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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캐는마케터 Mar 13. 2020

방송국, 그들이 정하는 인기의 척도.

#4_아이돌 사업 좀 해본 여자_기다림의 미학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을 생각해보자.


번쩍번쩍한 가구들과 패셔너블한 직원들로 가득 차 트렌디함이 뚝뚝 흐르는 모습일 것이다.

게다가 출퇴근도 자유롭고 근무시간 내에도 여유로움이 있을 것 같지 않은가?

미디어 속 분위기와 비교하며 본문의 내용을 읽어보길 권한다.


- 지잉 (사무실 문 하나는 자동문으로 잘한 듯싶다. 너무 편해)


정면에 보이는 스케줄 정리용 화이트보드, 빽빽하게 적힌 글씨들이 있다.

오른편에는 책상과 컴퓨터들 그리고 그 앞에 앉아 머리를 쥐어 싸맨 우리 직원들이 보인다.


그들을 지나쳐 맨 끝 방으로 들어가면 땀냄새가 가득한 스타일팀의 공간이 펼쳐진다.

(당시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를 인하우스로 채용했기에 내부가 미용실 쇼룸처럼 구성되어있었다. 진짜 미용실 의자도 있었다.)


벌써부터 이곳에서 요란한 드라이기 소리가 들린다.


윙윙 얼마나 시끄러운지 모른다_Photo by Element5 Digital on Unsplash




그렇다 오늘은, 공중파 음방.

음악방송이 있는 날이다.





언제나 그렇듯 약 4-5시간 전부터 준비를 시작한다.

방송국마다 음악방송 스타일이 다르듯이 시작시간도, 대기시간도, 공간도 천차만별이다.


어디는 오후 5시 방송이어도 새벽부터 대기이고 (다른 가수 사전녹화 등 때문이다.)

어디는 그나마 방송 시작 몇 시간 전까지만 도착하면 된다.

사실 이조차도 부딪히며 욕하며 깨달음을 얻었다.


방송국 지하에 차를 대고 캐리어를 꺼내 대기실로 이동한다.

아이들이 7명이니, 캐리어도 한 3개쯤 된다. 각종 옷과 신발, 마이크(방송국에서 안 준다.), 헤어 메이크업 제품 등등이다.


"매니저님 리허설 시간이랑 무대 가는 순번이랑 체크 부탁드려요!"

-"응 피디님이랑 작가님 인사드리고 확인하고 올게."


오늘은 몇 번째일까..  아마도 첫 번째이겠지?.

이 무대에 서는 순번이야말로 이들의 인기 계급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준이 아닌가 싶다.


당일날 도착하면 알게 되는 이 순번표는

인기의 크기에 따라 대기시간이 무한정 늘어난다고 봐야 한다.


왜 첫 번째인데, 대기시간이 길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모든 음악방송의 마지막을 떠올리면 된다.

모두가 올라가는 심지어 요즘은 1등은 나오지도 않는 그 마지막 인사 장면을 위해서이다.

 매정하기 짝이 없다.



대단한 기획사가 아니면 신인은 꿈도 못 꾸는 사전 녹화.

한정없이 기다려야하는  대기 순번과 같이 그 안에서 마주하는 모든 인기의 척도는 참으로 웃기게도 스태프들에게도 적용되는 실정이다.




아무튼 리허설은 끝났다.


콘서트는 꿈도 못꿔보았다._Photo by Yannis Papanastasopoulos on Unsplash





- "생방 들어갈게요-!"

 

무대 뒤에 대기하던 스태프들의 마음이 조급해진다.


무대에 오를 아이들의 마이크를 채워주고, 헤어 메이크업 수정을 본다. 올라가기 직전까지 땀이 나지 않도록 선풍기도 돌려주고 옷매무새도 다시 봐준다.

할 수 있는 건 다 체크를 해야 한다.

이 무대는 오늘 단 한 번이니까. 그리고 이 무대 하나를 따내기 위해 우리 매니저들이 스태프들이 들인 노력이 있으니까.  


처음 이 상황을 겪었을 땐, 정말 정신이 없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게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런데 난 그놈의 '마이크' 채우는 법을 몰랐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앞선 1편의 내용을 읽었다면 이전의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난 이곳의 생태계를 몰랐고, 부딪히며 알아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경험이었다.


방송국 마이크를 우리 스태프들이 채워줘야 한다고 했다.

왜일까? 그 마이크는 방송국 것인데? 채울 줄도 모르고 킬 줄도 모르는데?

그 시커멓고 네모난 마이크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거였다.


선을 꽂고 버튼을 누르고 볼륨을 조절한다. 프로세스는 쉬웠다.

하지만 생방송은 시간과의 싸움이었고 내 순간의 실수로 마이크가 안 나오거나 볼륨 조절에 실수를 한다면 무대를 망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구멍은 어찌나 많은지...


다행히 경험이 있는 스태프들이 방법을 알려주었지만, 그걸 방송국 관계자가 아닌 우리 스탭에게 듣는 것도 참 이상했다.



만고의 기다림 끝에._Photo by Xu Haiwei on Unsplash



정신없이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간다.

이제 모니터 화면으로 모습을 체크하며 어미새의 기분을 느낄 시간이다.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

춤을 잘 추고, 못 추고

표정이 좋고, 안 좋고

동선이 맞고, 안 맞고


그때는 왜 그렇게 따졌을까

쟤네도 나처럼 처음이었을 텐데.



3분 남짓, 아니 방송용 음원으로 더 짧게 만들어 진 퍼포먼스는 그렇게 끝이 난다.

이 무대 하나를 위해 몇달을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괜찮다. 그리고 감사하다.

방송국의 권한으로 이 무대에도 오르지 못하고 부럽게 바라보는 팀들도 있으니까- 더 징징거릴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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