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렉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by 신새벽

도통 일상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 날들이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인가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내서인가 알 수가 없다. 아니, 그 무엇도 이 좋은 날씨 탓이라고 떠넘기고 싶다. 나는 요즘 뭔가, 그냥, 좀, 밍기적대고 있는 어른 같다. 브런치와 핸드폰에 글을 쓰다 마무리 짓지 못하고 저장해 놓은 것이 몇 개,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려다가 취소를 누른 적도 몇 번, 머리맡에 읽다만 책들이 몇 권쯤 있다.


하루는 무엇을 하고 싶기도 했다가 또 다음날은 하고 싶지 않기도 한 그런 마음과 함께 살고 있다. 완전, 진짜, 열렬하게, 진심으로 하고 싶다가도 그냥, 그다지, 그저 그렇고, 안 해도 뭐... 가 시소처럼 양쪽에 앉아 오르락내리락하며 사이좋게 마음속에서 한 번씩 엉덩방아를 찧고 있다. 실천할 몸은 하나인데 감정은 최소 여덟 가지가 투닥거리고 있으니 어떻게 하나의 마음을 줏대 있게 밀고 나간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강단 있는 사람이 못된다.


애당초 단호한 결단력에 거침없는 추진력이 장착되어 있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는 마음을 먹으면 그 마음을 믿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보는 편이었던 내가 이렇게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제자리걸음을 했던 적이 있던가. 분명 마음 어딘가 렉이 걸려 어느 한 구간에서 버벅... 버벅.. 대고 있다.


* 렉 : 원래 지연, (흐름, 운동 등의) 지체(량)를 뜻하는 영어단어 Lag에서 나온 말이다. 초기 의미는 서버와 클라이언트 사이의 일시적인 네트워크 지연 현상을 뜻하는 말이었다. 현재는 의미가 와전되어 컴퓨터 내부에서의 지연(컴퓨터가 일시적으로 멈춘다던지)이나 게임상에서 일시적으로도 함께 포함하는 말로 쓰인다. [네이버, 오픈사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을 거다. 핸드폰이나 컴퓨터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더니 손가락 터치나 키보드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지경이 되고 그러다 어느 순간 화면이 멈추거나 꺼지는 증상. 대게 처음 몇 번은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켠다. 그러면 기계는 마치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그 방법은 임시방편일 뿐 답답하고 불편함에 결국은 새로운 기계로 교체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고쳐 써볼까도 생각해 보지만 수리값보다 새 기계를 사는 편이 여러모로 합리적이라는 이상한 유통 구조가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렇다면 요즘 나의 버벅거림도 같은 증상인 걸까? 곧 고장이 나고 결국에는 쓸모가 없어질 테니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걸까? 사람은 결코 기계가 아니지만 로봇이 인간의 일상적인 영역까지 침투하고 대체하기 시작한 요즘의 세태를 보면 곧 81억 지구인만큼이나 다양한 생김새까지 완벽히 재현해 인간과 로봇이 같이 쇼핑도 다니고 저녁에는 마주 앉아 치맥 하는 날까지 올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도 핸드폰이나 컴퓨터처럼 잘 쓰다가 버리고 돈으로 다시 새것으로 사면 그만인 세상. 인구 감소, 노령화 등으로 인해 마주하게 될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첨단 기술들이 어느 정도 해결해 줄 것이라 하지만 로봇과 마주 앉아 치맥 하는 나의 모습이라니... 아직은 상상만으로도 마음 한편이 삭막하다.


어쨌거나 기계는 고치거나 얼마든지 교체하면 된다지만 사람의 마음은 갈아 끼울 부품이 있는 것도 때마다 신제품이 나와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내 마음은 내가 잘 쓸고 닦고 기름치고 아끼며 오래도록 잘 써야 한다. 다행인 것은 사람의 마음은 자주 들여다보고 만져줄수록 모가 난 부분은 둥글러 지고 윤이 나며 넓어진다는 것이다. 어릴 때 엄마가 아픈 배를 살살 문질러주면 특별한 약 없이도 신기하게 싹 나았던 것처럼 말이다. 엄마의 손바닥과 손가락 마디마디에서 전달되던 그 따뜻한 기억을 우리는 평생 안고 살아간다.


이제 나는 마음에 손을 얹고 둥글게 살포시 문지르며 "쓱쓱 내려가라. 고여있는 마음아 술술 내려가라." 마법의 주문을 걸어볼 참이다. 일상이 좀 버벅대어 개운찮아도, 영 진도가 나가지 않는 제자리걸음이라도 소중하게 아끼며 지낼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반질반질 윤이 나고 넓어진 마음 틈새로 새 마음이 돋아나지 않을까. 내 손 안의 아이폰은 수천, 수억 만 개 중의 하나일 뿐이지만 내 마음은 나 밖에 없는 거니까. 그게 나라서, 나는 내 마음을 충분히 기다려줄 용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