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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니스홍 Mar 15. 2019

찌꺼기 수집가

일이 되게 만들기

하는 일은 많은데 되는 일은 없다. 시간은 가는데 일은 진도가 안 나간다. 배우는건 많은데 머리에 남는게 없다. 해야 할 건 많은데 하고싶지는 않고, 덮어뒀다 내일 맑은 정신에 하자고 다짐한다. 마음을 다잡고 내일 다시 펼쳐보지만 해결은 커녕 어제와 그제의 반복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아래 그림을 보자. 왼쪽의 사람은 시선이 위로 고정되어 있다. 별을 가지고 싶다. 머릿속에는 별에 대한 생각이 가득하다. 그가 디딘 땅은 아주 얕게 몇 번 패인 것 말고는 특이사항이 없다. 오른쪽의 사람을 보자. 이 사람의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색깔의 찌꺼기가 가득하다. 찌꺼기 하나하나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한편 시선은 아래로 고정되어 있다. 별은 모르겠고 바닥에서 찌꺼기를 수집해 머리에 담아두었다가 같은 자리에 쏟아내리기를 반복한다. 찌꺼기 더미가 썩는 아래에서 나무는 깊게 뿌리를 뻗는다. 땅을 가득 채울 만큼 뿌리를 내린 다음에야 줄기 하나가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버티는 나무로 자란다. 더 키우면 별에 닿을지 모른다. 닿으면 좋지만 아니라도 좋다.

땅에 시멘트를 부어서 놔두면 황무지가 되지만

음식 찌꺼기를 부어서 놔두면 생명을 키우는 거름이 된다

왼쪽은 대체로 어른의 시각이고, 오른쪽은 대체로 아이의 시각이다. 

아이가 어른보다 무엇이든 빨리, 그리고 확실하게 배운다.

아이들은 당장 사소한 찌꺼기를 수집해 애정을 쏟는 행동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어른의 눈으로 쓸데없는 자갈이나 조개껍데기 하나하나가 아이들에게는 중요한 찌꺼기다.


글을 쓰면 좋다고 하니 글을 쓰려는 마음을 먹었다. 막상 책상에 앉으니 텅 빈 화면이 막막하기만 하다. 웹서핑을 잠깐 하다가 뉴스를 잠시 보다가 돌아와도 여전히 빈 화면이다. 답답한 마음에 뭐든 끄적여보지만 두 문장 이상 쓰지를 못한다. 재미없다. 그만둔다. 어른의 눈이다. 자기 눈높이나 그보다 높은 곳에 시선을 고정한다. 한 두문장 끄적대는 하찮은 일은 성에 차지 않는다.


다른 예를 보자. 한마디 말을 곱씹어본다. 방금 지나간 단어 하나를 곱씹어본다. 방금 떠오른 문장 하나를 메모해본다. 한달, 두달, 1년, 2년, 3년, 그 세월동안 떠올린 단어 하나하나가 메모가 되어 쌓이고 넘칠 지경이 된다. 머릿속에서는 정리되지 않은 온갖 단어들이 춤을 추면서 부대낀다. 정리를 하지만 양이 많아 다 못할 지경이다. 거름이다. 이로부터 싹이 자란다. 아이의 눈이다. 자기 눈높이 혹은 그보다 자세한 곳에 눈을 둔다. 한 단어수준의 찌꺼기를 가까이 두고 소중하게 품는다.


글쓰기로 예를 들었지만 글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되는 일은 하찮은 찌꺼기가 모여 이루어진다. 거대한 바다도 결국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물분자가 가득 채우고 있는 것 아닌가. 손대는 것마다 되는 일이 없는 이유는 찌꺼기를 건너뛰기 때문이다. 왜 건너뛰는가. 당장에 별이 손에 쥐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빠르게 결과를 얻고 싶은 욕심이 일을 그르치는 것이다.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다 보면 어린 사람과 나이든 사람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나이든 사람은 사소한 것을 하찮게 여긴다. 뭐든지 눈에 보이는 결과부터 원한다. 프로그램이 한줄 한줄 짜임새있게 만들어졌는지는 관심을 두지 않고 무작정 실행 버튼을 누른다. 에러가 난다. 에러 부분을 찾아서 고친다. 다시 실행 버튼을 누른다. 여기저기서 에러가 난다. 대충 여기저기 손대보고 다시 실행버튼을 누른다. 또 에러가 난다. 이제는 짜증이 난다. 당장 뭐가 나오면 좋겠는데 컴퓨터는 답답한 소리만 내놓는다. 컴퓨터 공부가 적성이 아닌가보다.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어서 그만둔다. 


아이들을 보자. 처음부터 관심이 없다면 몰라도, 일단 관심을 가지면 무섭게 파고든다. 당장에 실행이 되는지 아닌지는 둘째 관심사다. 이런 짜임새를 만들어보고 저런 짜임새를 만들어본다. 숫자 하나하나 함수 하나하나를 일일이 뜯어낸다. 성인이 되는 나이 쯤에는 이미 현업의 경력자를 초월하는 실력을 보유한다. 찌꺼기 레벨의 미세한 수준을 물고 뜯는 세월이 길었기 때문이다. 보는 눈의 깊이가 다르다. 프로그래밍은 여전히 재미있는 일이다.


어른은 모든 일을 해야 하는 일과 안 해도 되는 일로 규정한다. 어른에게 해야 하는 일이란 곧 유용하지만 재미없는 일이다. 어른에게 안 해도 되는 일이란 곧 사소한 일이다. 어른은 사소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성장을 멈춘다. 아이들은 사소한 것부터 파고든다. 눈에 보이는대로 이런 찌꺼기를 모으고 저런 찌꺼기를 모아 담는다. 그들끼리 조립하고 부딪히고 깨보고 맛본다. 미묘한 수준에서 상황을 통제하는 능력이 자란다. 미묘한 수준에서 통제할 수 있다면 조금 더 큰 수준도 통제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일의 크기는 그렇게 자라난다. 


이 태도로부터 어른과 아이는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게 나온다. 이 둘의 차이는 매우 크다.

어른의 언어는 [하거나, 혹은 하지 않거나] 이다.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한다는 뜻이다.
아이의 언어는 [해보거나, 혹은 해보지 않거나] 이다. 결과는 모르겠고 해보던지 안해보던지 한다는 뜻이다.

어른은 무슨 일을 하기 전에 그것의 결과를 미리 짐작한다. 되는 일 같으면 하고 안되는일 같으면 안한다. 그런데 아직 하지 않은 일은 기본적으로 안 되어 있는 일이다. 안 되어 있으니 하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일을 하는동안 내내 이것이 될까 안될까를 염두에 두다가 안될것 같다는 짐작으로 기울면 얼른 그만둔다. 결국에 끝을 보는 일이 없다. 결과가 과정을 쥐고 흔든다. 모순이다. 한편 아이는 무슨 일을 하기 전에 그냥 그것을 해본다. 해보고 되는 일 같으면 더 해보고 안되는일 같으면 다르게 해본다. '해보다'와 '하다'의 차이는 크다. 찌꺼기를 수집하느냐 무심하게 건너뛰느냐의 태도 차이가 언어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는 공부나 일이 되게 하는데 있어서 맹독과 같다. 작은 것을 소중히 가꾸라는 도덕책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다. 일을 되게 만들지 않으면 돈을 벌기 어렵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결국에 일을 되게 만들고 돈이 되는 가치를 만드는 것은 어른의 몸이 되어서까지 찌꺼기를 수집하고 있는 수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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