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을 열며 소리친다. 기다렸다는 듯 금방 방 문을 여는 어르신들. 어떤 어르신은 아예 대문 앞에 앉아 기다리고 계신다.
매일 아침밥과 국, 반찬 3개의 도시락을 담는다. 한 끼 양이지만, 두 끼로 나누어 드시기도 하니 찰랑찰랑하니 담는다. 밥을 많이 달라는 어르신은 따로 체크해서 도시락을 싼다.
자원봉사자님들이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펑크가 나면 배달은 어김없이 담당 직원의 몫이다. 영구임대 아파트 단지가 있는 지역은 좀 수월하다. 한 번에 층층이 여러 집을 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우리 기관이 속한 지역은 인구소멸 지역, 단독주택 밀집 지역이다. 한 집, 한 집 차로 이동을 한다. 골목이 좁아 경차를 세워놓고 기다란 골목을 한참 걸어 들어가야 하는 끝집도 있다. 눈과 비가 많이 오는 날이나 봉사자들이 아무도 오지 못하는 날은 특히나 바쁘다.
그러나 골목길 앞까지 나와 서성이며 도시락을 기다리시는 어르신의 모습, 배달해 주는 이에게 “고맙다”며 연신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는 어르신의 모습, 전날 도시락 통 위에 올려진 사탕 두 개와의 접점은 이내 그 피로감을 사라지게 한다. 매일 어르신들의 식사를 챙기는 귀한 일을 하는 보상이 여기에 있다.
가족이 없이 홀로 생활하시는 강화자(가명) 어르신. 체구가 작고, 깊은 주름진 얼굴의 귀여움이 묻어나는 어르신이시다. 90이 넘는 초고령이시다 보니 문 밖이 더 위험해서 집안 생활만 하셨다. 그래도 오가는 말은 유쾌하셨다. 전날 도시락 통을 방문 밖에 내어놓고 계시다가 소리가 들리면 바로 문을 열고 빼꼼히 내다보는 게 유일한 바깥과의 접촉 일상이셨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기력이 쇠하시다고 했다. 담당 사회복지사가 전 날 안 드신 도시락 통을 받아오며 어르신을 걱정하고 살폈다.
“어르신 도시락 안 드셨네요? 몸은 좀 어떠세요?”
“입 맛이 없어서 안 먹었어”
“그래도 드셔야죠. 두유 좀 사다 드릴게요. 오늘 병원에 한 번 가 보실래요?”
“괜찮아. 나이가 많으니 그렇지. 이러다 또 괜찮아져”
“오늘은 입맛이 없더라도 밥 꼭 챙겨 드세요”
“알았어. 고마워. 잘 가”
가끔 입맛 없어하시면서도 기력을 회복하시곤 했다. 맑았다가, 흐렸다가 날씨처럼 반복하셨다. 나이 90에 홀로 자신의 몸을 챙기며 살아가는 삶, 살뜰히 챙길 가족이 없는 노인의 일상에 우리는 도시락 가방 말고도 더 많은 걱정과 관심을 얹어 안부를 묻고 챙기려고 애썼다.
그러던 어느 아침, 도시락배달을 하던 담당자의 다급하고 흥분된 목소리로전화가 걸려왔다.
“어르신 댁에 왔는데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방문을열어 봤더니 어르신이 쓰러져 계셨어요. 몸을 흔들어 봤는데도 기척이 없어서 119 불렀어요”
“돌아가셨대요 어르신이. 돌아가신 분은 119에서 안 모시고 간데요. 검안의를 불렀다고 합니다”
어르신의 고독사를 전해 듣던 그때, 나는 첫 애를 임신 중이었다. 열린 방문 사이로 그저 상황을 상황을 들여다보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한참 뒤 검안의가 와서 방 안에 들어가 어르신을 살폈다.
“다른 요인은 특별히 없고 새벽에 화장실에 가셨다가 나오시면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타살이 아닌 자연사로 사망의 원인을 밝혔다. 용변을 보신 후 바지를 끌어올리던 채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주민센터에 연락해 사망소식을 알리고연락이 닿을만한 친인척이 없는지 알아봐 주십사 부탁드렸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는 ‘없던 가족들’이 나타난다. 그 사이 우리는 기초생활수급 어르신의 사후에 지원되는 약소한 장례지원금만으로 장례절차를 치러주시는 협약병원에 연락을 해 어르신을 병원으로 모시는 절차를 이행했다.
그러고 얼마 있다가 누군가 대문을 들어섰다. 연락을 끊고 지낸 딸인 것 같았다. 금방 오신 걸 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계셨나 싶다. 착잡한 표정으로 방안을 한 번 둘러보시더니 어르신을 모신 병원을 묻고는 홀연히 가신다. 모녀지간의 실오라기 같은 연결고리가 있을지언정 애틋함은 찾아볼 수 없다.
고인이 나가시고 난 뒤 어르신의 체취가 남겨진 방에 들어간다. 몸 하나 겨우 뉘일 단칸방이지만 발 디딜 틈이 없다. 낡은 나무 옷장 위로 켜켜이 쌓인 먼지, 작은 상 위에 올려진 오래된 작은 TV, 순서를 알 수 없는 무수한 약봉지들, 둘둘 어지럽게 말린 이불, 가스버너와 장판 위에 눌어붙은 뜨거운 냄비 자국과 음식 국물 자국, 방안에 절어있는 쾌쾌한 담배 냄새... 스산하고 쓸쓸했다. 한 사람이 살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베인 공간이다.
돌아가신 분의 공간을 치우는 일을 집주인, 동사무소, 그리고 우리기관이 함께 하기로 했다. 묵은 살림은 왜 그렇게 많은지. 마투로시카 인형을 꺼내는 것처럼 꺼내도 꺼내도 한참이다. 버려야 할 것들이 담긴 20개가 넘는 마대자루가 마당을 금방 채웠다.
돌아가신 어르신의 방을 치우며살다 간 흔적들에 대해 생각한다. 예전에 6박 7일간의 긴 호스피스교육을 받으러 가기 전, 우편으로 받은 안내 초대장의 문구가 떠오른다.
‘당신은, 당신의 방을 떠나올 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공간인 것처럼 정리하고 오세요’
어르신께 도시락을 전하던 전 날의 모습이 생생한데, 하루 만에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신 어르신. 내가 머문 시간이 끝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순간을 정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다시 배운다.
한숨을 돌리면 내 생(來生)이다.
찰나찰나가 신속하여
한 순간에 숨을 돌리면 곧 내 생인데,
어찌 편안히 있으면서 헛되이 지낼 수 있겠는가.
<치문경훈>
그나마 어르신이 돌아가신 바로 다음 날 발견되신 것에 감사한다. 홀로 사는 노인의 방문을 매일 열게 했던 도시락 덕분이다. 도시락은 매일의 안부였고, 어르신이 세상과 연결되는 연결고리였다.
‘유품정리인’이라는 직업이 있다. ‘천국으로의 이사를 돕는 직업’
유족을 대신해 고인의 장례를 치르고, 남은 유품이나 가재도구들을 정리하는 직업이다.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오랫동안 유품정리인으로 일을 하며 블로그에 올린 사례글들을 펴낸 책 <유품정리인은 보았다>라는 책의 내용이 기억난다.
‘그 집의 주인은 75세의 독거노인이었다. 의뢰인인 아들, 장의사와 함께 1층 우편함 앞에서 모였을 때부터 이미 그 냄새는 감돌고 있었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장의사는 돌아가고, 나와 아들이 3층에 있는 집으로 올라갔다. 2층까지 올라갔는데 문득 발 밑을 보니까 계단 옆 빈틈에 통통하게 살이 찐 구더기가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의뢰인인 아들은 건물의 4층에, 부친은 아래층 3층에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돌아가신 지 한 달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한 건물에 있어도 ‘연결되지 않은 현실 가족’의 모습이다. 가족이었던 아들을 대신해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유품정리인의 모습. 아이러니하지만 현실이다.
누구나 노인이 되고, 혼자가 되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 혼자의 삶은 자유롭기도 외롭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고립되지 않고 가족과, 이웃과, 외부세상과 잘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노인들이 고립의 삶이 아닌, 연결의 삶이 주는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 그 일이 내가 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