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이 아침부터 계속 전화를 안 받으셔서 생활지원사님이 집 앞에 가신다고 해요. 저도 바로 가 봐야겠어요”
담당 사회복지사의 보고다. 가슴이 ‘쿵’ 한다. 오전내내 여러 번 전화를 드렸는데 안 받으신단다. 연세가 90세라 거동이 불편해서 어디 나가지도 않으시는 어른이라 더 걱정이다.
얼른 전산화면을 열어 해당 독거 어르신의 방문기록을 살펴본다. 최근 방문은 지난 금요일. 오늘은 안부전화가 예정된 월요일. 주말휴일을 보내고 3일만이다. '어르신이 몸이 안 좋다시며 하루종일 누워계심. 딸이 온다고 걱정말고 가라고 하심'이라고 적혀있다. ‘몸이 안 좋으시다’라고 적힌 것이 마음에 턱 하니 걸린다.
‘휴대폰을 놓고 나가 계시지 않을까? 금요일에 따님이 다녀가셨을까?주말동안 누가 들여다본 옆집 이웃은 계셨던가? 무슨 일이 있으신 건 아니겠지?'
발없는 생각은 쾌속질주를 하여 산으로 산으로 올라간다. 심장이 쫄깃하다. 안 좋은 예감이 나를 에워싼다. 제발! 현장에서 전화가 걸려오지 않아 앉지도 서지도 못한다. 애써 침착을 유지 해 보려고 하지만 왔다갔다 하고있다. 전화 벨이 울릴 때마다 귀를 종끗 세운다.
마침 현장에 나간 사회복지사의 전화가 걸려온다.
“지금 어르신 집 앞에 왔는데요. 집 안에서 벨은 울리는데, 안 받으세요. 문을 두드려도 어르신 응답이 없어서 119 불렀습니다”
“따님과 통화 해 봤어요?”
“네, 따님은 금요일날 왔다가셨고, 바로 오신다 합니다..... 지금 119 도착했어요. 바로 연락 드릴께요”
그렇게 또 끊기는 전화. 머리가 쭈볏하다. 상상은 더 몸집을 불려 불안괴물이 되어간다. 가 보지도 않은 어르신 댁을 상상되어지며 119대원이 집안의 문을 따고 들어가는 모습, 거실을 지나 한 쪽방에 기척없이 누워 계시는 어르신을 발견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이런 생각들이 이어지면 거의 초죽음이다. 여차하면 뛰어갈 마음의 준비를 하며 차키를 챙긴다.
따르릉 벨이 다시 울린다.
“문 따고 들어가니 어르신 누워 계셨고요.. 간밤에 잠을 못 주무셔서 오전부터 내내 숙면이셨답니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그래도 천만다행이다.
지역내 독거노인들의 매일 일상안부를 확인하고 챙기는 것이 우리 일이다. 생활지원사님들이 담당 어르신께 정기적으로 방문과 전화로 안부와 안전을 확인한다. 홀로 생활하시는 어르신들이다. 어떤 분들은 챙길 가족들이 없어 우리가 유일하게 집 문을 열어 안부를 확인하는 분들이기도 하다. 가끔 이처럼 연락이 닿지 않으면 확인하기까지 스릴과 해프닝을 주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생길 때 마다 극도의 예민과 불안은 그저 생겨난 것이 아니다. 실제 고독사나 응급상황들을 맞닥드린 경험들로 학습되고 축적된 불안이다.
전날까지 잘 계시던 어르신이 다음날 돌아가신 채 발견이 되기도 한다. 어떤 분은 가족들이 다녀가시고, 다음날 최초 발견자가 우리가 되어 가족분들로부터는 고맙다는 인사를 받기도 한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안다.
어떤 때는 간발의 차이로 문을 따고 들어가 쓰러져 계신 응급어르신의 목숨을 구한 적도 있다. 몇 분사이에 생과 사의 경계를 넘었다. 또한 다정하게 돌봄을 하던 어르신의 마지막 모습을 갑자기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면 최초발견자인 생활지원사님은 트라우마로 후유증을 겪기도 하신다.
2020년 코로나 시행 초기, 코로나를 혐오병으로 낙인을 찍던 때. 확진자 한 명이 발생하면 이동 경로가 낱낱이 추적되고 그 경로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 되는 시기였다.
휴일에 교회를 다녀오신 노부부의 가정을 방문하여 돌봄서비스를 제공했던 생활지원사님이 코로나에 감염되셨다.
지역 1호 코로나 종사자 발생기관! 듣기만 해도 섬뜩한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이후 다른 기관에서도 확진자들이 발생했지만 절묘하게 앞선 타이밍으로 불명예 타이틀을). 그러나 무엇보다 빨리 기관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감당해야 할 수순을 밟는 것에 집중했다.
주말내내 생활지원사님이 어르신 가정을 방문하고 난 후 확진판정을 받기 전까지 방문했던 어르신들의 명단을 정리했다. 일일이 전화를 드려서 상황을 안내하고 코로나 검사를 받도록 설명드렸다. 상황에 대한 인식은 모두 다르셔서, 본인은 괜찮다며 검사를 받기를 거부하시는 어르신, 마치 본인께서 코로나 양성판정이라도 난 것처럼 화를 내시는 어르신, 누구의 도움없이는 검사를 받을 수 없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말귀를 잘 못 알아듣지 못하시는 어르신 등 너무 각양각색이었다.
유래없이 폭주하기 시작하는 코로나로 불난 호떡집보다 더 북새통인 보건소에 전화하여 접촉 어르신들의 코로나 검사를 부탁했다. 접수가 밀려 당장 나갈수 없는 상황이 이해가 되긴 했지만 하루이틀 늦은 검사로 코로나가 진행될 어르신이 계실까 가슴 졸였다.
벌어진 상황의 수습만큼 씁쓸했던 것은, 바이러스가 가득 찬 집안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부득이하게 감염된 돌봄 종사자에 대해서는 어떤 배려도 없었다는 점이다. 코로나 확진이 마치 개인의 잘못인 것 처럼 격리 숙소에 입원한 생활지원사님께 마냥 다정한 위로를 건넬수가 없었다. 특히 관할청에 보고할 자료를 작성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 매뉴얼대로 했는지 확인하고 꼼꼼이 물어보는 절차들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어려웠다.
독거노인들이 홀로 생활하시는 현장은, 크고 작은 사고는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고 나면 시간을 역추적해서 확인이 들어가는 순간 모든 서비스의 행적이 낱낱이 시간대별로 드러난다.
늘 최선으로 한다고 하지만, 약 70여명의 종사자들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지만, 빈틈이 없어야 했지만, 결과가 나쁘면 구멍난 과정의 문제가 드러난다. 그래서 내 마음 속에 사는 불안괴물의 원형은 내가 미쳐 발견하지 못한 책임을 발견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먹고 몸집을 불린다. 세세하게, 면밀하게 현장은 매일 그렇게 점검되고 확인되어야 했다. 그것이 나의 일이였다.
지금은 인사발령으로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내 안엔 그 괴물이 산다. 지역 어르신의 실종안내 문자를 받을 때, 고독사로 발견되거나 어느 강변 자살한 노인에 대한 기사를 접할 때 아직도 내 가슴은 쿵쾅이며 뛴다.
올해처럼 유래없는 폭염이 짱짱 했던 여름, 에어컨이 없는 독거노인 가정의 환경이 떠오를때면 에어컨 앞에 서 있는 내 마음도 후덥덥했다.
그렇게 아직도 나는, 그 시간을 이어 살고 있다.
전화를 걸면 날마다 어디있냐고 무엇하냐고 누구와 있냐고 또 별일 없냐고 밥은 거르지 않았는지 잠은 설치지 않았는지 묻고 또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