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세 가지 요소
공부를 해야겠다. 그런데 무엇부터 어떻게 공부할지 모르겠다. 어떤 과목을 공부해야 나중에 취업에 유리할까?
무엇을 공부해야 취업에 유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래를 아는 사람은 없고,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사회가 작동하는 모양도 빠르게 바뀐다. 지금 어떤 과목을 배우든 언제든지 폐기처분될 수 있다. 미래를 짐작하고 지금 행동하는게 유의미할 때는, 현재 사회의 모습이 10년 20년 50년 후에도 여전할거라는 농경사회에서 가능한 이야기다. 요즘 세상에서 미래를 짐작해 지금 행동하는 것은 순서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지, 지금 중요하면서 (important) 알 수 있는 (knowable) 것에 집중하면 큰 것을 놓치지 않는다. 맞추지도 못할 물의 흐름을 예측하려고 하기보다는 어떤 흐름이 오든 수영을 하는편이 낫다. 이번 글에서는 수영하는 법에 대해 알아보자.
아래 그림에서는 공부를 하는데 기댈 수 있는 세 가지 원리를 묘사했다. 빨강, 검정, 파랑색으로 다르게 표시했다.
학 (學): 다른 사람이 이미 이루어놓은 것을 접하여 본다는 뜻이다.
습 (習): 반복하여 익힌다는 뜻이다.
주의 (注意): 학과 습이 일어나는 지점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본다는 뜻이다.
그림이 추상적이므로 이해가 쉽지 않다. 첨언을 해보자.
학 (學): 다른 사람이 이미 이루어놓은 것을 접하여 본다.
인간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거대한 문명을 이루었다. 사회 구석구석의 유능한 사람들이 자연을 관찰하고, 심사숙고하여 원리를 만들고, 이론을 만들고, 기계를 만들고, 정치제도와 법을 만들었다. 사람이 만든 것의 군데군데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를 보았을때는 훌륭하다. 문제가 있다면 앞으로 고쳐나가면 되는 것이지 이전 것을 폐기처분할 이유는 없다. 어떤 천재라도 현대 문명의 모든 것들을 혼자 힘으로 다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학을 통해서 다른 사람이 일생을 바친 시행착오로 만들어 낸 것을, 그 후손은 그보다 훨씬 덜한 노력으로 배울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잘 배우는 것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 남의 지식은 내가 직접 해보지 않는 한 그대로 발휘할 수 없다. 화성학 지식을 아무리 배워도 피아노를 직접 쳐 보지 않으면 피아노를 잘 치게 될 수 없다. 학은 좋지만 학 만으로는 부족하다. 습이 필요하다.
- 남이 만든 것만 배우기만 해서는 그 너머로 나아갈 수 없다. 학은 좋지만 학 만으로는 부족하다.
습 (習): 반복하여 익힌다.
연습이 완벽을 만든다. 이미 아는 것이라도 반복하지 않으면 잊혀진다. 피아노를 쳐 보지 않으면 피아노를 잘 치게 될 수 없다. 물의 흐름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평소에 연습이 되어놓으면 물에 빠졌을 때 어떤 흐름이 오든 수영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습에만 치중해도 문제가 있다.
- 연습을 아무리 해도 기존에 아는 것만 반복할 뿐이라면 유용함을 발휘하기 어렵다. 시중에 넘쳐나는 바퀴를 혼자 힘으로 재발명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습은 좋지만 습 만으로는 부족하다. 학이 필요하다.
- 같은 것을 연습만 해서는 그 너머로 나아갈 수 없다. 습은 좋지만 습 만으로는 부족하다.
주의 (注意): 학과 습이 일어나는 지점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본다.
주의는 학과 습을 자세히 살펴보는 순간을 말한다. 학습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주의 기울이기를 통해 얻는다. 이것은 배우고 익힌 그 너머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자세히 살펴본다는 말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자.
아무것도 없는 방 안에 어떤 사람이 뱀과 함께 있다고 하자.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 온 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뱀의 어느 사소한 움직임에도 일일이 반응하게 된다. 온 힘을 다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 시점에 배움이 일어난다. 물론 뱀의 움직임을 배워서 어디에 써먹게 될 일은 없겠지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때 사람은 많은 양의 정보를 확실하게 배운다는 말이다. 사소한 점을 일일이 자세히 들여다보려 하기 때문이다. 많이 가지려고 애쓰는게 아니라, 좁은 영역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애쓴다. 문제집을 많이 풀려고 애쓰는 것과는 상반되는 태도다. 하나의 문장을 더욱 자세히 곱씹는다는 말이다.
바람이 불 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바람이 부는지를 알기 어렵다. 소리가 들릴 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소리가 들리는지를 알기 어렵다. 학이 다른사람의 업적으로부터 오는 지식이고, 습이 나에게서 발휘되는 행동이라면, 주의는 학과 습이 일어나는 그 순간의 그 부분을 더욱 자세히 살펴보는 태도다. 자세히 살펴봄으로 얻는 유익은 한 가지다. 내가 배운 지식과 내가 행한 연습 그 너머의 수준으로 넘어갈 수 있다. 창의가 일어나는 지점이 바로 주의에서 온다. 학습이 일어나는동안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새로우면서 유용한 것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주의를 기울이면 이전에 못 보던 것을 보고, 같은 것도 다르게 보기 때문이다.
그러한 앎은 방 안에서 뱀과 더불어 사는 것과 같다. 뱀과 같이 방 안에 살 때 우리는 그것의 모든 움직임을 주시하고, 그것이 내는 극히 작은 소리에도 매우 민감해진다. 그런 주의력 상태가 바로 온 힘 (total energy)이다. 그런 앎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은 한순간에 드러난다.