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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니스홍 Apr 02. 2019

특수능력

남의 일상

나도 누군가처럼 공부를 잘 하고 싶다. 나도 누군가처럼 악기를 잘 다루고 싶다. 나도 누군가처럼 운동을 잘 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울까. 몇 번 시도해보다가 관두고 만다. 나는 재능이 없나보다. 

특수능력을 가지고 싶다. 김연아처럼 스케이트를 탄다든지, 그래서 그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그러면 인정도 받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으니까. 한심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찌든 나와 달리, 특별한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운이나 조건이 갖추어졌을 것 같다. 부러울 때도 많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사회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수 모여 그 중에 공유되는 개념을 상식 (common sense)으로 납득한다. 밥을 먹었으면 돈을 낸다는 식이다. 상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소수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상식에 준하여 살아간다. 보통의 경우에 평범하게 반복되는 일. 일상이다. 나에게 일상이 아닌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그에게는 아주 특별한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된다.


다른 이야기를 해 보자. 과학 실험으로 내놓는 결과는 그 결과에 대한 p-value를 검토한다. p-value는 어떤 실험의 결과가 일반적인 (normal) 사건과 얼마나 동떨어진 사건인지를 측정한 값이다. p-value가 낮을수록 특수한 일이다.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사건 중 대략 5% 이내의 확률로 발생하는 예외적인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면, 거기에는 뭔가 이유가 있겠다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약을 생쥐에게 먹였더니 1분만에 몸을 부르르 떠는 증세를 보였다고 하자. 보통의 생쥐는 가만 놔두었을 때 1분만에 몸을 부르르 떨지 않는다. 하필 그 약을 먹였기 때문에 특별한 결과가 발생한 것이라 짐작해볼 수 있다. 혹시 모르니 두 번째 세 번째 쥐에게도 똑같은 약을 똑같은 조건에서 먹였더니 모두 1분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고 하자. 실험이 반복될수록 이 약에 뭔가 있다는 주장이 점점 강하게 뒷받침된다. 왜냐하면

가만 놔두었을 때 발생하기 어려운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예외는 평소에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예외라고 부른다. 그것을 반복적으로 일으켜 마치 일반적인 사건처럼 보이게 만든다면 거기에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의미다. 과학에서 재현성 (replicability)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다. 결과가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려면 원래는 예외적인 일이 마치 일반적인 일처럼 자주 보여야 한다.


위 실험을 쥐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같은 약을 계속 먹는 쥐는 이제 몸을 떠는 일을 일상처럼 느낀다. 약을 처음 먹을 때와는 달리 몸 떠는 일이 매우 자연스럽다. 그 쥐를 밖에서 관찰하는 과학자는 몸 떠는 쥐가 여전히 특수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한 마리의 경우밖에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이런 말이다.

남의 일상은 내 눈으로는 특별하게 보인다.


남의 입장에서는 내가 곧 남이므로, 같은 말을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다.

나의 일상이 남의 눈으로는 특별하게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고유한 일상을 살아가고, 한 사람의 일생동안 특별한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특별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대부분의 시간을 일상으로 채운다. 왜냐하면 일상이기 때문이다. 특수능력을 가진 사람은 어느날 특수능력을 장착했기 때문에 특별해진게 아니라, 자기 일상의 어떤 부분을 극단적으로 밀고나갔기 때문에 겉에서 보기에 특별하게 보인다. 정작 본인에게는 그것이 일상이다. 


아래 그림은 정규분포 (normal distribution)를 표현한 그림이다. 가로축은 사건의 종류, 세로축은 그 사건이 받아들여질 확률이다. 그래프가 위로 높게 솟은 영역일수록 자주 발생하는 사건, 즉 일상이다.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정규분포를 갖는다. 그 중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사건은 아주 자주 발생하는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 다수의 상식 밖에 서 있는 하늘색 사람을 보자. 그 사람도 자기 기준에서는 여전한 일상을 살아간다. 스케이트 능력이든 공부 능력이든 간에 그에게는 그것이 일상이다. 남이 봤을 때에만 특별하게 보인다.


생쥐 실험을 과학자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처음에는 몸을 떠는 쥐가 한 마리 뿐이라 특수한 경우라고 생각했으나, 서로 다른 쥐에게 실험이 반복되다 보면 과학자는 그제야 쥐가 몸을 떤다는 사실을 일반적인 논리로 받아들인다. 실험이 이론으로 발전해 상식으로 자리잡는 과정이다. 

다수의 일상은 상식이 된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흔해빠진 것 같지만, 피겨스케이트를 자유자재로 타는 것에 비하여 특히 더 쉽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언어 하나를 자유롭게 구사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한국어 구사능력이 흔해빠진 상식으로 보이는 이유는 한국어를 일상으로 구사하는 사람이 주변에 다수이기 때문이지, 기술의 난이도가 쉽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어 구사능력은 한국 밖에서 보았을 때 매우 특별한 능력이다. 나는 매일같이 사용하는 흔하고 뻔한 것이라도 말이다.


일반 사람도 가끔은 피겨스케이트를 탄다. 그런데 김연아는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동안 피겨스케이트를 탄다. 스케이트 타는 일이 일반인에게는 예외이지만, 김연아에게는 일상이다. 직업 소설가는 글 쓰는 일이 일상이다. 운동선수는 운동이 일상이다. 의사는 환자 보는 일이 일상이다. 보통의 삶에서는 평생에 몇 번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그들의 삶에서는 일상이다. 남의 특수능력이 뭔가 하늘에서 떨어진 비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들의 일상이다. 나의 입장에서 말하면, 나의 일상이 극단적으로 일상일 때 남의 눈에는 그것이 특별하게 보인다.


특별함은 사실은 일상이다.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은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것 가운데 한 특정한 종류를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하는 것뿐일세! 사람들에게는 상상력이 있네. 다만 그 상상력을 과학자만큼 오래 이용하지 않을 뿐이지. 누구나 창조성을 이용하네. 다만 과학자들은 그 창조성을 더 많이 이용할 뿐이지. 과학자에게 보통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일을 아주 집중적으로 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한정된 주제 위에 많은 경험이 쌓이게 되었다는 것뿐일세.

과학자의 일이란 인간의 정상적인 활동을 극단으로, 아주 과장된 형식으로 밀고나가는 것일세. 보통 사람들은 과학자만큼 자주 그렇게 하지 않네. 나와는 달리 같은 문제를 매일 생각하지 않아. 오직 나 같은 천치만 그렇게 한다네. 아니면 다윈 같은 사람, 아니면 똑같은 문제에 대해 걱정하는 어떤 사람만. "동물들은 어디서 왔을까?" 또는 "종들 사이의 관계는 무엇일까?" 그런 문제 말일세. 과학자는 그런 문제를 놓고 일을 하네. 오랜 세월 동안 그 문제를 생각하네. 내가 하는 일은 보통 사람들도 자주 하는 일이지만, 나는 훨씬 더 많이 하기 때문에 미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 하지만 그것은 한 인간으로서 잠재력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걸세.

예를 들어 자네나 내 팔에는 저 바깥의 멋진 남자들처럼 근육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네. 우리한테 그것은 불가능해. 그 사람들은 근육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정말 열심히 노력하거든. 근육들을 얼마나 크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가슴을 멋지게 만들 수 있을까? 그들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알아내려 하네. 따라서 그들은 뭔가를 집중적으로, 보통 이상으로 하네. 그렇다고 우리가 역기를 절대 들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야. 다만 그들이 역기를 훨씬 더 많이 들 뿐이지.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어떤 한 방향에서 인간 활동의 가장 큰 잠재력을 찾으려 하는 걸세.

                                                                                                                          -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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