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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캐는마케터 Mar 27. 2020

거기에 친구 이름이 있었다.

#1_'772함(艦) 나와라' 천안함 속 그들을 기리며.

애초에 브런치를 시작할 때는 계획에 없던, 나의 소중한 친구를 위한 하나의 글을 써보고자 한다.

이제 막 시작해 많은 구독자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쩌다 읽으시는 한 분 한 분이

이 때를 기억하고 추모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날을 떠올리는 것이 나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또, 어쩌면 가족도 아닌 내가 눈물짓는 것조차 괜스레 죄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그 친구는 나에게 소중했고, 소중하기에 울컥한 마음을 꾹꾹 누르며 글을 써본다.







 2010년 3월 27일. 오전 12시경




당시 20대의 나는, 온갖 저녁 아르바이트와 학교 생활을 병행하며 살고 있었고,

어김없이 새벽 근무를 한 탓에 점심시간까지 정신없이 자고 있던 터였다.


-따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르릉

-카톡, 카톡, 카톡,


미친 듯이 울려대는 전화와 문자 소리에 겨우겨우 피곤한 눈을 떴다.


(야옹-)

함께 자고 있던 반려묘 참치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아.. 3시간 있다가 또 알바 가야 하네..)



-여보세요?

-야, 빨리 TV 틀어봐. 너 친구 뭐 해군이라고 하지 않았어?

-우웅... 친구지..(정신이 덜 깼었다) 왜에..?

- 빨리 TV 틀라고! 명단 뜨는 거 보라고 무슨 함대가 침몰했대!! 사고라고!

-아.. 뭔 상황이야.. 일단 끊어봐 TV 틀어볼게.



전화를 끊자마자 TV 전원을 켰다.

카톡을 보니 방금 전 친구와 다 똑같은 말들이었고,  내 친구의 이름이 맞냐고 묻는 내용들이었다.  



TV를 보니 뉴스에서 천안함에 대해 마구 속보를 내보내고 있었고,

그들이 떠들어 대는 부대에 내 친구가 있는 것은 맞았다.


( -에이 설마. 며칠 전에 통화했는데?.. )

갑자기 불안해진 마음에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렇게 미친 듯이 보도를 쏟아내던 화면 속에 갑자기 실종자 명단이 떴다.

놓칠까 빠르게 눈으로 이름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대로 시선이 멈춰버렸다.






거기에 친구의 이름이 있었다.



무슨 드라마나 영화처럼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오거나 패닉이 되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잘 안 되었다.

난 얘 목소리를 얼마 전까지 들었으니까.. 더 믿기지가 않았던 것 같다.


생생하게 떠오르는 전화 넘어 친구의 목소리.

바쁘다고 그 전화를 끊어버린 나.  

머리가 멍해졌다.





- 친구 : 야 ~ 뭐해?

- 나 : 또 아르바이트하고 있지 뭐 ㅠ 너는 별일 없지?

- 친구 : 응응~ 나 곧 있음 나가잖아! 한 번만 배 타면 끝이야~

- 나 : (일하면서 부스럭댐) 미안! 나 지금 바빠서 통화 못할 것 같아. 빨리나와~ 나오면 보자!!

- 친구 : 알았어 그럼 끊는다~ 곧 봐!

- 나 : 응!


 





모여 다니기 좋아하던 중학교 시절.

꼭 붙어 다니던 4명의 친구가 있었다. 남자아이 둘, 나 포함 여자아이 둘.

뭐 서로 좋아하고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우리는 넷이 잘 붙어 다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대가 되어서도

우린 생일 때에도, 유학 간 친구가 돌아왔을 때에도, 내가 재수에 성공했을 때도,

친구가 군대에 갈 때에도, 아무 이유 없이 놀고 싶을 때에도 자주 만났다.


여러 추억이 있지만 지금도 떠오르는 '우리의 하루'가 있다.


동네에 위치한 호수공원에 넷이 놀러 갔었던 그날.

그 친구가 휴가를 나왔고, 하얀색 해군복과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해가 쨍한 날이었다.

우린 만화책 몇 권을 빌리고, 내가 좋아하는 햄버거집에 들러 먹을 것을 포장했다.

그리고 돗자리를 챙겨 호수가 있는 공원으로 갔다.

호수 앞 잔디 부근에 자리를 잡고

먹고 수다를 떨고 그렇게 놀다가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 아이의 하얀 해군 모자를 빌려 쓰고.





핸드폰 속 사진을 찾았다. 그리고 살아있어주기를 기도했다.

그 때, 정적을 깨는 전화가 울렸다.


실종된 친구와 형제마냥 붙어다녔던 남자아이. 넷 중 하나였다.

0.1초만에 전화를 받았다.


- 00야 뭐야..이거 무슨상황이야? 어떻게 된거야?? 걔네 부모님이랑은 연락했어?..나 뉴스 지금 봤어..

- 준비해. 평택 내려가자. 부모님들은 벌써 가셨고, 나도 이제 출발할거야. 거기서 기다려봐야지.

   괜찮을거야 수색하고 있으니까, 나올 수 있을꺼야.

- 응.. 알았어. 나도 알바 정리하고 내려갈게..



아르바이트 하던 카페는 다행히 10분거리였고,

일단 이 상황을 알리고 평택에 내려갈 준비를 해야했다.

혼자서 나와산다고 날 끔찍하게 잘 챙겨주던 매니저 언니의 얼굴을 보자마자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눈물 범벅으로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평택으로 내려갔다.











 

생각보다 기억을 끄집어내 상세히 기술하려니 힘드네요.  천천히 써보겠습니다.

그들을 기리는 마음을 함께 가져주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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