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친밀한 나혜씨 Oct 29. 2024

“너 참 사랑했었다”는 치매어르신의 고백

아슬하고 자유로운 독거생활 종결기


<일요일 오후의 치매소동>


“엄마, 지금 왜 왔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엄마를 보는 순간, 우리 가족은 일제히 놀란 토끼눈으로 그대로 멈춰버렸다. 나와 남편과 두 아이 모두 거실에서 여유로운 일요일 오후를 보내던 차였다.     


“왜 오다니? 월요일이니까 왔지”     

“엉? 오늘 일요일인데... 지금은 오후 6시고”


“뭐라는 거야? 월요일이니까 내가 왔지...”

“엄마, 오늘 일요일이라니까. 못 믿겠으면 TV봐봐, 일요일날 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잖아”     


엄마는 어리둥절 하더니, TV화면을 들여다본다. 가만히 보고 있더니 그제서야 이해가 되는 눈치다.     

”어? 맞네.... 내가 낮잠 자다가 깨서, 낮인지 밤인지 헷갈렸나 보네”


민망한 듯, 게슴적은 듯, 그렇게 허허거리며 말한다.      


주말부부 워킹맘인 딸의 육아를 돕기 위해 엄마는 월요일이면 우리집으로 출근을 했다. 주중에는 우리집에서 자며 내가 없는 시간에 애들의 챙겨주고, 금요일날 집으로 돌아갔다. 첫 애가 3살 때부터였으니 자그마치 7년이다.


일요일은 엄마가 친정집에서 쉬는 날인데, 갑자기 등장해서 월요일이라는게 웬말인가!

지남력(시간, 장소,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 없는게 치매의 기본증상이라던데 싶어 순간 많이 놀랐다.      


당뇨로 늘 쇼파에 축쳐저 졸고 있기 일쑤인 엄마. 낮잠자다가 깼는데 낮인지 밤인지 분간이 안되던 중에 시간만 보고 늦었다 싶어 얼른 챙겨 온 모양이었다. 버스까지 갈아타고 30분을 넘게 오는 시간동안 까맣게 모르고 왔단다.

부쩍 의심할 일이 많은 노인의 모습으로 늙어가는 엄마가 더 걱정스러워지고 있는 나의 일상이다.      




<치매+독거+노인의 자립생활기>


출근준비를 막 시작하려던 아침 7시, 딴 기관으로 발령났던 최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시간에 전화가 온다는 것은 뭔가의 ‘다급함’이다. 순간 긴장감을 느끼며 전화를 받았다.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는데요, 김미자(가명) 어르신이 집을 못 찾으셔서 지금 ◯◯지구대에서 모시고 있는 모양이예요”     


어르신은 89세 기초생활수급자 독거노인이셨다. 도시락을 배달하며 안부를 확인하는데 최근에 배회도 하시고 길도 잘 잊어버리신다는 정보를 받던 터였다. 그런데 오늘 걸음도 불편한 분이 어찌 그리 먼 지역까지 가신건가?      


최팀장은 어르신이 처음 마음의 문을 열었던 사람이다. 거부가 심해 문도 안 열어주는 어르신이라 동사무소에서 도시락이라도 챙겨드리면 좋겠다고 의뢰된 경우였다. 최팀장이 진심을 가지고 꾸준히 친절과 관심을 보인 끝에 대문과 마음의 문을 여셨다.

그렇게 몇 년간을 최팀장으로 인해 서비스를 잘 받으시던 어르신인데 최팀장이 인사이동을 하게 되어 인사를 드리러 간 날, 어르신이 한참을 우셨다. 그리고는 본인이 어딘가 숨겨놓은 현금다발을 내 놓으시며 자신의 마음이니 받아가라고 하셨다. 최팀장은 도망치듯 나왔고, 그 후에도 전화가 걸려왔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날, 지구대에서 휴대폰도 없고 소통도 되지 않는 어르신의 주머니를 뒤져 나온 그 연락처는 어르신께는 너무나 애틋한 바로 최팀장 번호였다.


경찰에게 어르신 집을 안내했다는 내용을 인계받고 출근하면서 바로 어르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새 안 계신다. 대문만 단단히 닫혀 덩그렇다.      

꼭 잠겨져 있는 어르신 집 대문


주변을 수소문 해 보니 아침에 경찰차가 어르신을 모시고 왔는데 어르신이 바닥에 들어 누우 한바탕 소통이 벌이셨다고 한다. 경찰은 어쩔수 없이 집 앞에 어르신을 내려놓고 가고, 어르신이 다시 사라지신 상황.

결국 우리는 또 그날 하루 닿을 수 없는 어르신을 찾는다. 관할 지구대도 연락을 하고, 담당 동사무소에도, 구청에도 연락을 해서 같이 이 상황을 고민하고 해결해 줄 곳에 도움을 청해둔다.      


집도 잘 못 찾아오시는 분이 집을 나가 배회 중이시다. 유일한 가족인 동생분(그 분도 이미 노인)에게 전화를 거니 본인도 병원에 입원해 계신 상황인데 뭘 할 수 있겠냐며 알아서 하라신다. 참, 난감하다.      


이런 경우 혼자서 집에 생활하던 어르신이 더 이상 집에서의 생활은 어렵다.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시설이나, 병원으로의 이동이 불가피하다. 노년의 시기에 맞이하는 가장 큰 변화분기점이다. 우리의 일은 가능하다면 최대한 본인이 살던 집에서 살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러나 어르신의 안전에 공백이 생기는 경우는 어쩔수 없다.       


어르신은 치매진단부터 받아야 하는데 치매안심센터든, 병원이든 어르신을 모시고 갈 수가 없다. 본인의 완강한 거부 앞에 진행이 되지 않는다. 보통 이럴 때는 가족이 나서는데 어르신은 가족도 없다. 장기요양등급도 신청 해야하고(길면 한달 정도 시간 소요), 주간보호서비스를 받으실지(야간에 돌볼사람이 없으니 어쩌면 이도 고려가능한 사항은 아닌 듯), 시설로 입소를 하실지(아마 가장 유력한 안으로 거론될 듯) 어르신의 상황을 확인 후 결정할 일이다. 그런데 어르신을 마주하기도 힘들고, 마주한다 해도 소통이 어렵고, 더욱이 이러면서 시간이 지연되는 동안 어떤 위험한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     


밤 8시경 직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에도 지하철 종점에서 지구대에 인계되어 계신단다. 그런데 과연 모시고 올 수나 있을지, 어르신이 집에 들어가시려고 할 지, 집에 모셔다 놓은들 또 집밖을 나와 배회하시고 길을 잃으시면 어쩌나 하는 뱅글뱅글 출구없는 고민이 앞선다.

보호자인 동생분에게 어쩔 수 없이 전화를 하니 다음날 가 보겠다고 말씀하신다. 일단 하루는 버텨야 할 일이다.      


어르신의 마음을 열었던 최팀장에게 염치없이 전화를 했다. 

“최팀장, 어르신이 ◯◯지구대에 있으시다고 연락이 왔는데, 전화기 너머로 고함치는 어르신 목소리가 들리네. 가서 모셔올 수나 있을지 모르겠어”라고 걱정을 하니, 착한 최팀장이 “제가 한번 가 볼께요”라며 선뜻 나서 주었다.     

 

지구대에 최팀장이 도착하니 어르신이 너무나 반가워 하셨다.

 “왜 이제 왔어? 얼굴이 예전보다 못하네”

순한 양이 되어 순순히 차에 얼른 올라타시고는 어르신이 가만히 최팀장의 얼굴을 바라보시며 한마디 하셨다.     


“내가 참 사랑했었다” 

(참고로 둘다 여성)     


자신을 따뜻하게 돌보아 준 진심의 사람이 너였다는 고백. 90이 다 된 어르신의 뜨거운 사랑표현이 참 영글었다. 정신이 올찮으면서도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진심의 최상급 고백에 괜히 짠했다.     

집에 도착해서 최팀장이 어르신께 단단히 부탁을 했다. 밤은 위험하니 절대 나가시지 마라고. 그렇게 마지막 안부를 전했다.


다음날 아침, 어르신은 너무나 편안한 모습으로 쌔근쌔근 주무시고 계셨다. 직접 어르신 집을 직접 방문 해 보니 말 그대로 쓰레기집이었다. 저장강박 이라기보다 주변을 정돈하고 치우는 자기관리능력이 부재한 노인의 집안 전경이라 여겨졌다. 그렇게 집안이 쓰레기가 쌓이는 과정을 아주 서서히 보아온 우리가 보기엔 ‘그럴 수 있다’ 이지만, 낯선 사람이 한 번에 보면 ‘절대 그럴 수 없는’ 가관인 집이었다.     


쓰레기가 가득 쌓인 거실에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계시는 어르신. 어르신이 누운 곳을 제외하고는 켭켭이 집안 가득한 쓰레기.


도O코 문구칼로 감을 깎아드신 흔적

그 중간에 우리가 옛날 연필이나 깎던 도◯코 칼로 감을 깎아드신 것도 보였다. 녹슨문구칼의 황당한 발견. 위생은 말해 무엇하나...   


그러는 사이 남동생과 여동생이 도착하셨다. 두 분 다 나이가 지긋하시고 몸상태도 힘들어보이신다. 어르신은 오랜만에 온 동생들이 반가워 직접 밥을 해야한다고 난리시다. 그 쓰레기 더미 어딘가에서 찹쌀봉지를 찾아서는 쌀을 앉혀야 한다고 한동안 실갱이를 벌이셨다. 동생들 밥은 먹여야 한다는 그 마음은 따뜻했지만 참 남루했다.


그렇게 그날 우리는 노인들인 동생분들과 병원 요양병원을 모시는 과정을 도와드렸다. 병원에 입원하신 그 날만큼은 어르신이 밤에 또 배회를 하시다가 전화가 걸려올 일은 없었다. 그러나 한 켠 마음이 허했다. 어르신의 아슬하고 자유로웠던 독거생활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익어가는 삶을 위하여>


기억을 잃게 되는 어느 날이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삶이 가능한 그 어느 날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온다.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겁니다” 는 ‘바램’이라는 노래의 가사다. 우리는 과연 나이가 들수록 가을의 감처럼, 단풍처럼 평온하게 익어가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아직 친정모친이 낮잠으로 기억을 깜빡했던 그 날의 헤프닝 조차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설익은 삶을 사는 중이다.       

                    


[표지사진 : 픽사베이 Public Domain Picture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