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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니스홍 Apr 04. 2019

변화

포기를 통해 얻는 길

나는 태어나기를 못나게 태어났다. 공부도 잘 못하고 운동도 잘 못한다. 말도 잘 못하고 사람도 잘 못 사귄다. 집에 재산이 많은것도 아니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다. 세월이 갈수록 나이만 먹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성경의 말씀은 종교 외의 의미로도 풍성하게 읽을 수 있다. 인간의 문명이 발달해온 과정, 또 개인의 성장 과정에 대한 지혜가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로 달란트의 비유가 있다. 주인이 첫 번째 종에게 5달란트, 두 번째 종에게 2달란트, 세 번째 종에게 1달란트를 맡기고 여행을 다녀온다. 첫 번째 종과 두 번째 종은 열심히 일해서 가진 돈을 각각 10달란트와 4달란트로 불렸다. 세 번째 종은 손에 쥔 1달란트를 잃는것이 두려워 땅에 묻어뒀다. 주인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첫 번째와 두 번째 종은 칭찬했으나, 세 번째 종은 가진 것을 빼앗고 내쫒았다. 애초에 적게 쥐여줘 놓고서 내쫒기까지 하면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현실의 누군가는 몸에 장애를 갖고 태어난다. 누군가는 재벌 회장의 집안에서 태어날 때 누군가는 길바닥에서 태어난다. 갖고 태어나기를 다르게 태어난다. 그것도 억울한데 애초에 적게 가진 사람은 갈수록 더욱 적게 갖는 경향이 있다. 마태복음 효과라고 한다. 부익부 빈익빈이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마 25:14~30

이 비유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적든 많든 손에 쥔 양에 집착하기보다 뭐라도 가진 것을 밑천으로 변하는 쪽이 더 유익하다는 메세지다. 또 많이 가져서 집착하기보다 적게 가져서 집착하기가 더 쉽다는 뜻이기도 하다. 많이 가진 사람은 약간의 위험은 무릅쓰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지만 적게 가진 사람은 약간의 변화가 생명의 지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자기가 적게 가진 것도 불만이고 남이 많이 가진 것도 불만이다. 덜 가질 수록 더욱 가난해지는 이유다. 집착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가진 것의 양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주식투자를 생각해보자. 가치가 낮을 때 사서 가치가 높을 때 팔아야 돈을 번다. 그 기울기가 가파를수록 더 큰 돈을 번다. 초점은 변화이지 현재 값어치가 아니다. 상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돈을 넣는 모습을 보면, 주식으로 돈을 잃는 사람은 현재 값어치가 높으니 좋은 거라고 생각해 돈을 넣는다. 현재 값어치가 낮으면 나쁜 거라고 생각해 무시한다. 돈 버는 길과 반대로 투자하는 셈이다.

현재 가치가 낮다고 투덜대는 사람은 매수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높아지는 변화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현재 가치가 높다고 신난 사람은 매도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낮아지는 변화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이 소유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이 있다. 있는 것을 버리고 거지가 되라는 뜻이 아니다. 높든 낮든 현재 상태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뜻이다. 집착이 변화를 막아서기 때문이다. 변화가 두려운 사람일수록 현재 높이에 집착하는데, 돈이 많아서 집착하든 적어서 집착하든 둘 다 땅에다 돈을 묻는 사고방식이다.

집착하면 성장하지 못한다.


성장한다는 말은 이전과 달라진다는 (=변화한다는) 뜻이다. 변하기를 거부하면 성장하기를 포기한다는 뜻이다. 그나마 가진 것을 땅에 묻어둘 것이냐 일궈낼 것이냐의 문제다. 집착하는 사람은 손에 쥔 것을 땅에 묻는 종과 같다. 성장과 정체는 지금 가진 것으로부터 변화를 만들어내느냐 아니면 그나마 가진 것에 집착하느냐에 달렸다. 지금 가진 것의 양에 있지 않다.


아래 그림을 보자.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은 1달란트를 갖고 태어났다. 땅에 묻어두면 그대로 1달란트다. 가장 위에 있는 사람은 돈주머니를 들고 태어났다. 마찬가지로 땅에 묻어두면 (=집착하면) 같은 양의 돈주머니를 유지한다. 중간에 있는 사람은 2달란트를 갖고 태어났다. 2달란트를 밑천으로 뭔가를 일구면 돈주머니 여러개를 갖게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나마 있던 것마저 잃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불어날 기대도 할 수 있다. 혹 이번에는 잃더라도, 잃었던 경험을 통해 다음 번에 잃을 가능성을 줄인다. 성장하는 그림이다.


공부를 예로 들어보자. 지금 당장 할 줄 아는게 없고 성적이 낮다는 상태에 집착하여 그대로 놓아두면 10년이든 20년이든 그 상태가 그대로 간다. 지금 뭔가를 잘 한다는 상태에 집착해 그대로 놓아두어도 10년이든 20년이든 그 상태가 그대로 간다. 실력이 같아도 나이를 먹으니 실제 값어치는 오히려 떨어지는 셈이다. 집착을 버리는 만큼 변할 수 있는데, 그렇게 변화하는 사람에게만 성장이 주어진다.


이해의 깊이란 하나의 사물을 보는 관점의 다양성을 의미한다고 했다.

사람은 깨달음을 통해 이전과 이후에 다른 사람이 된다. 아기때 똥싸고 오줌싸고 뛰어다니고 소리지르던 행동을 어른이 되면 할 수 없게 되는게 아니다. 할 줄 알지만 해봐야 좋을게 없다는 관점을 알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불교 용어로는 깨닫는다. 기독교 용어로는 거듭난다. 쉬운 말로는 철든다고 한다. 깨닫기 이전과 이후가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인식의 변화가 생긴다. 공부한 결과다. 공부를 했으면 그 결과로 깨닫고 거듭나고 철든다. 우리는 아기때 상태에 집착하지 않고 변화해냈다. 성장했다는 뜻이다.


현재 관점을 땅에 묻어두고 그대로 놔두면 성장이 멈춘다. 같은 것도 다르게 보자. 이번에 이렇게 했으면 다음에는 저렇게 하자. 관점에 변화를 주자. 내가 가진 관점에 집착하기를 포기하면 다른 관점을 얻고, 그러면 성장한다. 포기를 통해 얻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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