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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oresta Oct 24. 2021

1. D-2, 두렵다




<2015.07.11>


불안하다. 불안하다. 불안하다. 한없이 불안하다. 


순례길을 준비하면서 점점 더 불안하고 힘들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준비 과정이 체력적으로 그리 힘든 건 아니었지만.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떠난다는 생각이, 가서 다칠지도 모른다는, 상상 이상으로 더울지도 모른다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부담감이 매 순간 매일 밤 나를 짓눌렀다. 스트레스에 몸이 아플 만큼, 엄마의 질문에 제대로 답도 못해줄 만큼 예민해져서. 이러려고 순례길을 떠난다고 했나. 이럴 거면 왜 간다고 했나. 왜 고생은 사서 해서 나는 늘 나를 괴롭히는 걸까. 내가 미워지기까지 했다. 두려웠다. 어릴 적 멋모를 때는 오히려 아무 걱정 없이 떠났는데 정보를 읽고 길에 대해 미리 알게 되면 알수록 두려워졌다. 몸이 점점 무기력해져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것조차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몸이 쳐지니 마음은 더 불안해져 왔다. '갈 수 있을까? 이것보다 더 더우면 어떡해. 그 더위에 짐을 지고 어떻게 매일 25km를 걸어.' 종일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그럼 온몸에 힘이 빠지고 속이 울렁거렸다. 정말 나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도 이랬잖아.' 비슷한 순간이 떠올랐다. 수영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초급반을 벗어나 처음 50m 레인을 끝까지 가는 게 너무 두려웠다. 50m가 두려운 게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면 '숨을 못 쉴 거'라는 생각 때문에 두려웠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난 정말 숨을 쉴 수가 없어 멈춰 서곤 했다. 두려움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됐고 스트레스 때문에 수영을 그만두고 싶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처음 접영을 배우던 날, 수영 선생님은 50m 레인을 5번씩 돌고 오라고 했다. 더 이상 숨 쉬는 것을 걱정할 틈이 없었다. 그런 시간이 반복되던 어느 순간 난 50m 레인을 어렵지 않게 돌고 있었다. 변한 건 없었다. 단지 '숨을 못 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그만둔 것 밖에는. 두려움은 그 상황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렇게 되면 어쩌지?'라는 내 상상 속에서 시작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다시 내게 물었다. 너 지금 느끼는 더위가 견디지 못할 정도야? '아니' 그 짐들 네가 지지 못할 정도야? '아니' 25km라는 거리 네가 걸을 수 없는 거리야? '아니' 그 상황을 직접 겪어봤어? '아니' 그럼 걱정하지 마. 아직 해보지도 않았잖아. 머릿속의 두려움으로 날 괴롭히지 말자. 지금 내가 내딛는 한 발에만 집중하자. 진짜 걱정은 내가 그 한 발조차 내딛을 수 없을 때 하자. 나는 이번 여행에서 최대한 많은 나를 직면하고 싶었다. 좋은 상황뿐만 아니라 나쁜 상황에서의 나까지. 순례길을 준비하며 이미 여행은 시작되었고, 난 벌써 나의 가장 못난 모습들을 직면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까진 포기하지 않고 잘 도닥이며 나아가고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 이 모든 상황을 견뎌내는 것으로도 잘하고 있다.' 그렇게 오늘 딛는 한 발에만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며 출발 전 불안한 맘을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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