹을만큼만 사 주는 것이 철칙이 됐다. 넉넉한 인심은 냉장고에 고스란히 잘 저장되었다가 강제 퇴출 될 무용한 것이 될 것이니.                





무용과 유용의 어디쯤      


행정복지센터에서 새롭게 의뢰된 노부부 세대셨다. 할머니는 치매시고, 불편한 할아버지가 옆에서 챙겼다. 동네 주민들이 쓰레기가 쌓인 그 집의 악취와 안전문제로 민원을 제기해서 골치라고 하셨다. 무엇보다 그 쓰레기 천국에서 밥을 해 드실 상황이 아니니 긴급으로 도시락이라도 배달을 해 주면 좋겠다는 의뢰였다.     


부부와 자녀들로 아주 보통의 삶의 살았던 가정, 그러나 인생의 사건들로 자녀들이 냉담하게 멀어지고, 부인이 치매까지 앓게 되자 어느 새 집안정리는 놓아져 버렸다. 그렇게 생활 쓰레기들이 쌓여져 유용하던 것들은 그저 쌓여 무용하기를 몇 년째, 점점 쓰레기가 쌓인 집이 되어 있었다.


기초상담을 나갔던 사회복지사는 고개를 절래절래 휘두르며 돌아왔다. 마당부터 집안과 거실까지 온통 쌓여 있는 묵은 것들을 목격하는 순간 다른 상담은 필요 없었다. 조리를 할 수 없는 공간, 조리를 하다가 화재라도 나면 더 위험한 상황. 그래서 무조건 다 조리된 도시락을 지원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것도 두 분이 드실 밥이니 양을 많게.


당장은 식사도 문제지만, 노쇠한 할아버지에게 의지하고 있는 치매할머니 케어도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저장 강박으로 쌓여진 집안 쓰레기의 위생과 안전의 문제. 어디서부터 시작 해야할 지 모를 거대한 담이 켜켜이 쌓인 집이었다.  사례회의를 통해 가장 긴급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시락부터 지원하면서 살펴보기로 했다. 어르신들은 집안을 치울 생각은 커녕 일상생활의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계셨다. 그 상태로 익숙해진 두 노인은 쓰레기더미들 속에서 오히려 안정감 마저 느끼는 것 같았다.

     

담당자가 매일 도시락을 전달하고, 갈비탕이나, 삼계탕과 같은 포장음식들을 들고 더 자주 방문을 하며 조금씩 분위기를 살폈다. 초기 라포(rapport)가 형성되는 시간을 지나, 담당자는 가만히 할아버지 어르신께 집안을 치우는 문제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러나 마치 그나마 쌓였던 라포가 바람 앞에 쌓였던 일말의 먼지처럼 다 흩어지고 원점으로 돌아왔다. 어르신은 불같이 화를 내셨다. 그리고 다시는 본인 집에 오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는 사례회의의 예상 시나리오 대로 흘러가는 결과라 어떤 낙담도 하지 않았다. 시간을 두면서 다시 어르신 댁을 아무일 없이 드나들었다. 다시 타이밍을 봐서 말씀드리고 거절, 또 다시 말씀드리고 거절, 그렇게 몇 번을 탁구대 위의 탁구공처럼 핑퐁핑퐁 우리의 노력은 진행되었다.


지성이면 감천? 드디어 우리 담당자는 마치 모든 것을 다 이긴 승전보의 소식처럼 '쓰레기를 치워도 좋다'는 허락을 기쁘게 들고 왔다.


          


고립의 쓰레기 담을 허물던 그 날


행정복지센터를 찾아가 결전의 날을 위해 도움을 청했다. 자원봉사 인력과, 쓰레기를 담을 마대자루, 배출된 쓰레기를 치워 줄 구청의 쓰레기 담당과와의 협의였다.

구청 쓰레기 담당과는 관할 지자체의 쓰레기 배출량이 많아지는 것이 평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줌으로 예민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행정복지센터라는 공공에서 나서주어 금방 모든 준비를 갖출 수 있었다.       


드디어 당일, 우리 담당자가 어르신댁에 먼저 도착 해 인사를 건네고, 집안에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게 될 것을 말씀드렸다. 미리 버리지 말았으면 하는 물건들은 다시 확인을 해 드리며 안심을 시켜 드렸다.      


집의 대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

대문 밖의 자원봉사자들은 일제히 입이 떡 벌어졌다. 상상 그대로였기도, 혹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는 벌떼같이 달라들어 일사분란하게 마당, 거실, 방안의 순으로 막대한 쓰레기들을 해치워 나가기 시작했다. 더미 사이로 서로 유관성을 찾아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뒤섞여 나왔다. 어디서 받았는지 알 수도 없는 새 것들도 있었다. 그리고 몇 달 전 우리가 명절선물로 드린 물건들이 포장지도 뜯기지 않은 채 유통기한을 지나 고스란히 나오는 것들을 목격하였다. 챙겨드린 모든 것들도 쓰레기가 되어 있었다.  


어느 더미를 제끼는 순간 안전한 공간인냥 아지트를 틀었던 바퀴벌레들이 화들짝 놀라 순식간에 뿌려지듯 사방으로 튀어나왔다. 바퀴벌레들보다 더 놀란 자원봉사자들도 소리를 지르고 문 밖으로 뛰쳐 나왔다. 살이 통통히 오른 쥐도 놀라 얼른 자기의 살길을 찾아 달아나기도 했다. 다시 자원봉사자님들은 살충제를 뿌려가며 열심히 쓰레기를 쓸어 담았다.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찬 마대자루들이 하나둘 대문 밖 골목에 쌓였다. 골목에 쌓인 쓰레기들로 오히려 대문을 닫고 있을 때 보다 더한 악취들이 베어났고, 골목에서 내다보고 계시던 주민들이 코를 쥐어 막았다. 그래도 어르신집이 점점 훤해 지는 상황에 모두 안심과 안도로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다.          



치매어르신의 장기기억 속 버리지 못할 물건들


그러는 사이 하나의 난코스가 생겼다. 치매이신 여자어르신이 나오셔서 쓰레기를 담은 마대자루를 뒤지며 꺼낸 물건들을 다시 자신의 집안으로 들여 놓으시는 게 아닌가!      


“이것도 필요하고~ 이것도 필요해~”

“아까워~ 아까워~”     


치매 어르신이라도 장기기억 속에 남아있는지 자신의 물건을 귀신같이 알아보셨다. 그리고 설명이 통하실 리 없는 어르신이 물건들에 도돌이표를 달아 다시 집안으로 들이셨다. 결국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모시고 방 안에서 전담마크 해 주시기로 하셔서 우리의 일은 다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오전 반나절을 많은 이들이 함께 노력한 결과, 집은 서서히 본연의 공간으로 되살아났다. 물론 여전히 베인 더러움과 묵은 냄새들은 오후에 다시 도배와 장판의 시공으로 이어지며 나아질 예정이었다. 멀끔 해 진 집안을 둘러보시며 할아버지는 내심 섭섭해 하시면서도 고마움을 표현하셨다. 그런데 치매 어르신은 바닥에 주저앉아 목놓아 우셨다. 도둑들이 자신의 물건을 다 훔쳐 갔다며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내놓으라고 하셨다.

그렇게 그 날 우리는 어르신들을 에워싼 고립의 담을 허물어 냈다.            


쓰레기집을 치우는 일은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해결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몇 달이 지나면 다시 스물스물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경험이 많았다. 텔레비전 솔루션 사례회의에서 보면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하며 해피엔딩으로 끝이지만, 우리의 삶은 다시 도돌이표대로 반복되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어르신의 집을 치울 수 있었던 그 노력은 다시한 번 쓰레기더미의 위험으로부터, 고립으로부터 노인을 구한 활동이었다.   


        



초고령 사회 일본의 쓰레기집      


우리나라보다 초고령화가 훨씬 먼저 온 일본은 벌써 20여년 전부터 독거노인 자택에 직접 방문해 쓰레기를 버려 주는 서비스가 진행된다고 한다. 현장 조사 및 쓰레기 철거에 대한 방침이 서면 독거노인 본인의 동의없이도 철거할 수 있도록 한다. 방치와 사회적 고립을 막기 위한 일본의 제도적 방침이다.


실제로 일본 한 남성의 집에서 10년 전 실종된 어머니의 시신과 유골이 발견되기도 했다는 뉴스도 있다. 쓰레기 집이어서 악취가 심한 탓에 남성의 어머니의 유골이 썩어가는 냄새도 몰랐는데 남성이 이사를 하기 위해 전문업체를 고용하면서 10년전 돌아가셨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사례도 찾아보면 다르지 않다. 노인만의 문제도 아닌 듯 싶다. 은둔 청소년, 은둔 중년.. 은둔한 이들이 우울과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쌓아놓은 다양한 벽과 담들을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다.





쌓일 것은 나이와 연륜만으로도 충분한 인생


가끔 내 주변을 가만히 둘러본다.

직장의 사무실 내 책상, 그리고 내가 매일 생활하는 우리 집. 구석구석에 있는지 조차 모르는 것들이 먼지와 함께 쌓인 것들이 있는지 본다. 내가 있었던 것인지 조차 몰랐던 것이라면 쓸모유무를 따져 버리거나 나눔을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새 것을 사거나 받아올 때 신중한 것이다. 어디선가 공짜로 받아오는 것들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면 거절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거저 준다는 것에 욕심이 나서 반가운 마음으로 들고 오다보면, 결국 나에게 무용한 것들로 쌓이는 경험들을 이미 익혔다. 그래서 나는 가끔 받아온 새 것들은 가만히 모았다가 어느 하루 주변인들에게 랜덤으로 선물처럼 나누기도 한다.


쌓이는 것은 나이와 연륜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언젠가 맞이할 독거의 삶에 가족과, 이웃과, 내가 애정하는 것들이 자유롭게 넘나들도록 담을 쌓지 않는 비우는 삶을 지향할 일이다 싶다.  






*대문사진 : 언스플래시의 scott-rodgerson님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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