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따고 맴맴.

- 모자 안 썼다간 일사병 걸리기 쉽다.

by G 바리아

요즘 주말이면 집밖을 벗어나기 참 힘들다. 누가 붙잡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그렇다.

부모님은 요즘 고추작업이 한창이시기 때문이다. 늘 일에 치여사는 동생은 오래간만에 휴가를 떠났고, 이번 주는 나만 남았다. 어디 나간단 소리 없는 딸을 보며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침 먹고 고추 딸 거야"라는 소리를 하시며 고추따기 작업에 참여하도록 하신다. 늘 이러시는 건 아니다. 작업에 필요없다 여기시면 조용히 나가 밭을 매거나 하시는데, 늘 나서는 동생과 달리 나는 이렇게 작업에 참여하길 바랄 때만 나선다. 그러고도 딱히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올해 들어 몇 번의 같은 작업을 해왔다. 내가 회사 갔을 때 따신 것까지 치면 벌써 몇번째 따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작업할 때는 매번 흐린 날씨에 소나기가 내렸다. 그래서 새삼 고추 따기의 위력을 까먹고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 두줄 딸 동안, 겨우 한 줄을 따고 나서야 작업이 끝났다. 약 4시간 만에 일이었다. 그사이 나는 새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내 살도, 내 머릿속도. 작업 내내 모자를 쓰지 않은것으로 잔소리하던 부모님의 말을 귀찮다 흘려버린 덕분에 나는 태양열에 머리가 뭔가를 인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늘 흐려서 모자를 안 챙겨간 나는 내내 후회를 해야 했다. 또다시 미련 곰탱이라며 화를 내신 아버지는 고추 따다 쓰러진 사람이 한둘인 줄 아냐며 고추 따기의 위험을 알려주셨다. 이게 그렇게 위험한 거구나.. 매년 따면서도 매년 잊고 산다.


잠시 머릿속 열과 두통을 잠 재우려 잠이 든 사이, 부모님은 따온 고추꼭지를 몽땅 따셨다. 원래 이것까지 해야 되는데 깨어났을 땐 이미 마무리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꼭지 다 땄다며 고추밭을 돌던 아버지는 또다시 두상자를 들고 오셨다. 나와 엄마가 숨겨둔 거 한 박스씩. 아버지가 못 보고 못 가져오셨던 게 남아있었던 것이다. 결국 자리를 잡고 앉아 꼭지 따기에 열중했다. 꼭지 따는 것도 엄마보다 느리고 아빠보다 느리다. 나도 내가 느린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늦더라도 최대한 깔끔하게는 하려고 노력한다. 아빠는 엄마보다 늘 작업 속도는 빠르지만, 별로 깔끔하진 않으시다. 그걸 지적할 수 있는 용기는 아직 내겐 없다.


오후 늦게. 널어놓았던 고추들을 걷어들이는 엄마 옆에 조용히 앉았다. 커다란 비닐봉투에 담는 고추들은 혹여나 건조기에서 마르지 않은 것이 있을까 하여 뜨거운 태양 아래 널어놓았던 것들인데, 몇 번을 보고 덜 마른 것을 골라내고, 병기운이 있는 것들을 골라내도, 다시금 발견되곤 했다.


손에 걸리는 마른 고추들은 자갈이 부딪히는 것처럼 챠르르 한 소리가 났다. 어떤 것이 덜 마른 것인지 몰라 잡아본 덜 마른 고추들은 두터운 고무튜브처럼 둔탁한 소리가 났다.


잘 마른 고추 안에서는 노란 고추씨들이 찰랑찰랑 대며 소리를 냈다. 정말 돈주머니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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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꼭지를 따다 붙은 건지, 아니면 고추 말린 것을 걷어들이다 들어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장갑 안 손등이 따끔한 것이 느껴졌다. 냉큼 장갑을 벗어보니 손등에는 손톱만큼 작은 빨간 액과 그 주변에 빨갛게 달아오른 피부가 보였다. 따끔따끔 뜨끈뜨끈 화끈화끈한 느낌에 멍하니 있던 나는 일을 대충 마무리 짓는 엄마로 인해 쫓기듯 들어갔다. 발바닥에 붙은 고추씨를 씻어내지 않으면 그것도 화끈거린단다. 워낙 둔탱이라서 그걸 알까 싶다가도 발바닥이 화끈거리는 감각에 대한 도전은 하기 싫어서 고추를 거의 다 담아 정리하는 엄마를 뒤로 한 채 들어와버렸다.


미지근한 물로 씻어내리는 손등은 여전히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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