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라는 운명

by 신새벽

새벽에 화장실을 가는데 빗소리가 들려서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 블라인드 틈새로 비 내리는 풍경이 보이는 것도 좋았다. 모두 비가 와서 일이 없는 날이라 느낄 수 있는 온전하고 솔직한 나의 감정을 잠결이지만 마주하는 기분이 썩 좋았다.


나는 핸드폰 속 일기예보 새로고침 버튼을 하루에도 몇 번씩 누르며 확인하는 게 습관처럼 되어있다. 날씨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 일을 밥벌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십 년, 몇백 년 전에도 제주의 날씨는 이렇게 변덕스러웠을까. 아니면 심해지는 기후변화 때문에 더 자주, 더 갑자기 급변하는 걸까. 정말 굳이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기상청 탓을 해야 하는 걸까.


뭐 하나 명쾌한 답도 없고 제주 날씨도 정말 알 수가 없다. 그나마, 그럼에도, 그럴 수밖에 없게 기상청이 알려주는 예보가 유일하게 비빌 곳이지만 십 년의 눈칫밥으로 나는 이제 당일 예보만 믿게 되었다. 그마저도 주식창만큼이나 실시간으로 바뀌는 날은 정말 하... 하긴 한 기상 예보관님이 유퀴즈에 나와서 기상청 체육대회 날에도 비가 온 적이 있다고 했으니까 뭐. 예보관님의 잘못은 아니지요. 이런 밥벌이를 선택한 제 탓입니다. 그럼요.


아무튼, 이놈의 날씨 때문에 어떤 날은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고 하루종일 일기예보 새로고침과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끝나는 날도 있다. 이런 날은 허탈하기도 하고 자연 앞에 열심히 머리를 굴려본들 한낱 보잘것없는 인간의 존재는 변하지 않음을 확인하고 재확인하며 허무함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이번에는 진짜 때려치워야지.' 내가 나에게 사표를 냈다가 또 스스로 반려하며 여느 누구와 같이 마음속에 품고 어느덧 십 년이다.


밥벌이에는 치명적이지만 사실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거기에 안개까지 자욱하게 낀 날이면 더 좋다. 가까운 것도 보일 듯 말 듯한 뿌연 시야가 어딘가 우리 인생 같잖아.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 나는 조심한다고 깜빡이 켜고 가는데 누군가 와서 쾅 박을 수도 있는 인생.


알 수 없는 인생만큼 알 수 없는 날씨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일로 나를 먹이고 입힌다. 그 일로 적지만 가끔 부모님 용돈도 보내드리고 우리 집 고양이들 사료와 모래도 살 수 있다. 아, 십 년 동안 내 마음아 참 잘도 버텼다. 좋아하는 비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비처럼 쏟아내느라. 어른이 되면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고도 살게 되는 건지 알았는데 싫어하는 것도 결국은 꾹 참고 해야 원하는 것을 그나마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구나. 그것이 밥벌이의 운명인가 싶었다.


그런데도 나는 비 오는 날이 좋다. 일부러 빗 속을 걸으러 나가는 날도 있고 비를 맞아가며 기분 좋게 밭일을 할 때도 있다. 비가 오면 나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무들은 기운이 차오르고 식물의 잎에는 생기가 돈다. 텃밭 채소들이 보약이라도 먹은 듯 쑥쑥 자라는 동안 늘 사람의 발에 밟혀 납작 엎드려있던 잔디는 이날만을 기다렸다는 듯 기를 펴고 푸르러진다.(실제로 빗물에는 식물의 생장에 좋은 질소와 미네랄 같은 성분이 들어있다고 한다.) 밥벌이만 아니라면 나에게 완벽하게 좋은 날이겠지만 결코 좋은 날만 모여서 삶이 되는 것은 아니니 공평하다 생각해야 할까.


비를 좋아하는 나는 비가 오면 안 되는 밥벌이를 하며 산다. 얄궂은 이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지만 오라, 내 기꺼이 너를 끌어안아주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