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탉과의 악연.

- 닭과의 전쟁.

by G 바리아

어릴 적 우리 집은 닭요리집을 했었다. 농사를 짓던 밭에 닭들을 풀어놓고, 아침 저녁 사료를 뿌려 닭들에게 먹이고 저녁이면 그 닭들을 잡아 요리를 만들었다. 풀어서 기르는 닭들은 여기저기 똥을 쌌고, 여기저기 알을 낳았다. 그렇게 여기저기 무분별하게 낳아진 알을 주워오는 건 나와 동생 몫이었다.


집 앞, 집 뒤. 밭 중간, 울타리 나무 속, 언덕에 이어지는 나무 아래 등. 농촌인데다, 집 뒤에 누구네의 선산을 끼고 있는 우리 집은 닭들 활보 치기 아주 좋은 장소였고, 그만큼 나와 동생이 돌며 알을 주워오는 일은 고되었다.


하지만 모든 닭들이 그렇게 낳는 건 아니었다. 몇몇 닭들은 아버지가 과일박스로 쓰인 나무상자 속에 짚을 넣어 만든 둥지 안에 착실하게 낳고는 했는데, 물론 이곳이 우리들의 제일 첫 번째 확인장소였다.


정확히 어느 날 이였는지 모르겠다. 늘 상자는 알만 있는 채 어미닭은 없었는데, 웬일로 암탉이 둥지 안에 있었다. 게다가 그 근처에선 망이라도 보는지 수탉이 그 둥지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종자는 잘 모르겠지만, 밭과 언덕 여기저기를 쏘다니고, 아침 저녁 아버지가 주시는 사료를 먹고, 낮에는 밭에서 이것저것 먹어대는 수탉은 엄청 퉁실했고, 몸을 감싸고 있는 화려한 깃털들에서는 윤기가 흘렀다. 화려하고 윤기가 흐르는 깃털들은 수탉을 더 용맹하고, 실제보다 큰 몸집을 가진 것처럼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 집 수탉들은 몇마리되진 않았지만, 몇몇 분들이 약에 쓰겠다며 예약할 만큼 귀한 것들이었다.

한 번도 닭에게 공격당해본 적은 없었지만, 수탉의 화려한 깃털과 커다란 몸집은 어린 나를 겁먹게 하기 충분했고, 다른 곳에 알을 주우러 가기 전에 이곳 알부터 줍길 원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위협 삼아 닭에게 돌을 던지는 일이었다.


나는 동물을 참 좋아한다. 아버지 어머니가 닭요리집을 시작하셨을 때 나라도 닭 줄이는 것을 막아보겠다며 채식을 선언했던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돌을 가지고 닭을 맞춰 닭에게 아픔을 줄 생각은 전혀 없었고, 단지 닭이 돌에 놀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렇기에 돌은 당연히 닭을 빗겨나 땅에 떨어졌다. 그때.. 차라리 닭에 맞췄으면 덜 억울했을텐데. 닭은 분명 돌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돌에 움찔함을 보였던 수탉은 조용히 머리를 내쪽으로 돌리고 목덜미 깃털을 빳빳하게 세웠다. 그리고 나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나는 본능적으로 녀석을 등지고 달렸다. 필사적으로 도망친 끝에 도로가에 위치한 원두막까지 가, 원두막의 얇은 기둥을 은신처 삼아 숨었는데, 원두막까지 쫓아온 녀석은 기둥에 다 가려지지 않는 나를 찾아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서 고개만 여기저기 돌려댔다. 그때 시간은 참으로 안 갔다. 포기한 듯 돌아서 가는 녀석으로 인해 간신히 알 수 없는 공포에서 벗어난 나는 저녁에 가족들에게 그 얘기를 하며 웃어 넘겼다. 그게 다 끝난 거라 생각했었다.


닭대가리는 돌대가리가 아니었다.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건드린 수탉이 유별나게 뒤끝이 긴 건지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 나는 늘 집 근처에서 "엄마~, 엄마~"를 외쳐대야 했다. 그때 쉽게 포기하고 얌전히 돌아갔던 수탉은 우리 집으로 가는 길목 한가운데서 자신이 거느리는 많은 닭들을 데리고 대기하고 있었다.


며칠이고 계속되는 대치, 그리고 번번이 엄마가 도움을 줘야만 벗어날 수 있던 상황. 수탉이 주는 공포도, 가족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지쳤던 나는 결국 할 수 없이 집 뒤 선산을 통해서 집으로 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묘지가 많은데다, 인적이 없어 부모님께서 절대 그곳을 지나지 말라고 했던 길이였다.


처음 몇 번은 좋았다. 집 뒤에서 수풀을 지나 집으로 향하는 길은 닭이 없다는 것 만으로도 나에겐 평온한 길이였다. 좀 늦게 들어가 어둑어둑해져도 수탉과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열심히 산 쪽으로 다녔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평온이 깨지고 말았다. 며칠 마주하지 못한 나 때문에 다른 길목을 찾아다녔던 것인지, 수탉은 무리와 함께 내가 뒷산에서 빠져나오는 길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느낀 좌절감이란 이루어 말할 정도가 아니었다. 내가 가진 용기론 도저히 혼자선 집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나는 다시 엄마를 외쳐야만 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목은 아니었지만 집으로 가는 방법을 이래저래 바꿔가며 우리 집 가. 금. 류. 가 다 없어질 때까지 나는 고생해야 했다.


웃긴 얘기지만, 내가 열 받게 한 닭은 자신의 대에서 원한을 끊지 않았고, 그 닭이 누군가의 먹이가 된 이후에도, 닭을 기르며 기르게 된 거위들만 남았을 때도, 아버지가 호기심에 길러본 기러기 일종이라는 가금류를 기를 때도 계속되었다. 그것들은 대를 이어, 종족을 이어 자신들의 원한을 계속해서 풀려고 했다. 나는 그것들이 전부 죽고 나서야 혼자 떳떳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정말이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닭들, 그리고 가금류를 포함한 조류라면 지긋지긋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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