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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캐는마케터 Mar 13. 2020

뮤직 비디오= 좀비 비디오.

#3_아이돌 사업 좀 해본 여자_이 바닥은 부르는 게 값

- 띠딕띠딕띠딕

10개가 넘게 맞춰둔 알람 소리에 겨우 눈을 떴다.


AM 03:30


집에 돌아온 시간이 밤 열한 시였으니 한 세 시간쯤 잤나 보다. 정신이 멍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정신 차려야 해.'


주섬주섬 옷가지와 1박 2일 치 물건들을 챙겼다. 뭐 어차피 씻을 수 도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택시를 불러 타고 사무실로 향했다.


그렇게 하나둘씩 좀비처럼 사무실에 모여들었다.


"스타일팀은 오늘 뮤직비디오 촬영 때 필요한 것들 빼먹지 말고 잘 챙기고,

매니저님들은 30분 뒤에 출발이니까 한분은 샵에서 아이들 픽업해주시고 한분은 저희랑 같이 이동 준비해주세요!"




우리가 모르는 세트와 장비는 무궁무진하다._Photo by Hao Rui on Unsplash




맞다.

대망의 첫 뮤직비디오 촬영 날.

아이들 데뷔가 11월이었으니 여름쯤이었나? 더웠던 기억이 난다.


비몽사몽 어두운 길을 달려 도착한 파주의 한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촬영팀은 벌써 세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총 6개의 다른 세트.

저 이상하고 큰 장비와 미장센들에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갔지..


미팅 때 만났던 (그때는 조신하다고 생각했다), 미친 사람처럼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는 조감독이 보였다.

"조감독님! 촬영 시작 언제부터에요? 애들 대기실은?"

-"실장님 오셨어요? 네네 2시간 후로 보시면 될 거 같아요. 대기실은 저 안쪽이에요.

  저기에서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 들으셨죠? 2시간이에요, 애들 의상부터 체인지하고 헤어랑 메이크업 수정 봐주세요!

곧 안무선생님도 오시니까 세팅 완료되면 바로 춤 체크 갈게요."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은 하나씩 욕심을 낸다. 그리고 예민해지고.


- "실장님 저 혹시 이거 하면 안돼요? (액세서리를 가리키며)"

"응, 안돼- 스타일리스트 분들이 다 정해두신 거야."


- "모니터링해보니까 다른 애들에 비해 저 너무 없어 보이던데요? 실장님 보시기엔 아니에요?"

"00야, 여기 계신 분들 다 너네 모니터링하고 있어. 그리고 지금 충분히 예쁘게 나와.

 걱정하지 말고 짬나면 가서 좀 쉬기나 해."


이런 종류의 대화는 7명 아이들 모두와 했던 거 같다. 마지막엔 좀 화를 냈고, 나도 예민해졌지만.



수정은 끝이 없다._Photo by Manu Camargo on Unsplash





1박 2일의 촬영.

1박이라고 해서 잠을 자는 건 아니다. 그저 될 때까지 찍는 거다. 장소와 장비를 빌린 시간 안에-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첫 뮤직비디오 촬영장을 생각해보면

머리 아프도록 찐하게 밴 담배 냄새와 땀 냄새,

그리고 감독의 '컷' 나의 '잠시만요' 소리가 떠오른다.


-"컷. 다시 갈게요"

-"컷. 안무 좀 다시 맞추고 갈게요."

-"컷. 담배 한 대 피고 합시다."


"잠시만요! 단추 떨어졌어요!"

"잠시만요! 메이크업 수정 볼게요!"

"잠시만요! 애들 땀 카메라에 보여요!"


기껏해야 나로서는 두 번째 촬영 경험이었는데

실장이란 타이틀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당황하지 않은 척 모든 순간을 임기응변으로 버텨야 했고,

엄청나게 체력적인 한계와 정신적인 압박에 시달렸었다.


이게 얼마짜리 촬영인지 알았으니까 - (억억 하며 부르는 게 값이다)


결국 촬영이 끝나고 드래프트 영상을 받아보면 더 심하다.

업체 전화가 불이 나도록 컴플레인을 하고 수정을 요청한다.

왜냐고?

그들이 억억 했고 줬으니까.


대충 이런 내용 었던 거 같다.

"감독님, 이거 너무 안 예뻐요. 이 친구는 왼쪽 얼굴이 더 나아요!"

말하면서도 민망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바닥은 남자고 여자고 예쁜 게 생명이니까




끝없는 컨셉회의_Photo by Headway on Unsplash




혹시나 궁금하신 분들이 있을까 싶어 촬영에 대해 간단하게 순서를 설명하면 이렇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주관적인 설명이니, 이해를 바랍니다)


1. 전체 앨범 콘셉트에 맞게 회사 내에서 뮤직비디오 brief 스토리를 짠다.

2. 견적에 맞는 업체를 선정해 촬영 관련 미팅을 진행한다.

3. 업체가 다듬은 스토리보드 기준으로 세트, 의상, 소품 등 세부 미팅을 진행한다.

수없이 많은 미팅 이후..

4. 당일 촬영장 소집 3시간 전, 샵에 들러 아이들 헤어 메이크업을 세팅시키고,

5. 각종 의상 (보통 인원당 4~5벌쯤.. 신발은 셀 수도 없다..)과 소품을 챙겨 촬영 장소로 이동한다.

6. 도착하면 촬영팀 분들께 음료수를 돌리고, 시나리오에 맞게 의상을 준비 착장 한다.

7. 촬영이 시작된다.

예기치 않게 소품이 어울리지 않거나 씬의 각도가 예쁘지 않거나 안무를 계속해서 틀린다.

장비를 수정하고 급하게 소품을 공수한다.. 약 1~2시간쯤 소요된다.. 이에 따라 헤어 메이크업 수정도 계-속 한다.

8. 앞선 7번이 무수히 반복된다...........

9. 일단 밥을 먹고 한다.

10. 이러다 보면 촬영 일정이 매우 딜레이 되며 지쳐 좀비가 된다.

11. 1박 2일의 촬영이 끝나면 아이들을 숙소에 밀어 넣고 사무실로 모인다.

12. 미흡한 부분, 편집에 포함되면 좋을 요소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어 업체 측에 전달한 뒤 24시 해장국집으로 이동한다.

13. 잔다. 계속. 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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