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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oresta Oct 22. 2021

5. 멈춰 서 혼자 남게 된다면




발이 너무 아팠다. 내 발도 이해는 됐다. 도시에서 얼마 걸어 다니지도 않더니 갑자기 산티아고 순례길에 데려와서는 피레네 산맥을 넘질 않나, 그럼 그다음엔 좀 쉴 것이지 양심도 없이 며칠 동안 연달아 20km씩 걸어 다니질 않나. 발 입장에선 그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1~2일 차는 발에서 계속 열이 나다가 3~4일 차가 되니 몇 시간 걸으면 발가락 사이가 너무 쑤시기 시작했다. 사실 며칠 전부터 쉬고 싶었지만, '아무리 아파도 학교에는 가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초중고 12년을 학교에 개근하며 K-성실 패치를 장착했기에 발이 아프다고 하루를 쉰다는 것에 대해서도 엄청난 고민을 했다. (지금이면 그냥 하루 쉬고 버스를 탔을 것을...)


며칠을 고민한 끝에 드디어 '오늘은 쉬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아마 '쉬어야겠다' 보다는 '이젠 진짜 못 걷겠다'는 마음에 가까웠던 것 같지만. 이른 아침 순례자들이 모두 떠나고 텅 빈 숙소에 누워있자니 그동안 매일 길에서 얼굴을 마주치고 함께 걷던 사람들과 떨어져 혼자 길에 남겨진 것 같아 외로움이 몰려왔다. '나는 혼자서도 잘해, 순례길도 혼자 걸을 수 있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사람들 사이에 함께 있고 싶었다. 어디에서든 진짜로 혼자 남겨진다는 건 무섭고 두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너무 많은 걸 해내려는 욕심에 지쳐, 노력도 책임감도 다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며 떠나온 길 위에서 또다시 지친 나를 외면하고, 아픈 몸을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를 밀어붙이며 걷는 길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쉰다고는 했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알베르게는 원칙상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연박이 불가'하기 때문에 떠나지 않고 하루 더 묵을 때는 사전에 양해를 구해야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나 오늘 몸이 안 좋아서 하루 쉬려고 해'라고 했으면 됐을 텐데 그땐 그걸 몰랐다. 마치 학교나 회사에 결석(결근)을 하겠다고 말할 때처럼 '이 정도로 아프다고 해도 되나, 이 정도로는 안된다고 하면 어떡하지?' 별 쓸데없는 고민은 다하다 결국 하루 더 묵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내가 아프면 아픈 건데, '제가 아픈데 오늘 하루 쉬어도 괜찮을까요?'라고 다른 사람에게 승인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일상에서도 그랬다. 아파서, 힘들어서, 버거워서 그만하고 포기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참고 해냈다. 그렇게 버텨내면 남들에게 칭찬을 받았고, 그러면 잘 참았다고 생각했다. 정작 나는 행복하지 않았고, 안으로는 스스로에게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결국 오전 9시 전에 배낭을 메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숙소를 나와 길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배낭을 메고 그냥 동네 (Puente la Reina)를 서성였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유적지 표시가 되어 있길래 멈춰 서서 안내판을 (이해는 못하고) 바라보고 있었다. 때마침 관리인처럼 보이는 분이 오셔서 문을 여시길래 "들어가도 되냐"라고 물어보니 그러라고 했다. 안에 들어서서야 그곳이 성당이라는 걸 알았다. 고요한 어둠. 작은 성당 안에,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 하나. 알 수 없는 여러 감정이 섞였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 마음을 다독이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성당에 들어왔다. 순례객으로 보이는 한 여자. 가톨릭 신자인 듯 성호를 긋고는 잠시 기도를 하더니, 관리자 분께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찍어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한창 나도 열심히 여권에 도장을 모으고 있던 터라, 살며시 옆에 끼어서 도장을 받았다.


그렇게 성당에서 만난 마리아(Maria)에게 오늘은 몸이 좋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7km쯤 걸어가면 수녀님들과 봉사자들이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있는데 자신은 오늘 거기에 묵을 계획이라며, 거기까지 함께 가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 이미 배낭을 메고 숙소를 나선 터라 같은 마을에서 묵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평상시처럼 걷자니 발이 아파 부담스럽던 차에, 그 정도 거리라면 무리하지 않고 갈 수 있겠다 싶었다. 좋다고, 같이 가겠다고 하고는 그녀를 따라나섰다.



길을 서성이다 멈춰 선 곳이 성당이었던 것,

그 순간 관리인이 도착해 문을 열어주었던 것,

성당 안으로 마리아가 들어왔던 것,

전혀 생각에도 없던 마을까지 그녀를 따라간 것,

원래 가려던 숙소가 문을 닫고,

마을의 유일한 알베르게에서 묵게 된 것,

그곳에서 평생 잊지 못할 친구를 만나게 된 것까지.



신을 믿지 않았던 나였지만, 누군가가 계획하지 않고서야 그 모든 것이 어떻게 그렇게 흘러갈 수 있었는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계획들은, 그날 내가 멈추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숙소에 혼자 남은 아침, 생장에서 함께 출발했던 친구가 먼저 떠나며 침대에 놓아둔 간식이 큰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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