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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밀한 나혜씨 Sep 22. 2024

프롤로그 / 노인이라는 아름다운 이름

2023년 11월, TV 프로그램에서 만난 패티김의 모습은 놀라웠다. 무려 86세! 일반적으로 '노인의 이미지'를 떠올려 볼 때 주로 쏟아져 나오는 부정적인 단어들 - 늙음, 주름, 초라함, 의존, 질병, 무능력 등-과는 거리가 먼 멋진 모습이었다.   


화려한 조명 앞에 꼿꼿하게 일자로 선 허리, 노장의 연륜과 깊이가 음색으로 전달되는 노래, 백발마저 화려한 당당함, 예뻐(?) 보이고 싶어 신었다는 하이힐까지. 나이가 주는 상식을 뒤엎는 매력들로 관중을 압도했다.


KBS 불후의 명곡

패티김은 은퇴 후 특별무대에서 “목이 쉬면 어쩌나, 살이 찌면 어쩌나 하는 걱정 안 하고, 김치에 밥에 아이스크림도 먹어도 되고..”라는 고백으로 그간의 부담을 토로했다. 철저한 자기관리자였던 한 가수의, 무대에 임하는 엄격한 태도. 80대 중반을 넘어선 패티김의 모습은 그 사람의 지난 인생이 축적되어 만들어낸 성공적인 결과물 같아 보였다.






나는 26년간 사회복지현장에서 근무했다. 그 중에서도 15년 이상을 노인의 삶을 돕는 일을 하였다.

시니어들이 참여하는 일자리를 지원하는 일, 홀로 집에 사는 독거노인에게 매일의 안부를 전하는 일, 터미널 케어(terminal care)가 진행되는 요양시설에서 마지막 시기를 보내는 노인의 삶을 돌보는 일까지. 인사발령에 따라 여러 역할로 일을 하였다.


그런데 내가 만나온 노인들은 앞선 패티김의 특별한 개별 사례와 달리, 자신이 젊은 시절부터 꿈꿔 온 삶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계시는 노인분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노인의 시기에 대한 준비나 희망없이 살아오신 분들도 많았다.

경제적인 궁핍함, 건강의 불편함, 가족이나 사회와의 관계단절에서 오는 외로움들이 뒤섞여 누군가의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분들이었다. 이는 체에 거르듯 사회복지서비스의 기준에 맞는 분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적인 복지서비스로 만난 분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삶과 일이 다르지 않다는 신념으로 진심을 다해 일해 왔다. 그러나 막상 중년을 넘어서고, 내 옆에 있는 가족들이 겪는 노인의 문제를 만나면서 지금은 더욱 현실적으로 체득되었다. 지금과 비교해 보면 젊었던 그 때, 내가 쏟은 나의 진심은 그저 ‘최선을 다한 타인의 삶을 지원하는 일’ 정도가 아니었나 싶기도 한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또한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절반수치에 이르는 시대, 독거노인으로 살아갈 가능성도 커졌다.     


과연 노인이라는 시기 진정한 자립적인 삶은 어떤 모습일까?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살 수 없는 의존의 시기가 길어질수록 노인의 존엄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매일 안전과 안부를 챙기던 독거노인의 일상, 외롭고 안타까운 고독사를 발견하는 일, 쓰레기더미집에 사는 노인을 설득하는 일, 본인도 못 돌보면서 반려견을 돌보는 노인을 지원하는 일, 90대의 초고령 노인도 본인이 살던 집에서 홀로 생활을 하실 수 있도록 돕는 일, 치매로 온 동네를 배회하는 노인을 지역과 연계하는 일, 집이 아닌 시설에서 집단생활에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노인을 돌보는 일 등.. 


내가 경험한 그 일들 속에서의 만난 다양한 위의 노인의 모습들은 앞으로 내가 써 내려갈 연재 스토리들이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통해 노인이 마냥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기를 원한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코모레비(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처럼, 정답고 다정하고 친밀한 것들과 꾸준히 이어져 반짝이는 것들로 일상이 소소하게 채워지는 모습을 발견하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예외 없이 맞이할 노인이라는 이름이,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이름이기를 기대한다.        


   

출처 : 언스플래쉬

<노인은 아름다운 이름이다>


그 긴 강을 건너온 이름이다.
높은 산 넘어온 나이테 깊은 이름이다.
섭섭했던 시간을 햇볕에 널어 말리며

고마웠던 날을 꼬옥 안아보는 주름진 이름이다.     

‘노인은 아름다운 이름이다’

- 지진태 시(2023)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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