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짓게 하는 밤 한톨.

- 벌써 밤 떨어질 때가 되었네?

by G 바리아

걸어서 대문까지 나가고, 다시 대문에서 차도를 통해 정류장까지 걸어간다. 집밖를 나가기 위한 필수코스. 출퇴근길은 늘 집에서 정류장까지 나갔다 돌아오는 게 제일 큰 일이라 생각한다.

오늘의 출근길엔 대문으로 나서기 전. 떨어져있는 밤한톨을 발견했다. 아! 한톨이 아니라 여러톨이였다. 매일 걸어서 출퇴근하는 나는 못 보던 것인데, 이번 태풍으로 인해 떨어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태풍이 아니라도 떨어질 때가 되었는지, 밤나무 사이사이로 아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벌써.. 밤 떨어지는 때가 된 모양이었다.


우리 집은 이 근방에서 알아주는 과수원이었다. 지금은 힘들다고 과수목들을 전부 뽑아버렸지만, 우리가 원두막을 설치하고 과일을 팔아주길 기다리는 사람들을 번번이 거절할 때가 있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가는 8월 중순에서 말쯤이 우리 집의 원두막이 열리는 때였다.


원두막은 밤나무 옆쪽으로 설치가 되었고, 원두막에서 놀다 지칠쯤엔 밤나무를 털었다. 나와 내 동생이 있을 땐 그저 떨어진 밤 줍는정도였지만, 주말이 되어 과수원을 도와주기 위해 친척들이 찾아오고, 우리 또래의 사촌들을 만나게 되면 단순히 줍는 것에서 끝내지 않았다. 아름이 벌어진 밤도, 아름이 벌어지지 않은 밤도 우리가 휘두르는 기다란 장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떨어진 밤들은 운동화를 신은 양발로 벌려 밤을 빼내거나, 한 발로 땅에 문대기듯 비벼 밤이 나오도록 만들어 주웠다.


손님이 안 계신 한가한 때라면 엄마는 그렇게 주운 밤들을 가지고 한솥 가득 쪄주시기도 했지만, 우리들은 가만히 있는 게 돕는 것이 될 정도로 바쁠때면 우리끼리 밤을 까먹곤 했다. 타령에도 나오는 생율밤.


과일을 따는 철제 가위로 마치 가죽 같은 밤겉피를 벗겨내는 건 쉬운 일이었지만, 문제는 속피였다. 헝겊 같기도 하고, 나뭇결 같기도 한 내피는 끈적거려서 손가락으로 벗기다간 손가락에 다 붙고, 그 특유의 쓴맛은 남기 일수였다. 어른들이라면 칼로 깎아주거나 하시겠지만 우리, 특히 나에겐 그것이 무척이나 귀찮았고,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벽돌에 비비기. 호수에 물이 졸졸졸 나오도록 틀어놓고 내피가 벗겨지고 하얀 물이 나올 때까지 방향을 계속 돌려가며 비벼대면 어느새 속피도 벗겨지고, 쓴맛도 사라져있었다. 그렇게 몇 개씩 벗겨 나눠먹곤 했었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추석이 9월 말이던가... 밤이 벌써부터 떨어지기 시작한다면, 올해 밤 따는 건 우리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재미로 남을 것 같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명절이 되어 찾아오는 친척들을 반겨줄 또 다른 무언가가 생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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