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낭만과 사랑과 꿈

by 신새벽

돈을 많이 벌고 싶다. 그래서 마트에 갔을 때 가격표 보지 않고 내키는 대로 물건을 집어 장바구니에 툭. 툭. 하고 던져 넣듯 담았으면 좋겠다. 어떤 우유가 100원이라도 더 싼 지 비교해보지 않고 단번에 서울우유를 집어 들고(언제부터인가 우리 집 물가지수는 서울우유가 되었다.) 대패 삼겹살처럼 얇은 햄 몇 장 들어있는 게 왜 이렇게 비싸? 그런 생각하지 않고 먹으며 다양한 치즈와 버터도 요리할 때 듬뿍듬뿍 쓸 수 있었으면.


아마 내가 말한 것들을 망설임 없이 장바구니에 담는다 해도 전체 금액에서 만 원, 많아봐야 이 만원 정도 차이가 날까. 나를 위해 이만 원도 못 쓰나 생각하면 어쩌면 적은 금액이 될 수도 있고 구입 후에는 한동안 먹는 기간도 있으니 결코 나의 생활 범위를 크게 벗어나는 과소비라고 할 수는 없다는 걸 안다. 한 끼에 만원이 넘어가는 세상에 그거 얼마 아낀다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닌 걸 알지만 사람 마음이 또 그렇지가 않은 건 그 돈이라도 아껴야 그나마 내가 그래도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나가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하는 스스로에게 주는 안도감 같은 것을 부모님에게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세대이기 때문일 거다.


사람들이 우스갯 말로 지금이 단군 이래 가장 돈 벌기 좋은 시대라고 한다. 벌려고만 하면 방법은 무궁무진한 세상이라고. 맞는 부분이 있는 말 같기도 했다. 공부만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었던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다양한 길에서 출발해서 성공까지 도착한 사례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개인이 펼쳐볼 수 있는 기회와 방법이 점점 더 구체적이고 세분화되는 것은 정말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성공'이라 함은 대부분 '돈'으로 귀결된다는 것과 그것의 양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구분 짓는 배금주의의 행태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거 같다.


돈, 중요하다. 자본주의 시대에 살며 돈의 가치를 무시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순히 생각해 봐도 지금 내가 쓰는 물, 전기, 인터넷 모두 돈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것들이다. 만약 의식주를 완벽한 자급자족으로 해결한다 해도 아플 때 병원에 가거나 약을 사 먹으려면 결국 돈이 든다. 법 없이 살 수 있다는 말은 있어도 돈 없어도 살 수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삶의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돈은 꼭 필요하다.


어느 정도. 이것이 참 애매하다. 어느 정도는 대체 어느 정도인가.



'돈을 번다.' 거나 '부자가 된다.'는 생각은 사람들에게 매우 그릇된 경제관을 심어 주었다. 우리가 경제 활동을 하는 목적은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한 것이다. 돈을 먹고살 수는 없으며, 돈을 입을 수도 없고, 돈을 덮고 잘 수도 없다. 돈은 어디까지나 교환 수단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는 것들이지 그것과 맞바꿀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그리고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돈을 얻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은 [사람과 책(Men and Books)]에서 이렇게 썼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돈은 우리가 사도 되고 안 사도 되는 상품의 하나이며, 우리가 마음껏 탐닉할 수도 있고 절제할 수도 있는 사치품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돈보다 더 탐닉할 수 있는 많은 사치품들이 있다. 그것은 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 시골 생활, 마음이 끌리는 여성 같은 것이다."


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 [조화로운 삶], 도서출판 보리



정말 그렇다. 알맞은 시간과 질 좋은 수면이 가져다주는 안정된 몸의 리듬, 제철 식재료로 천천히 몸이 소화시킬 수 있는 시간을 주며 먹는 식사, 계절마다 다른 햇살의 감촉을 피부로 느끼는 것, 유튜브로 듣는 새소리, 빗소리가 아닌 진짜 자연의 소리를 가까이에서 듣는 것 같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단순한 욕망을 채우는 것조차도 결코 쉽지 않아진 이 풍요롭지만 가난한 세상에 나는 묻고 싶다.


돈이 사람을 정말 인간답게 살게 해 주냐고.


'요즘은 샷시가 너무 좋아 빗소리 듣기도 쉽지 않다.'는 어딘가에서 본 댓글에 '어... 이게... 뭐지...' 했던 날이 있었다. 기술이 가져다준 빠르고 편리한 생활은 삶의 근본을 이뤄야 할 것들과도 그만큼 빠르게 멀어지고 불편한 관계가 되어 안락함 속에 아픈 손가락을 품고 산다. 빗소리, 밤하늘의 별, 낭만, 사랑, 꿈같은 삶을 촘촘히 채우고 있던 이야깃거리들이 언제부터인가 부재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정말 괜찮은 걸까.


단지 누구나 조금 더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누군가는 "그걸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돈이야." 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게 바로 낭만, 사랑, 꿈이라는 거야."라고 할 것이다. 돈과 낭만과 사랑과 꿈 사이를 부단히 헤매고 있는 우리들에게 언젠가 희미한 길 하나라도 드러나길 간절히 바라본다.


서울우유로 카페라테 만들어먹는 걸 가장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다음 장 볼 때는 망설이지 말고 장바구니에 넣어야겠다. 나의 돈과 낭만과 사랑과 꿈들아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