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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니스홍 Apr 16. 2019

원리, 규칙

순종하는가 통제하는가

계획을 잘 세우고 그대로 실천하기로 다짐한다. 얼마 되지 않았는데 실패한다.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없을까. 하루에 열 페이지씩 수학문제를 풀기로 아이와 약속했는데 금새 어긴다. 내 아이는 왜 이렇게 의지가 없을까.


이번 글은 <순종> 편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같은 목표를 달성하는데 이미 있는 질서에 어깃장을 놓지 않는 쪽이 비용 면에서 효율적이라고 했다.


법칙, 지시, 명령, 규칙, 계획은 모두 ~해야한다 라는 당위성에 기반한다. 사람만이 합의하는 인위적인 약속이다. 자연에는 규칙이 아니라 원리만 존재한다. 질량을 가진 물체는 서로 끌어당긴다는 중력을 받는다는 식이다. 아무리 벗어나려 애써도 끌어당겨지게 되어있다. 누가 일부러 정한 규칙이 아니라 원래 그러한 원리이기 때문이다. 신호위반이라든지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의 어느 규칙도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래 그림에서는 시간을 따라 두 종류의 움직임을 그렸다. 아래쪽에서는 규칙이 작동한다. 지켜져야만 하는 약속의 틀 안에서 행동한다. 규칙 안에서는 어떻게 하든 자유롭지만 규칙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통제한다는 말이다. 한편, 위쪽에서는 원리가 작동한다. 어디로 튀어나가든 원리를 향해 끌려들어오게 되어있다. 아무렇게나 행동할 수는 있지만, 원리로부터 멀리 나갈수록 원리를 향해서 끌려들어오는 힘을 더 받는다. 순순히 따르는 편이 이득이므로 순순히 따른다, 순종한다는 말이다.

사람은 아기때 아무때나 똥오줌을 누다가 철이 들면 똥오줌을 가리게 되어있다. 누가 나에게 명령한 바를 지키기 위해 애쓰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데나 똥오줌을 싸면 사회생활이 어렵다는 원리를 터득했기 때문이다. 길에서 똥을 누면 100억을 준다던지 하는 특수 상황에 놓인다면 길에서 똥을 눌 수 있다. 그럴 능력이 없어서 못하는게 아니라, 평소에는 길에 똥을 누면 손해가 크다는 원리를 알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이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사람은 누구의 명령 때문에 무엇을 하거나 안 하지 않는다. 원리가 어떻다는 것을 알 때에만 그에 따라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는다. 원리를 알면 그 원리에 자발적으로 순종할 수밖에 없는데, 원리를 모른채 명령하거나 통제하면 그에 반발하는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규칙은 통제하고
원리에는 순종한다.


통제는 통제당하는 쪽의 반발을 산다. 통제당하는 쪽이 반발을 일으킨다면 통제하는 쪽에서는 그것을 막기 위한 추가비용이 또 들어간다. 통제당하는 쪽이 아니라 통제하는 쪽에서 비용을 지불한다. 내가 헬스클럽에 다니기 위한 계획을 세워서 나를 통제하려고 들면 그 비용을 지불하는건 통제하는 중인 내 쪽이다. 내가 자녀에게 숙제를 주고 방학계획을 세워 지키라고 하면 그 비용을 지불하는건 통제하는 중인 내 쪽이다. 통제는 그 과정에서 통제하는쪽의 비효율을 유발한다.


한편 원리는 제시한 쪽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원리에 반발하는 쪽이 비용을 지불한다. 중력을 거스르면 손해를 보는건 중력이 아니라 거스르는 내 쪽이다. 내가 살을 빼기 위해서는 공복감을 자주 느끼고 몸으로 힘든 느낌을 오래 느끼는게 유익하다. 그래야 몸이 체질량을 태우기 때문이다. 이 원리를 거스르면 손해는 내가 본다. 자녀가 숙제를 제때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제때 함직한 형태로 숙제를 만들어 주던지, 혹은 자녀가 스스로 그 유익을 깨달을때까지 기다려주는게 낫다.  자녀가 어떤 원리를 어겼을 때 손해라는 것을 스스로 안다면, 자녀를 통제할 필요가 없다. 숙제를 통해서 자녀를 통제하는 많은 경우는 부모 입장에서도 숙제에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본인도 모르는 원리를 자녀에게 깨우칠 수는 없다.


원리는 발견 (discovery)하는 그 무엇이다. 자연의 원리던 인간사회의 원리던 간에,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하던 것을 발견한 뒤에는 그것을 없던 일로 덮을 수 없다. 순순히 따르는게 유익임을 따르는 쪽에서 알기 때문이다. 반면에 규칙은 인위적으로 만들고 통제 (control)하는 그 무엇이다. 규칙이 만들어진 후에도 얼마든지 반발하거나 무시할 수 있다. 통제하는 쪽의 유익임을 따르는 쪽에서 알기 때문이다.


처음 고민을 다시 짚어보자. 

계획을 잘 세우고 그대로 실천하기로 다짐한다. 얼마 되지 않았는데 실패한다.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없을까. 하루에 열 페이지씩 수학문제를 풀기로 약속했는데 금새 어긴다. 내 아이는 왜 이렇게 의지가 없을까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자. 뭔가를 해내기 위해서 나 자신에게, 혹은 자녀에게, 명령을 하는 중인가 아니면 원리를 발견하도록 하는가


통제하려는 계획을 어기는 쪽이 유익이기 때문에 계획은 실패한다.


실제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필자는 학교에서 TA (Teaching Assistant)일을 하고 있다. 지도교수님의 수업을 보조하는 일이다. 숙제를 만들고 채점하는 일도 맡는다. 채점이 끝난 숙제는 학생들에게 돌려주는데, 학생들은 혹시 채점에 실수가 없는지 확인 후 정정신청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수업에 등록한 85명의 학생들이 1~2점짜리 사소한 것 하나라도 더 올리려고 물고 늘어지기 때문에, 너무 많은 학생들이 정정신청을 하게 되면서 큰 불편을 초래한다. 또 정정신청을 받는 도중에 학생의 점수가 오르면 상관이 없지만, 반대로 점수가 낮아질만한 채점오류를 발견했을 때 학생이 감정적으로 기분상하거나 학습 의욕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에 어떻게 대처하는게 현명할지 교수님에게 자문을 구했다.

Prof. DY,
I found some critical errors from one student’s submitted code during the appealing process.
Even though I accept his request and he get a little bit higher grade, he will lose much more grade before he appealed for another criteria. The newly found error in the code seems critical.
Any student will get mad at this situation, how can I handle it in fair way without making things worse emotionally?


교수님의 답장이다. 

"그 학생 뿐 아니라 어느 누구든 채점 정정 신청을 할 때는 특정 문제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학생이 제출한 해당 숙제 전체를 다시 채점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서, 점수가 오를 수도, 그대로일수도, 반대로 떨어질 수도 있다. 이 점을 인지하고 있는지 먼저 묻고, 그것을 원한다는 확인 후 재채점을 하라". 

Dear Eric,
Please let the student (in fact all students who make a grade appeal) know that the grade appeal will be handled by regrading the WHOLE assignment, which may lead to a positive/zero/negative change of the total score. Please ask the student to confirm if this is what he wants before you regrade it. Thanks.

학생들은 보통 재채점 신청이라는 개념을 무엇이든 물고 늘어져서 약간이라도 점수를 더 올려받는 기회로 인지하고 있다. 이것을 원리상 다시 정의한 것이다. 재채점의 결과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그 학생에게 돌아가고, 또한 재채점 신청이라는 행위가 1~2점을 더 올리기 위해서 이미 가진 80~90점의 점수에 피해를 입힐 가능성을 짊어지우게 된다. 이렇게 공지한 이후에 사소한 시빗거리로 재채점을 신청하는 학생이 사라졌다. 채점 일을 하는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수고를 덜었고, 학생은 자기 결과에 순순히 납득하는 모양새로 이어졌다. 

원리를 발견한다면 통제하지 않고도 통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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