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은 강아지를 세 마리나 키우고 계셨다. 도시락배달이나 물품지원으로 어르신 댁에 방문하면 강아지들이 먼저 우리를 반겼다.
홀로 생활하시는 적적한 어르신.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어루만지고, 밥을 챙겨주고, 대화를 하며 하나의 생명을 돌보는 일은 어르신이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다. 외로운 하루하루에 삶에 기쁨과 활력을 주는 강아지들은 ‘다름없는 가족’이었다.
평균수명이 15년정도인 개들은 어르신보다 빨리 늙었다. 어르신이 기르는 강아지들이 점점 늙어 생기가 없어졌다. 슬슬 아프기도 해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데 본인 몸도 성치않은 어르신에게 그 일은 참 마땅찮았던 모양이다. 몇 번 택시를 잡았지만 거절당하고 결국 우리에게 부탁전화를 하신 것이다. 고민은 되었지만, 강순이가 어르신께 어떤 의미인지 아는 우리로서는 도움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담당 지역은 미군부대가 곳이었는데 어르신은 미군부대를 드나들며 생업을 이어오신 분이셨다. 언젠가 어르신댁에 겨울나기 연탄배달이 지원되었는데, 자원봉사왔던 미군부대 군인들과 영어로 대화를 하며 블랙커피를 준비해서 미군들에게 나누시던 모습은 아주 자연스럽고도 이색적인 모습이었다.
어르신은 본인이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다양한 지원을 받고 계시는 어려운 형편이셨지만, 명절 때면 자신의 고마운 마음이라며 과일 한 박스를 사무실로 보내어 표현하는 반듯한 분이셨다. 절대 받지않는다고 말씀을 드려도 소용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 마음을 받아 다른 어르신들께 더 나누기도 했다.
당연한 권리이지만 오히려 고마움을 표현해 주시는 어르신의 그 마음이 우리도 사실은 감사했다.
어르신과 함께 동물병원에 다녀온팀장님이 걱정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강아지의 상태가 좋지 않아 어르신이 눈물과 상심에 빠진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안됐고, 앞으로 몇 번이 될지 모르는 통원치료며, 비싼 비용은 어떻게 감당하실지.
우리의 예상과 걱정의 수순을 밟으며 첫번째 강아지가 세상을 떠났다. 어르신은 펫로스 증후군(개가 죽고 나서 극도의 우울감에 시달리는 것)에 빠져 남은 두 마리 강아지가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쯤 떨어져 나간 삶의 의욕으로 생활을 하셨다. 남은 두 마리도 혹여나 먼저 떠날까 혹은 어르신이 먼저 돌아가시면 남겨진 강아지들은 누가 돌봐 줄 것인가, 이래도 저래도 걱정이었다.
두 번째 강아지가 아플 때는 수술로 70여만원의 목돈이 필요했다. 어르신은 차마 포기하지 못하셨다. 매월 수급비 받아 생활비를 쓰시는 분이 갑자기 그 큰돈을 어찌 구한다는 것인지! 결국 당신의 몸에 있는 목걸이며, 팔찌며 금붙이를 파셨다. 내 가족이 아픈데, 금붙이는 대수가 아니였다. 아는 사람에게 팔고 돈을 마련하셔서 수술을 했지만 어르신의 노력과 달리 그 강아지도 금새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강아지마저 보내던 날, 어르신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엔 이별의식을 하시고 싶다고, 반려견 장례식장을 좀 알아봐 달라는 부탁이셨다. 알아보니 당장 가능한 곳은 왕복 3시간쯤 되는 타지였다. 슬픔에 잠긴 어르신과담당 팀장님이 동행하여 장례식장으로 갔다.
수의를 입히고, 관에 넣고 조용히 떠나보내는 그 의식을 통해 어르신은 그렇게 그 자식과 같은 반려견을 보내는 마음을 정리하실 수가 있으셨는지 한결 편해 하셨다.
반려견 장례식장에서의 어르신의 모습
독거노인과 반려동물. 독거노인에게 가장 큰 어려움인 외로움에 반려견들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노화가 진행되어 본인 스스로도 잘 못 돌보는 시기에, 더 빨리 늙어가는 반려동물을 돌보는 일은 난감한 문제가 되기도 했다.
믿고 의지했던 가족같은 반려견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에 대한 준비가 안되어 마음의 상실감이 큰 점, 반려동물과 노인가정의 위생 문제, 노화에 따른 질병치료와 경제적 비용의 문제 등. 우리가 지켜보기엔 동거생활이 진행될수록 이면에 감당해야 할 많은 일들이 많아 보였다.
우리 직원들은 어르신의 사례를 기점으로 머리를 맞대어 프로포절 계획서를 작성했다. 취약 독거노인의 ‘반려견과의 위험한 동거생활’을 주제로 반려견과 살고 있는 어르신들께 필요한 준비와 지원을 계획서에 담았다. 다행히 공모 계획서가 선정되어 개를 키우는 어르신들에게 2년연속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었다.
먼저 반려견과의 이별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실 수 있도록 어르신들 눈높이에 맞는 전문가의 교육을 진행했다. 또한 펫팸(pet-family) 가정봉사원이라는 인력을 파견하여 어르신들 가정과 반려견들의 위생관리를 직접적으로 지원하거나 어르신들이 잘 관리하시도록 지도 해 드렸다. 개를 키우는 어르신들끼리의 개를 키우는 공통점을 매개로 또 자조모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반려견을 키우는 어르신들이 위험한 동거생활이 아닌 존엄한 동거생활이 되기를 희망했다.
다가올 초고령화 시대, 늘어나는 노인들은 –머지않은 미래의 우리들은– 홀로 사는 외로움을 어디에 의지하며 살게 될까?반려견과 반려식물을 돌보는 노인의 수는 당연히 늘 것이다. AI시대를 맞아 AI 반려로봇을 두는 경우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과연 나는, 내 몸을 돌보는 일도 쉽지 않은 시기에 무엇에 그 마음을 기대고 있게 될까? 그래서 나는 마음으로 소원한다. 노인인 나에게 책상에 앉을 허리의 힘과 글을 읽을 수 있는 시력만 잔존한다면, 책과 글쓰기에 기대어 살겠노라고, 그 원을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내 몸을 아끼고 돌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