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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밀한 나혜씨 Oct 20. 2024

노네랄을 아시나요?

노인 냄새 완화 관리 프로그램

나프탈렌 냄새가 가져온 기억


'딩동' 소리,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이 타셨다. 결혼식에라도 참석하시는지 정장 한 벌 잘 차려 입으셨다. 옷장에서 갓 꺼낸 듯한 코끝을 스치는 익숙한 냄새, 나프탈렌향이다. 친정집 아파트는 어르신들이 많이 사시는 오래된 아파트다. 다니러 갈 때, 가끔 맡아진다.      


어릴 적 외할머니는 철 지난 옷을 옷장에 넣어두실 때, 나프탈렌 몇 알을 신문지에 싸서 구석에 같이 넣어 두셨다. 좀약이라고도 불렀다. 흰 바둑알처럼 혹은 박하사탕처럼 생긴 나프탈렌. 꽤나 강하고 독하다.

묵은 옷을 꺼내 입은 내게 풍기는 그 것은 할머니 살림의 냄새였고, 계절이 바뀌었다는 증거였다. 요즘도 오래된 낡은 건물 화장실을 들를 때면, 가끔 남성용 소변기 위에 놓인 몇 알을 본다. 벌레를 잡을 만큼, 악취를 삼킬만큼 강력한 그 것.


프랑스 소설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에서 ‘냄새는 기억을 재생해 낸다(프루스트 현상)’고 했다. 그 냄새는 나의 옛 기억의 장면들을 끌어오고,  80대의 후기노인 세대를 가늠하게 하는 연결선이다.   

              






도시락 가방에 배여있는

독거노인과 그 집의 냄새      


혹시나 끼니를 거르실 수 있는 독거 노인들에게 매일 도시락 배달을 했다. 밥과 국, 그리고 반찬 세 종류의 찬통이 든 도시락 가방을 차에 싣고 배달을 다녔다. '오늘의 가방'을 건네며, '어제의 가방'을 건네 받았다. 오늘의 가방은 어르신 집에서 하루를 머문다. 그리고 다음날 배달 차량을 경유하여 다시 기관으로 돌아온다.


배달용 경차차량은 밀폐된 작은 공간이다. 배달이 진행될수록 차에는 어제의 도시락가방이 하나둘 쌓인다. 어르신들의 집을 들러 나온 어제의 가방들이 마치 놀이터를 다녀온 어린아이들 옷에 모래가 묻히는 것처럼, 냄새를 묻혀온다.  

냄새는 그 사람 자체다. 풍겨오는 냄새로 그 사람이 먹는 것, 사는 것을 유추하게 한다. 도시락 가방에 묻혀온 냄새는 그 집을, 그 집에 사는 사람을 묻혀온다.     


수거해 온 가방들은 모아 세탁을 하는데도 여전한 냄새들. 매일 일회용품을 쓸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특히 뜨거운 음식 냄새와 섞여 더 곤란한 냄새다.      

창문을 여는 환기로도 잘 빠지지 않는다. 가끔 본인차량으로 배달을 도와주시는 자원봉사자님. 최신의 외제차도 기꺼이 내어주시는 그 고마운 마음에 가끔 민망 하기도 하다.


그렇게 매일 받아오는 도시락가방으로 ‘노인냄새’에 대한 고민은 시작되었다.


                



불편을 넘어, 혐오까지 불러오는 노인냄새


도시락 가방은 그렇다 치고. 어르신들이 모이는 행사를 할 때마다, 혹은 대형버스로 나들이 갈 때처럼 그 냄새의 당사자 어르신들이 한 공간에 모이실 때는 아주 본격적이다.

각자가 살던 집에서 나와 모인 공간이 실내라면, 공간이 좁고 밀착되어 있다면, 게다가 밀폐까지 된 곳이라면! 우리는 그 공간에 발을 디디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숨을 뱉게 될지도 모른다. 하아~!


그나마 복지하는 사람의 신분인 우리 직원들은 그 복잡하게 뒤섞인 밀도있는 냄새에 대해 무의식적인 찡그림조차도 관리한다. 표를 내지는 않는다. 가만히 창문이나 문을 열고 환기로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나 제3자 주변인들이 함께 한다면 어쩌면 이 냄새의 불편함과, 괴롭힘을 당하는 것 같은 불쾌감과, 더 나아가 노인에 대한 혐오로 인식을 확장할 지도 모르겠다.          




냄새라는 강력한 무기


‘냄새’는 아주 강력한 무기다. 영화 ‘기생충’에서도 다솜(주인집 어린 아들)은 ‘아줌마(가정부)’와 ‘기사님(가정부의 남편)’에게서 같은 냄새가 난다고 했고, ‘제시카 선생님(가정부의 딸)’에게도 난다고 했다.

한 식구임을 숨겼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냄새로 연결된다. 놀란 식구들은 “빨래비누를 다른 것을 써야 하나?”하는 웃픈 해결방안을 고민한다.

비누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하층민의 삶으로 대변되어지는 퀴퀴한 반지하 냄새를 표현한 대목이다. 냄새는 차별을 드러내고 계층을 가르는 중요한 플롯이었다.      


노인냄새는 노인세대와 다른 세대간을 가르는 요인이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밀착할 수 밖에 없는 지하철 옆, 버스 안 우리는 저멀리 보이는 노인과 거리를 둔다. 어쩔수 없으면 고개라도 돌리고 무심하고자 한다. 둘 수 있는 최대한 거리를 둘 수 있으면 한다.

세대간의 단절은 노인을 더 고립시킨다. 노인냄새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노인냄새도 세대간 거리를 점점 멀게 한다.


“목욕과 머리감기를 자주 하셔야 해요!”

“흡연 후에는 옷에 묻은 연기를 털어내고
손을 씻으셔야 해요”

“땀 젖은 옷이나 속옷은 자주 갈아입고
세탁을 하셔야 해요”

“매일 집안을 환기시키고,
정기적으로 청소도 하셔야 해요”

“식사 후엔 입안을 헹구고,
틀니도 세정 하셔야 해요”

라고,
말로 해서 해결될 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40세가 넘어서기 시작하면 인간의 신체는 더 이상 성장이 아니라 노화가 진행된다. 지방산이 증가하고 산화하면서 ‘노네랄’이라는 성분이 생기고 이것이 냄새의 주원인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것이니 이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냄새를 해결할 방법이 특별해서 어려운 것도 아니다.  

결국은 나날이 노쇠해 져가고 옆에서 뭐라고 할 사람도 특별히 없는 혼자사시는 노인들에게는 자신의 몸과 사는 집의 위생을 관리하는 습관이 관리되지 않는 것이 주 문제다.             







안티노네랄 프로그램


그래서 우리는 3년동안 지속적으로 ‘안티노네랄 : 클린 자립생활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혼자서 위생관리가 잘 되지 않을 것 같은 분(본인들에게는 좋은 프로그램 참여로 권유) 10분정도를 자체적인 기준을 가지고 선발하여 권했다.      


다정하게 찾아가 친절한 잔소리를 잘 할만한 ‘클린 가정봉사원’을 채용하여 매주 정기적으로 10명의 어르신댁을 일일이 찾아가 뵙도록 했다.이런저런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며 친밀감을 형성하고, 목욕과 세수, 머리감기 등의 기본 위생을 권하고 도와 드렸다.

어지러진 집을 정리정돈 하거나, 집안 청소도 시범을 보이면서 스스로 하시도록 숙제도 드렸다. 필요하다면 개인 위생용품이나 청소용품들도 지원을 했다.

주1회 기관에서 ‘생활운동 프로그램’이나 ‘미술 프로그램’ 참여하시도록 하고, 만나는 어르신들이 서로 친교를 나누시도록 촉진했다. 사실 매주 보니 친해질 수 밖에 없다.

자조모임을 진행하며 서로의 집에 방문하기로 했다. 집에 사람을 초대하려면 관리를 더 잘 할수 밖에 없다.

그렇게 서로 친밀한 이웃을 맺어 기관의 프로그램이 진행되지 않는 때에도 서로 우애로운 이웃으로 살아가시도록 도모했다.     


물론 80대를 훌쩍 넘긴 노인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짠’하고 달라질 일은 없다. 그래도 그나마 사시는 동안 스스로를 관리하는 자립적 삶을 사는 노인의 일상을 희망하고 지원했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독거노인에게 ‘집순이’라는 별명은 좋은 것이 아니다. 고령과 질환으로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은 노인들은 집에서 하루종일 집에 있는 일은, 결국 갇히는 일이다.

 

이불 한 칸 위에, 밥상 땡겨 입맛없는 밥 한 수저 떠 드시고 종일 텔레비전 틀어놓고 누워 계신다. 누가 부를 일도 나갈 일도 없는 탓에, 세수를 할 일도 머리를 감을 일도 없다. 옷 갈아입을 일도 더욱 없다.

그렇게 보내는 이불 안의 시간은 더 쓸쓸하고 위험하다.

      

햇빛을 쬐이고, 바람을 쐬이듯 혼자인 삶의 시기에는 사람을 쬐여야 한다. 갇히지 않고 서로 통(通)하고 넘나들어야 한다.


그게 사는 것이다.        




   





사람이란 그렇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그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버섯이 핀다
얼굴에 저승꽃이 핀다
인기척 없는 독거노인의 집
군데군데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었다
시멘트 마당 갈라진 틈새에
핀 이끼를 노인은
지팡이 끝으로
아무렇게나 긁어보다가 만다
냄새가 난다, 삭아
허름한 대문간에
다 늙은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고 있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     

         <유홍준 시인 / 사람을 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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