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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니스홍 Mar 13. 2019

시간관리

시간을 관리한다는 말은 행동을 미룬다는 말이다.

시간관리를 잘 하자고 다짐한다. 하루를 30분 단위로 쪼개 계획을 세운다. 막상 해보면 계획대로 잘 되지 않는다. 계획을 세워도 잘 안되고, 계획을 안 세워도 잘 안된다. 책상에 앉기는 싫고, 앉으면 다른 생각이 난다. 시간관리를 잘 해서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잘 되지 않는다. 남들은 잘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를까. 시간관리는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시간관리를 하기 전에 시간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보자. 시간이란 무엇인가. 철학적인 설명을 보자.

또한 미래는 우리가 즐겨 숨는 도피처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평화롭게 안주할 내일은 없다. 내일은 내일의 고뇌로 가득할 것이다. 시간은 우리 마음 속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막는 사기꾼이다. 시간은 '생각과 행동 사이의 간격'이다. 우리는 생각하고 있으나 아직 행동하지 못할 때 갈등을 겪게 된다. 그래서 시간은 슬픈 것이다.
                                                                                                                       -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시간은 생각과 행동 사이의 간격이다. 생각과 행동의 간격이 길다면 시간이 길다. 생각과 행동의 간격이 없다면 시간도 없다. 정신없이 춤추는 중에 시간을 잊는 이유는 춤추는 중에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한 후에 행동할수는 있는데, 이럴 때 사람은 생각과 행동의 간격으로써의 시간을 느낀다.

시간관리라는 말은 시간이 있을 때 하는 말인데, 만약 시간이 없다면 어떨까. 시간이 없다는 표현이, 일이 많아서 다 처리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다는 말이다. 시간이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시간이 있고 시간을 관리하는건 사람의 상식이 아닌가?


지구상에 사계절이 있는가? 사계절이란 큰 단위의 시간이다. 시계는 하루를 열두단위로 구분하지만 사계절은 1년을 네 단위로 구분한다. 계절 구분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편의상 도입한 개념이다. 그것이 4단위이건 12단위이건 24단위이건 간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다. 사계절은 지구의 위도 (Latitude)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지리 상식이다. 적도에 땅이 걸친 나라에는 사계절이 없다. 그들은 4단위의 시간 개념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시간은 사람이 편의상 도입한 척도로써의 발명품이다. 이 척도는 무엇을 재는가.

사람이 떠올린 생각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의 간격을 잰다.

우리는 일을 잘 하기 위해 시간을 관리하고 싶어하는데 문제는 시간이 아니다. 생각을 하는가 행동을 하는가의 문제다. 일이 안 되는 이유는 일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고, 일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이유는 하기 싫다는 생각이 행동에 앞서 오기 때문이다.


생각이 행동에 앞서면 시간이 생기고 그 간격이 곧 시간이라고 했다. 사람이 행동을 하면 시간을 관리할 필요가 없다. 관리할 시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동을 하지 못하는 건 시간관리를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생각하면서 행동을 미루기 때문이다. 그 간격이 시간이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이만큼은 내 땅, 저만큼은 네 땅이라는 식으로 임의의 구획을 짓는다. 애초에 땅이 없다면 구획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땅이 있기 때문에 그 위에서 구획이 의미있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시간관리는 다른말로 할일 관리다. 할일은 미래에 대한 계획이다. 아직 실천되지 않았다. 생각이 행동에 앞서있을 때에야 의미있는 개념이라는 뜻이다. 구획지을 대상이 없다면 구획을 먼저 짓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시간관리 계획을 세운다고 하자. 공부라는 행동을 나중에 하겠다는 생각 위에야 시간을 두고 관리할 수 있는데, 이 말은 곧 행동을 뒤로 미룬다는 뜻이다. 계획이란 곧 미룸이다.


헷갈리는 개념이다. 다시 읽어보자. 중요한건 척도가 아니다. 땅이 먼저 있고, 땅이 있다는 보장 위에서야 땅을 가르는 구획이 의미있으며, 구획이 있을 때 간격이 의미를 갖는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생각을 하면서 나중에 행동을 할 때에야 구획이 발생하고, 그 간격을 재는 용도로 시간이 의미있다. 어느날 몇시에 친구를 만날 약속이 있는가 하는 스케줄링이 그렇다. 친구를 만날 생각이 있고 아직은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아야만 시간을 정해서 관리할 수 있다. 시간을 도입한다는 개념부터가 행동을 나중에 하겠다는 선언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시간 계획을 세우면 다음에 그대로 행동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오해다. 행동이 먼저다. 행동이 선행되면 시간관리는 무의미하다.


물리 상식으로 정의하는 시간 (t)조차 사실은 편의상 도입한 개념이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명도 있다.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기를 권한다.

우리는 시간에 대해 마치 우주의 생애를 가리키는 커다란 우주적 시계가 있기라도 한듯이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시간을 국지적인 것으로 생각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된 지 한 세기도 넘었습니다. 우주의 모든 대상은 자신만의 시간 흐름을 갖고 있으며, 그 흐름은 국지적인 중력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죠. 그러나 중력장의 양자적 본성을 고려할 때는 이 국지적 시간조차도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양자 사건들은 아주 작은 규모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서를 매길 수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시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하지만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p.178


처음 질문을 바꾸어 읽자면 시간관리가 아니라 행동관리다. 행동이 생각의 뒤로 밀린 후에야 시간이 정의되므로, 시간관리를 앞에 두고 행동을 통제하는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행동하는가를 묻는게 순서다. 지금 어느 행동을 하고 있는가. 책상에 앉아있는가 침대에 누워있는가. 그리고 그때마다 생각과 행동이 얼마나 벌어져 있는가.


이번 글은 특히 헷갈리는 개념이므로 다시 요약해보자.

- 생각과 행동의 간격이 벌어지면 그 간격이 곧 시간이다.

- 생각이 행동의 앞에 올 수는 있어도, 그 반대가 될 수는 없다.

- 시간을 관리한다는 말은 생각과 행동의 간격을 두는, 곧 행동을 뒤로 미룬다는 선언이다.

- 어느 행동을 얼만큼 미룰지 재어보는데 시간관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 공부라는 행동을 실행하기 위해서 시간관리를 한다는 말은 앞뒤가 뒤집힌 개념이다. 

- 시간관리하면 행동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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