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사람 그리고 네 개의 여행

by 신새벽

이 여행은 마흔 살이 넘은 딸이 집에 혼자 있으면 걱정된다는 일흔이 넘으신 부모님의 노파심으로 시작되었다. 원래 계획되어 있었던 장인어른과 사위의 여행에 엄마와 딸의 여행이 추가되었다. 남자들은 차를 가지고 강원도 곳곳을 돌며 여행하는 일정이었고 여자들은 원주 시내에서의 호캉스를 선택했다.


엄마와 나는 평일 낮의 사람 없는 극장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박보검이 나오는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 35도라는 올해 제주에서는 아직까지 만나지 못한 낮기온이 뿜어내는 엄청난 지열이 운동화를 뚫고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강원도는 좀 시원할 거라는 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 당황스러웠지만 엄마의 작은 양산 아래 팔짱을 끼고 영화 속 장면들이 무슨 의미였는지, 서로가 느낀 것을 얘기하면서 걷는 이 별거 아닌 기분이 좋았다.


여행을 가면 호텔 조식 먹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이틀 동안 빠지지 않고 식당에 내려가 여유 있는 아침을 즐겼고 하루는 미용실에 가 머리를 다듬고 카페에 들러 달달한 커피와 케이크가 줄어드는 내내 수다를 떨고 들어와 늘어지게 누워있다가 엄마가 해보지 못했다는 룸서비스를 처음으로 시켜 먹었다.


엄마와 나의 여행은 멀리 떨어져 살아 함께 할 수 없었던 소소한 것들을 하는 일상 같은 여행이었다.


아빠와 남편은 산으로 호수로 절로 부지런히 자동차 바퀴를 굴렸다. 여행만 떠나면 시간이 아까운 아빠와 그런 장인어른을 한시도 지루하게 해 드릴 수 없다는 j형 사위, 둘만의 첫 여행이었다. 여행을 가기 전부터 남편은 숙소부터 일정까지 고민이라기보다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나는 농담으로 왜 이 지옥불에 스스로 뛰어들려고 하냐고 그를 놀리기도 했지만 "나 장인어른 좋아."하고 대답해 주는 그에게 고마울 뿐이었다.


이틀은 그렇게 엄마와 딸, 아빠와 사위의 여행을 하고 마지막 날은 함께 모여 자기로 했다. 그렇게 각자의 여행을 마치고 모이자마자 역시 우리보다는 아빠와 남편의 여행에 깨알 같은 에피소드들이 쏟아져 나왔다. 길에서 하나에 7천 원짜리 맛없는 사과를 그것도 2개나 사 먹은 일,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 다음 부를 곡 번호누르기 기술을 쓰는 평소 노래방 애호가인 아빠를 따라나선 남편이 노래 4곡을 부르고 목소리를 잃게 됐던 일, 이 여행이 좋아 잠자는 시간이 아까웠던 아빠가 약국에서 잠이 오지 않은 약을 사자고 진지하게 남편에게 얘기했던 일, 치맥을 하며 둘이 얘기하느라 무려 내 전화를 네 통이나 안 받아 순간 엄마와 나를 식겁하게 만든 일 등등


아빠는 이번 여행에서 딸과 결혼한 지 14년 된 사위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고 했고 남편은 장인어른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고 했다. 아빠와 남편이 서로 얼마나 속 깊은 배려 속에 여행을 했는지 알 거 같았다. (남편은 이번 여행으로 장인어른 사용법을 완전히 숙지한 듯하다. 하하하)


가족이란 무엇일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이런 질문들이 더 자주 스스로에게 물어온다. 드라마처럼 완벽해 보이고 화목하기만 한 가족도, 매일 막장 스토리 한 편씩 만들어내는 가족도 적어도 내 주변에는 없다. 가족이어서 행복했다가 가족이라서 괴롭기도 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그렇게 평범하고 달기도 했다가 쓰기도 한 삶의 감정들을 가족 안에서 골고루 느끼며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가족이 무엇인지, 부모와 자식으로 엮여있는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쉽게 답을 내릴 수가 없는 것 같다.


다만 나의 별거 아닌 사랑과 하찮은 관심 때로는 진실한 미움까지도 모두 다 주고 있는 세상의 유일한 존재, 지금으로선 나에게 가족은 이런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네 사람 그리고 네 개의 여행이 각자 나름대로의 만족과 행복이 있었던 거 같다. 안 싸운 것만으로도 사실은 대대대만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